여성의 생존 투쟁과 존엄 투쟁은 분리될 수 없어
  • 노혜경 시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3.08 17:00
  • 호수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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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다시 ‘빵’과 ‘장미’를 생각한다

2000년대 초반 어느 일요일, 학생들과 함께 부산 수영만 ‘시네마떼끄’에서 《빵과 장미》라는 영화를 보았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감독인 켄 로치의 작품이다. 멕시코 여성 마야가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어 로스앤젤레스로 오면서 시작되는 영화는, 불법이주노동자인 마야가 겪는 전쟁 같은 일상을 따라가며 여성과 노동이, 여성과 난민이, 그리고 여성과 가난이 어떻게 결합하는지를 보여준다. 영화를 본 다음 학생들과 나눈 이야기들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영화 《빵과 장미》 포스터
영화 《빵과 장미》 포스터

“우리는 빵만이 아니라 장미를 원한다”

한 학생이, 여성인 자기는 자신이 노동자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다른 남학생이, 나도 내가 노동자가 될 거라고는 생각 안 하고 있었다고 말하자 불 꺼진 어두운 극장에서 토론이 벌어졌다. 차별은 정말 이상한 곳에 장막을 치고, 모르는 새 서로 다른 구역으로 사람들을 몰아넣고 있다. 여성이니까 노동자가 안 될 거라는 여자 대학생, 대학생이니까 노동자가 안 될 거라는 남자 대학생. 둘 다 노동자가 안 될 것이라 말했지만 그 생각의 결은 미묘하게 달랐다.

특히 여학생은, 보조적 일은 노동이 아니라고 생각 했다고 토로했다. 충격과 각성은 여학생들로부터 먼저 왔다. ‘청소’도 노동이며 ‘청소노동자’도 노동자라는, 이 짤막한 대화에서 물론 결론은 “우리는 모두 노동자가 된다”였다. 영화 내용이 보여주는 이주노동자, 불법체류자, 노동조합, 동료를 배반하게 하는 가난, 계급을 뛰어넘는 연애의 불가능성, 그리고 여성이라는 조건 등등 한 장면 한 장면의 의미가 분명해질수록 희미한 비상등 불빛 아래 우리 모두는 울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2000년대 초반 이야기다. 지금 시점에서는 어떤 여자 대학생도 자기가 노동자가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좀 더 열악한 차별받는 노동자가 될 것임을 안다. 여성은 여성이라는 조건만으로, 20대에는 차별이 없다는 통념과 달리 동일한 경력과 학력의 남성보다 한 계단 깎인 처우를 받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지 않은가. 

그런데 영화의 제목은 왜 《빵과 장미》였을까? 이 영화에서 빵은 생존을 위한 투쟁을, 장미는 존엄을 위한 투쟁을 의미한다. 2000년 그날로부터 100년 좀 못 되는 1908년 3월8일 뉴욕의 러트거스 광장에 무려 1만5000명의 여성노동자가 모였다. 그들은 “우리는 빵만이 아니라 장미를 원한다”고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생산의 중요한 몫을 담당하는 여성들에게는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받을 임금뿐 아니라, 보다 나은 환경을 스스로 결정하고 요구할 수 있는 주권자로서의 권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들은 깨달았던 것이다. 가장 중요하게는, 그것을 모여서 쟁취해야 한다고 깨달았던 것이다. 이날 이후 빵과 장미는 분리될 수 없는 여성노동의 기치가 되었다.

고민은 복합적이고 다층적이다. 여성의 노동은, 여성노동자가 받는 차별은 계급적인 걸까, 젠더적인 걸까? 나는 구분할 수 없다. 육체에, 역사 자체에 아로새겨진 복합적 차별을 학문으로는 구분할지언정 현실에서는 빵과 장미를 구분할 수 없듯 이 또한 구분할 수 없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동료 노동자를 배반한 마야 언니의 슬픈 교훈을 기억하며, 그이에게도 장미 한 송이를 바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에서 "1908년 3월 8일 뉴욕의 러트거스 광장에 무려 1만5000명의 여성노동자가 모였다. 그들은 “우리는 빵만이 아니라 장미를 원한다”라고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는 표현은 역사적으로 확인된 사실이 아니기에 바로잡습니다. 여성의 날과 빵과 장미라는 상징의 유래는 아직 정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다만 유래가 어떠하든 세계 여성의 날이 생존권과 평등권을 쟁취하고자 하는 여성을 격려하고자 생겨난 날임은 분명합니다. (신상숙, "'루트거스 광장'을 넘어서: 3.8 세계여성의 날의 복합적 기원과 한국의 수용맥락"(페미니즘연구 제10권 1호,2010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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