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히어로 ‘캡틴 마블’ MCU 역사를 새로 쓰다
  •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3.09 15:00
  • 호수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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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 스튜디오가 선보인 첫 번째 여성 솔로 히어로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2018)의 절망적 결말은 전 세계 팬들을 큰 충격에 빠뜨렸다. 타노스(조슈 브롤린)는 그가 원하는 대로 전 세계의 생명체 중 절반을 없애버렸다. 어벤져스 멤버들도 절반이 사라졌다. 그러나 희망은 남아 있다. 쿠키 영상에서 닉 퓨리(사무엘 L 잭슨)가 사라지기 직전 다급하게 호출한 누군가가 있었다. 그 주인공, 캡틴 마블(브리 라슨)이 등장할 차례다. 《캡틴 마블》은 마블 스튜디오가 선보이는 첫 번째 여성 솔로 히어로 영화다. 위기에 빠진 어벤져스와 지구를 구할 새 영웅을 선보이기 위해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마블 코믹스의 가상 세계관)의 시계는 1990년대로 돌아갔다. 이 영화는 지금까지의 MCU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단서이자, 앞으로 MCU의 방향을 짐작하게 만드는 안내서이기도 하다. 

영화 《캡틴 마블》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나’를 찾아가는 영웅 서사

《캡틴 마블》은 MCU의 중대한 길목에 서 있는 작품이다. 슈퍼 히어로 영화의 역사를 새로 써내려온 마블 스튜디오는 지난해 10주년을 맞았다. 《캡틴 마블》은 마블이 새로운 10년을 준비하는 첫 타자이며, 첫 여성 솔로 히어로 영화다. 마블의 모든 세계를 가능케 한 원작자 스탠 리가 타계한 이후 개봉하는 첫 작품이기도 하다. 이를 기리며, 《캡틴 마블》은 기존 마블 스튜디오의 로고 필름을 특별한 방식으로 대체했다. 스탠 리의 모습이 화면 곳곳을 장식하다 ‘고마워요, 스탠(Thank you, Stan)’이라는 인사로 마무리되는 이 시작은 꽤 뭉클하다. 

영화는 ‘기원’에 대한 이야기다. 한 축은 당연히 캡틴 마블이라는 캐릭터의 기원이다. 영화의 문이 열리면, 크리 행성의 전사 스타포스로 활동하고 있는 비어스(브리 라슨)가 등장한다. 그가 살고 있는 크리 행성은 스크럴 종족과 오랜 기간 전쟁을 지속 중이다. 비어스의 멘토이자 스타포스 사령관 욘-로그(주드 로)는 비어스가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제어하고 또 발휘하도록 돕는다. 영화는 어느 날 작전을 수행하던 비어스가 우연한 기회에 지구에 오고, 자신이 기억하지 못했던 과거를 찾는 여정을 그린다. 

그는 캐럴 댄버스라는 이름의 공군이었던 자신의 과거를 만나고, 적인 줄로만 알았던 스크럴 종족의 이면을 알게 된다. 그리고 비로소 히어로에 걸맞은 힘을 올바르게 발휘할 기회를 만난다. 캐럴의 캐릭터에서는 개인적 사연이 별로 중요하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는 그 흔한 로맨스에도 엮이지 않는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 또한 꼭 필요한 만큼만 간단하게 처리된다. 중요한 건 ‘나는 누구인가’라는 그의 존재론적 고민뿐이다. 캐럴 댄버스가 비어스를 거쳐 캡틴 마블이라는 합당한 이름을 얻게 되기까지. 영화는 베일에 가려져 있던 그의 과거를 탐험하는 미스터리 구조 안에서 ‘캡틴 마블’이라는 새로운 캐릭터를 알린다. 우연한 기회에 능력을 얻고, 영웅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거치던 기존 히어로들의 서사와는 다른 결이다. 

다른 한 축으로는 MCU 전체의 기원을 좇는 영화이기도 하다. 《캡틴 마블》의 배경은 1990년대 중반. 쉴드가 아직 외계의 위협을 감지하기 이전이며, 개별 히어로들과 어벤져스가 하나둘 등장하기 이전이다. 지구로 온 비어스는 우연히 쉴드 요원 닉 퓨리를 만나 여정을 함께 한다. 영화는 이 과정을 통해 닉 퓨리가 어떻게 어벤져스를 결성하게 되었는지, MCU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키워드인 ‘태서렉트’는 어떻게 발견된 것인지 등을 그린다. 영화는 마블 스튜디오가 10년간 그려온 거대한 그림을 완성하는 퍼즐이자, 이후 등장할 《어벤져스》 시리즈의 마지막 이야기 《어벤져스: 엔드 게임》으로 가는 관문으로서의 몫을 성실히 해낸다.


재미와 정치적 올바름의 공존, 통할까

《캡틴 마블》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은 여성 단독 히어로 영화라는 점이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핵심이다. 주된 활약은 여성 캐릭터가, 조력자는 닉 퓨리 같은 남성 캐릭터들이나 고양이(!)의 몫이다. 캐럴의 과거와 연결된 인물(아네트 베닝)은 물론이고 공군 시절 캐럴의 가장 친한 동료 역시 여성이다. 심지어 혼자 딸을 키우고 있는 싱글맘이다. 브리 라슨이 이 작품을 ‘페미니즘 영화’라고 소개한 것은 타당하다. 

《캡틴 마블》은 여성 영웅이 대열의 정중앙에 서는 모습이 자연스러운 히어로 무비를 자처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이는 슈퍼 히어로 영화가 전 세계 관객을 사로잡았던 최근 10년 동안 아주 서서히 바뀌다 드디어 자리를 잡은 하나의 양상이다. 앞서 등장한 여성 솔로 히어로 무비인 DC의 《원더우먼》(2017)도 물론 훌륭한 시도였다. 《캡틴 마블》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아직 완성되지 않아 미숙하고, 그렇기에 점차 성장하는 여성 캐릭터를 그린다. ‘여자이기에 안 된다’라는 비아냥을 감수하고, 수없이 실패하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끈기가 캐럴에게는 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온전히 ‘나’로서 자기 자신의 존재를 찾아나갈 수 있는 강인함도 있다. 게다가 지금껏 등장한 모든 히어로들을 압도하는 가공할 만한 능력을 갖춘 여성 히어로다. 이는 단순히 소녀들의 꿈만을 지켜주는 서사가 아닐 것이다. 

이 영화는 브리 라슨이 언급한 ‘페미니즘 영화’라는 표현 때문에 개봉 전부터 이례적인 평점 테러를 겪었다. 브리 라슨의 외모를 비하하는 말들도 쏟아졌다. 국내에서는 개봉 당일 상영관 앞에서 보이콧 시위를 열겠다는 일부 관객들도 나타났다. 그러나 개봉 하루 전인 3월5일 저녁, 《캡틴 마블》의 예매율은 90%까지 치솟았다. 예매량은 40만 장에 달했다. 역대 마블 솔로 히어로 중 최고 기록이다. 상업적 재미와 정치적 올바름의 공존을 계속해서 꾀하고 있는 마블의 전략, 이번에도 통할 수 있을까. 

4월에 개봉하는 영화 《어벤져스: 엔드 게임》의 한 장면
4월에 개봉하는 영화 《어벤져스: 엔드 게임》의 한 장면

이후 MCU에서는 어떤 히어로가? 

MCU에는 세계관을 구분하는 ‘페이즈’라는 단위가 있다. 《캡틴 마블》에 이어지는 《어벤져스: 엔드 게임》(4월 개봉)까지가 페이즈 3의 작품들. 이후 페이즈 4를 장식하는 마블의 영화들은 무엇일까. 우선 새로운 스파이더맨의 이야기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이 연내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유럽으로 여행을 떠난 피터 파커(톰 홀랜드)가 닉 퓨리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그곳에서 새로운 미션에 도전한다는 내용이다. 《어벤져스》 시리즈의 강력한 여전사 블랙 위도우(스칼렛 요한슨)의 솔로 무비인 《블랙 위도우》도 출격을 준비 중이다. 블랙 위도우가 쉴드에서 일하던 ‘나타샤 로마노프’ 시절의 이야기를 다룰 것으로 알려졌다. 2020년 공개 예정. 새로운 시리즈 《이터널즈》도 대기 중이다. 특별한 능력을 지닌 ‘이터널’ 종족 중 지구를 지키려는 이들을 모아놓은 단체를 의미한다. 2020년 공개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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