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없는 포차》가 전해 준 ‘삶의 울림’
  • 하재근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3.10 10:00
  • 호수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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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시선’ 거두고 ‘나’에 집중하는 덴마크의 다름에 ‘호응’

올리브와 tvN에서 동시 방영된 《국경 없는 포차》가 프랑스와 덴마크편으로 마무리됐다. 최종회가 케이블, 위성, IPTV 통합 유료플랫폼 시청률 가구 평균 2.7%로 종편, 케이블 동시간대 1위에 오를 정도로 나름의 성과를 거뒀다. 특히 올리브 채널 타깃인 ‘2049 여성’ 시청률은 2.0%로 역시 종편, 케이블 동시간대 1위에 올라 향후 시즌2가 제작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 tvN
ⓒ tvN

설정은 우리나라 연예인들이 해외에 나가 한국식 포장마차를 여는 식이다. 《윤식당》처럼 해외로 나가는 한국 요리방송 또는 먹방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유사 프로그램들은 일반적으로 불고기 등 고기구이를 내놓는 데 반해 《국경 없는 포차》는 한국식 포장마차 길거리 음식을 내세운 점이 달랐다. 떡볶이·닭똥집·불닭볶음 등 우리에게 친숙한 음식을 서양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관전 포인트였다.

그리고 박중훈을 비롯한 우리나라 연예인들과 현지인들이 나누는 대화, 또 현지인들끼리 자신들의 문화와 한국의 인상에 대해 나누는 대화 내용이 프로그램의 중요한 콘텐츠였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대한 호감을 표시하면서 동시에 자신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설명하는 장면들은 시청자의 관심을 모았다. 특히 요즘 한국 젊은 세대 사이에서 북유럽에 대한 관심이 커져 가고 덴마크의 ‘휘게’(덴마크 등 북유럽 사람들이 지향하는 여유롭고 소박한 삶의 방식)가 유행 키워드가 될 정도이기 때문에 덴마크편에서 나온 덴마크인들 사는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국경 없는 포차》 덴마크편의 한 장면 ⓒ tvN
《국경 없는 포차》 덴마크편의 한 장면 ⓒ tvN

울림을 남긴 덴마크 이야기

포장마차에 들른 덴마크 교민 커플은 현지에서 느끼는 행복에 대해 “내 인생이 어떻게 돼도, 돈 많은 가족이 없어도, 국가가 내 최악의 상황을 막아줄 거라는 안정감이 행복을 느끼게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 입장에선 아주 낯선 말이다. 국가가 내 최악의 상황을 막아줄 거라는 믿음이 거의 없는 사회에서 우린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믿음이 없기 때문에 우린 언제나 불안하고, 그래서 추락하지 않으려 피라미드 꼭대기로 올라가려는 《SKY캐슬》 열망이 나타난다. 불안하기 때문에 더 출세에 목매고 재산을 모으려 하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한사코 공무원이 되려고 하는 것도 공무원이 되면 최악의 상황이 닥치지 않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각종 보험이 각광받는 것도 같은 배경에서다. 언제 추락할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력구제에 몰두하는 사회. 덴마크는 국가공동체가 개인의 뒤를 받치기 때문에 그런 불안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인 유학생 출신 여성과 덴마크 남성 부부는 대학원 다닐 때 학비가 무료였으며, 나라에서 월 100만원 정도의 용돈까지 지급했다고 했다. 이어 “덴마크에선 살면서 돈 얘기를 안 하고 삶 자체를 즐기는 데 집중한다”고 했다. 돈 얘기 안 하는 삶을 우리는 상상하기 힘들다. 돈이 없으면 바로 벼랑 끝에 몰리기 때문에 서민의 삶 속에선 돈 걱정하는 대화가 수시로 등장한다. 하지만 덴마크는 기본적인 삶을 공동체 차원에서 해결하기 때문에 개인이 돈 걱정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 사람에게 돈이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기본적인 생활이 보장되면 사람은 자연스럽게 저마다의 개성과 자질을 발전시키며 살게 마련이다. 그런 보장이 없고, 돈이 없으면 바로 나락으로 떨어지거나 사회적으로 멸시당하고, 생존의 위협까지 느끼게 되는 사회에선 사람들이 무엇보다도 돈을 일순위로 여기게 된다. 그래서 단지 돈을 버는 것, 부자가 되는 것 자체를 삶의 목표로 생각하며 돈에 목을 매는 ‘황금 지상주의’가 등장하고 삶은 공허해진다.

현지 교민 커플은 “덴마크에선 남과의 비교보다 나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삶을 살게 된다”고 말했다. 모두에게 기본적인 삶이 보장되면 특별히 멸시당하거나 낙오할 일이 없기 때문에 타인의 시선, 타인의 삶이 나에게 중요하지 않게 된다. 그럴 때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다. 반면에 우리는 남에게 번듯하게 보이는 삶을 중시하고, ‘남보다 못살면 큰일 난다’고 생각한다. 돈과 지위에 점점 민감해져 사람의 가치를 돈과 지위로 따지다 보니 정작 중요한 삶의 실존적 가치가 소외된다. 

우리와는 너무도 다른 사회의 이야기라서 경청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이렇게 다른 문화권의 이야기들을 듣고 한번쯤 성찰해 보는 것이 이런 프로그램의 중요한 미덕이다. 우리의 조건과 다른 먼 나라 이야기이기 때문에 무조건 따라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팍팍한 현실에 피폐해진 사람들을 잠시나마 꿈꾸게 하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시청자의 관심을 끈 것이다.

《국경 없는 포차》 프랑스편의 한 장면
《국경 없는 포차》 프랑스편의 한 장면 ⓒ tvN

과한 설정은 아쉬워…시즌2선 과유불급 피해야

하지만 애초 기대에 비해선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박중훈·신세경까지 투입된 블록버스터급 구성이고 해외로 한국 포장마차가 나간다는 ‘국뽕’식 설정이라면 더 큰 성공이 기대됐었다. 홈런을 기대했는데 2루타 정도가 나온 셈이다.

설정을 너무 과하게 한 게 문제였다. 앞에서 소개한 것과 같은 의미 있는 이야기들이 가끔 자연스럽게 나오면 좋은데 과하게 자주 나오다 보니 제작진이 작정하고 설정했다는 느낌을 줬다. 이 외에도 현지인들이 포장마차에서 너무나 낭만적으로 노래를 부른다든지, 한국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외국인들이 수시로 등장해 시청자를 피로하게 했다. 그야말로 과유불급이었던 것이다. 예컨대 노래의 경우에 전체 시즌을 통틀어 한 번 정도 그런 일이 벌어지면 자연스럽게 정취에 빠져들 수 있지만, 툭하면 음식 먹던 손님이 갑자기 일어서서 노래공연을 하고 심지어 어디선가 악기까지 등장하니까 자연스러움이 사라져 버렸다.

《윤식당》은 자연스러운 느낌으로 사랑받고, 그 속에서 가끔 의미 있는 이벤트나 대화들이 등장해 크게 화제가 됐다. 반면에 《국경 없는 포차》는 의미 있는 장면이 너무 많아 그 효과가 상쇄돼 버렸다. 블록버스터급 투입을 하고도 2루타에 그친 이유다. 시즌2를 준비한다면 제작진이 자연스러운 느낌, 과하지 않은 느낌에 대해 유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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