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미세먼지가 던진 화두, ‘국가는 내게 무엇인가?’
  • 소종섭 편집국장 (jongseop1@sisajournal.com)
  • 승인 2019.03.11 09:00
  • 호수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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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는 정말 끔찍했습니다. 답답했습니다. 피가 튀고 살이 찢기는 장면을 보는 것만 끔찍한 것이 아닙니다. 지하 골방에 갇혀 있는 것만 답답한 것이 아닙니다. 온 세상이 뿌옇게 변한 한 주였습니다. 숨 쉬기가 힘들었습니다. 아이들은, 어르신들은 오죽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문가들은 5월까지 최악의 미세먼지가 한반도를 덮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이제 시작이라는 말과 다름없습니다. 이러니 정말 끔찍하고 답답할 수밖에요. 

제게는 먼지와 관련한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광부였습니다. 농사를 짓다가 동네에 광산이 생기면서 돈을 벌기 위해 광부가 됐습니다. 저녁이면 아버지는 검은 먼지를 잔뜩 안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옷은 물론이고 손, 발, 얼굴에도 늘 먼지가 있었습니다. 어린 마음에도 “석탄 가루나 먼지가 아버지 폐 속으로 들어가면 폐도 검어질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래전 이야기입니다. 아스팔트로 포장되기 전이어서 도로에서 날리는 먼지를 먹는 것이 일상이던 시절이었지요.

ⓒ 시사저널 고성준
ⓒ 시사저널 고성준

요즘 미세먼지는 그때의 먼지와 다릅니다. 그냥 먼지가 아닙니다. 1급 발암물질입니다. 일상생활이 불편한 것만 해도 신경이 쓰이는데 장기적으로 건강에 해를 끼친다는 생각까지 하면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듭니다. 미세먼지가 이처럼 심하다면 ‘국가 재난’이 맞습니다. 규정 자체가 달라야 합니다. 그래야 그에 맞는 대처 방안이 나옵니다. 사안을 보는 이슈 수준도 과거와 확 달라졌습니다. 특히 젊은 세대가 피부로 느끼는 민감도가 남다릅니다. 보릿고개라는 단어를 알지 못하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환경에서 자랐기에 거창한 구호보다 실질적인 삶의 질을 중시합니다. 딸이 한마디로 정리하더군요. “그냥 죽으라는 거죠.”

‘미세먼지 사태’ 와중에 많은 시민들은 ‘국가는 내게 무엇인가’를 질문합니다. 맘카페에서는 국가가 아니라 돈이 나를 지킨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당장의 호들갑스러운 조치로는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시민들은 미세먼지와 관련한 정확한 국가적인 통계조차 없다는 데 절망합니다. 진단이 정확해야 그에 맞는 대책을 내놓을 수 있는데 말이지요. 시민들은 언제까지 개인이 마스크를 쓰는 것으로 견뎌야 하는지 때로는 분노를 토해 냅니다. 마스크 사는 것조차 힘겨운 영세민들은 어쩌란 말입니까. 시민들은 미세먼지 발생에 상당한 책임이 있는 중국에 할 말은 하라고 말합니다. 오죽하면 중국 외교부가 “한국 미세먼지가 중국에서 왔다는 충분한 근거가 있는가”라고 했다니 복장이 터질 일입니다. 우리를 얕잡아 봐도 한참 얕잡아 본 것입니다. 미세먼지 시대, 솔직하고 당당하고 믿음직스러우며 능력 있는 정부를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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