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인터뷰③] 문화부 장관 시절 눈물 자아낸 감사 편지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9.03.12 08:00
  • 호수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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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창간 30주년 특별기획] 대한민국, 길을 묻다⑩
이어령 前 문화부 장관 “산업화 시대에 밀려나 있던 복지, 생명가치 살아날 것”(下)

혼돈의 시대다. 혹자는 난세(亂世)라 부른다. 갈피를 못 잡고, 갈 길을 못 정한 채 방황하는, 우왕좌왕하는 시대다. 시사저널은 2019년 올해 창간 30주년을 맞았다. 특별기획으로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 등 각계 원로(元老) 30인의 ‘대한민국, 길을 묻다’ 인터뷰 기사를 연재한다. 연재 순서는 인터뷰한 시점에 맞춰 정해졌다. ⓛ조정래 작가 ②송월주 스님 ③조순 전 부총리 ④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⑤손봉호 기아대책 이사장 ⑥김원기 전 국회의장 ⑦김성수 전 대한성공회 대주교 ⑧박찬종 변호사 ⑨윤후정 초대 여성특별위원회 위원장 ⑩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앞선 (中)편 [이어령 인터뷰②] “정보화 이후 생명화 시대 온다” 기사에 이어 계속됩니다. 

이어령 전 장관에게 글쓰기는 목숨과도 같았다. 사진은 그가 서재에서 글을 쓰고 있는 모습 ⓒ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제공
이어령 전 장관에게 글쓰기는 목숨과도 같았다. 사진은 그가 서재에서 글을 쓰고 있는 모습 ⓒ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제공

노태우 정부 시절 초대 문화부 장관을 맡은 2년여의 기간 동안 그는 가장 보람됐던 일로 서울 시내 ‘쌈지공원’을 조성한 일을 꼽았다. 이는 그가 장관 시절 눈물을 보였던 몇 안 되는 기억이기도 하다. 

그 당시 서울 시내엔 어떤 용도로도 활용하기 힘든 소위 ‘자투리땅’들이 있었다. 변두리로 갈수록 이러한 ‘노는 땅’은 더 군데군데 많았다. 대부분 동네 주민들이 연탄 등을 쌓아놓고 쓰는 용도로 활용됐다. 이 장관은 고건 당시 서울시장과 함께 이 땅의 활용도를 고민했다. “하루는 서울 지적도를 쫙 펴놓고 이 자투리땅들을 전부 찾아냈어요. 그리고 그중 몇 군데를 찍어서 조그만 ‘쌈지공원’을 만들기로 결정했죠.”

이 장관은 작은 공원 안에 유명 조각가의 작품을 세우고 바람에 따라 소리를 내는 풍경(작은 종)들도 달았다. 여러 예술가들의 재능기부가 한몫했다. “이곳에서 주민들이 자유롭게 뛰놀도록 하자. 여기서 숨구멍이 트이고, 아이들이 여기 설치된 작품들을 감상하며 시인을 꿈꾸고 미술가를 꿈꾸도록 하자.” 그의 이런 포부는 곧장 ‘문화부가 왜 공원을 만드느냐’는 국회의 항의에 부딪혔다. 그때마다 그는 “그곳은 가장 문화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 한가운데 놓인 ‘문화 아리아’”라고 강조했다.

개원식 때 고건 시장과 함께 참석한 이 장관은 공원에 들어서자마자 왈칵 눈물을 쏟았다. “동네 어린아이들이 색종이 같은 데다가 맞춤법도 다 틀린 비뚤비뚤한 글씨로 ‘장관님 고맙습니다’라고 적어 쭉 붙여놨더라고요. ‘틀림없이 편지를 쓴 아이들 중에 예술가가 배출될 거다, 이게 문화다’ 생각했어요. 그 풍경을 떠올리면 지금도 눈물이 확 날 것 같아요.” 

이 장관은 당시를 회상하며 재미있는 일화도 하나 털어놓았다. 

이 장관에 따르면, 당시 그가 공원 안에 풍경을 달아놓겠다고 했을 때 직원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은 한사코 그를 뜯어말렸다. ‘그 동네 사람들은 남의 집 문패까지 훔쳐간다’며 ‘장관이 세상 물정 모른다’는 얘기가 그에게 전해졌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고집을 부려 풍경을 달았다. ‘댕그랑거리는 게 아름다우니 아무도 떼 가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었다. 

“우스운 건 그렇게 큰소리치고 나서, 그 공원 가까이 사는 우리 직원 한 명에게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한 번씩 누가 떼 갔나 확인해 보라’고 시켰어요. 그 직원은 아침마다 나한테 보고했어요. ‘아직 안 떼 갔습니다’라고. 그런데 그 풍경, 내가 장관 그만둘 때까지 그대로 있었어요. 내 생각이 맞았던 거예요.”

이렇게 만들어진 쌈지공원은 30년이 흐른 지금도 서울 일대 곳곳에 남아 마을의 쉼터가 되고 있다. 그는 “그 후 소식을 듣기로는 마을 사람들이 공원에서 잔치도 열었대요. 이만한 보람이 어딨을까요”라며 “지금도 고건 시장 만나면 ‘거기 한번 가봅시다’ 말합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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