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소각한 롯데지주 일본의 지배력 강화되나
  • 유재철 시사저널e. 기자 (yjc@sisajournal-e.com)
  • 승인 2019.03.13 15:00
  • 호수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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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롯데의 롯데지주 지분율 상승…롯데 측 “호텔롯데 상장의 중간 단계”

“롯데는 일본 기업입니까? 한국 기업입니까?”

국내 소비자들은 ‘롯데’를 놓고 종종 이런 질문을 한다. 아쉽지만 현재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을 할 수는 없다. 한·일 롯데의 영업 규모를 봤을 땐 한국롯데가 압도적이어서 롯데 앞에 ‘한국’을 붙여도 어색하지 않지만, 지배구조를 보면 롯데는 엄연히 ‘일본 기업’이기 때문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형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현 SDJ코퍼레이션 회장)과의 경영권 다툼으로 지난 2015년 9월17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롯데’의 정체성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힌 적이 있다. 당시 신 회장은 “롯데가 한국의 상법을 따르고 세금도 한국에 낸다. 롯데의 모든 기업이 대한민국 기업”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그는 “내년(2016년) 2분기까지 호텔롯데를 상장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롯데에 일본 이미지가 씌워진 것은, 대부분이 비상장 계열사여서 파악하기 힘들었던 지배구조의 뚜껑을 열어보니 그 정점에 일본 주주들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위 ‘왕자의 난’으로 그 실체가 드러나자 당연히 한국 기업인 줄 알았던 소비자들은 공분해 ‘불매운동’까지 벌일 기세였다. 급기야 신동빈 회장은 국회 출석이라는 정공법으로 대응했고 ‘호텔롯데 상장’이라는 강수를 꺼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왼쪽)이 일본 기업 이미지 지우기에 나선 가운데, 최근 롯데지주가 자사주 소각에 나서 주목된다. 오른쪽은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 시사저널 최준필·시사저널 박정훈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왼쪽)이 일본 기업 이미지 지우기에 나선 가운데, 최근 롯데지주가 자사주 소각에 나서 주목된다. 오른쪽은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 시사저널 최준필·시사저널 박정훈

‘안갯속 행보’ 호텔롯데 상장

그러나 2016년 2분기까지 한다던 호텔롯데의 상장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호텔롯데의 상장은 롯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의 마지막 퍼즐이자 핵심으로 여겨진다. 호텔롯데는 롯데케미칼, 롯데물산, 롯데건설 등을 거느리면서 사실상 롯데그룹의 지주사 역할을 해 왔다. 호텔롯데의 지분을 일본 롯데홀딩스와 일본 투자회사(L1~L12)가 97.2%를 갖고 있기 때문에, 상장을 통해 일본 주주들의 지분을 희석시키지 않는 이상 롯데의 일본 이미지는 지워질 수 없다.

금융계열사 매각은 호텔롯데 상장의 최대 걸림돌이다. 현재 롯데그룹의 지배구조는 ‘일본 롯데홀딩스→호텔롯데→롯데지주’로 이어져 있다. 호텔롯데가 보유한 금융계열사 지분은 공정거래법상 금산분리 원칙을 적용받지 않는다. 그러나 롯데지주가 보유한 금융계열사 지분은 오는 10월 유예기간까지 매각해야 한다. 공정위의 승인을 얻으면 2년 연장이 가능하다. 호텔롯데의 상장이 2~3년 미뤄질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 경우 투명한 지배구조와 일본 주주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신동빈 회장의 계획도 잠정 연기될 수밖에 없다. 

일본 기업 이미지를 벗고 한국롯데를 중심으로 한·일 통합경영을 꿈꾸는 신동빈 회장의 ‘원롯데’ 정책은 최근 롯데지주의 자사주 소각으로 다시 의문부호가 달린 상황이다. 롯데지주는 지난해 12월25일 자사주의 25%에 해당하는 1165만7000주를 소각했다. 호텔롯데가 보유한 롯데지주 주식은 1164만4662주로 변화가 없지만 총 발행주식 수가 줄어들어 지분율이 11.1%까지 상승했다. 보통 한 기업의 자사주 소각은 주식 가치의 제고를 위해 단행한다. 시중에 유통되는 주식의 양이 줄게 되니 그만큼 희소가치가 높아지고, 향후 주가는 뛸 가능성이 높다. 자사주 소각은 해당 기업의 주식을 보유한 투자자들에게는 호재다. 

그러나 롯데지주의 자사주 소각은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롯데지주에 대한 호텔롯데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호텔롯데와 일본롯데의 연결고리를 끊으려는 신동빈 회장의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는 것을 뜻한다. 

투자업계는 롯데지주의 남은 자사주 향방에 주목하고 있다. 롯데지주가 신 회장의 롯데지주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추가적인 자사주 소각을 단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롯데지주는 지난 자사주 소각에서 보유 자사주 중 4분의 1만 소각했다. 나머지 모두를 소각할 경우 신 회장의 롯데지주 의결권은 17%대까지 올라간다. 이 경우 호텔롯데의 지분은 16% 중반까지 치솟는다. 업계 관계자는 “그간 롯데가 일본 기업의 이미지를 벗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기 때문에 호텔롯데가 보유한 롯데지주의 지분율 상승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면서 “남은 자사주의 향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롯데 측은 자사주 소각과 관련해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롯데지주의 자사주 소각으로 지분율만 달라졌을 뿐 의결권엔 전혀 변화가 없다. 호텔롯데 상장의 중간단계로 보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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