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버들이여, 노조에 가입하라…독일, 유튜버 연합 생겨
  • 강성운 독일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3.14 13:00
  • 호수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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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 노동조합 역사 깊은 독일서 일고 있는 움직임
프리랜서 노동자들의 권리 위협하는 플랫폼 경제에 대한 대처 필요성 커져

2018년 12월 한국에서 출범한 ‘전국여성노동조합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지회’(이하 디콘지회)는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디콘지회는 ‘레진코믹스 불공정행위 규탄 연대’(레규연)와 ‘여성프리랜서일러스트레이터연대’(WFIU)가 주축이 돼 만들어졌다. 이들은 여성혐오적인 인신공격과 함께 ‘프리랜서가 웬 노동조합이냐’는 몰이해에 부딪혔다. 

반면 독일은 프리랜서 노동조합의 역사가 깊은 나라다. 이미 1960년 독일노동조합총연맹(DFB) 산하 방송노동지회가 프리랜서의 가입을 허용했다. 현재는 세계 최대 노동조합인 독일의 통합서비스노조(ver.di)에 독립노동자지회(이하 독노회)가 설치돼 있다. 독노회 조합원들은 언론·출판·예술 분야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다. 회원 수는 3만 명으로, 200만 명의 통합서비스노조 조합원 중 극소수에 속한다. 하지만 통합서비스노조는 프리랜스 노동자의 권리 확보에 지대한 관심을 두고 있다. 디지털 미디어의 발달로 고용 형태가 급속히 변하고 있고, 정규직과 프리랜스를 오가는 노동자도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르셀 독노회 사무관은 “독일에 약 430만 명의 프리랜서 노동자가 있으며 상당수가 불안정한 형태로 노동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저임금노동은 프리랜서 노조 초기부터 지적된 문제다. 프리랜서는 제각각 발주를 받아 일을 하는 만큼 업계 표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고, 기업과의 협상 단계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창작을 노동이 아닌 숭고한 정신적 활동으로 여기고, 창작자들이 가난하게 사는 것을 당연시하는 뿌리 깊은 낭만주의적 환상 역시 창작자들이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하게 했다. 노벨상을 수상한 독일 작가 하인리히 뵐은 1969년 독일작가연합 창립 기념 연설을 통해 창작자 노동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독일의 모든 글 쓰는 사람들이 파업을 한다면 출판사와 방송사, 신문사가 모두 마비될 것이라고 주장하며 프리랜서 노동 운동의 단초를 제시했다. 연설의 제목은 ‘검소함의 종말’이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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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도 최저임금 보장 원칙

1974년 임금협약법 개정안이 마련되면서 독일 프리랜서 노동자들은 일종의 최저임금을 보장받게 됐다. 적어도 공영방송사에서 일하는 프리랜서들은 1976년부터 임금협약법에 의거한 계약서를 썼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사기업 및 예술업계에서는 프리랜서들이 제 몫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독노회는 상담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단순히 자문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미르셀 독노회 사무관은 “한 기업에 대해 대여섯 명의 프리랜서들이 각각 상담을 신청하면 우리는 그 기업에 문제가 있다고 파악하고 행동에 나선다”며 “아직 선례는 없지만 이론상 익명으로 집단소송을 걸 수도 있다”고 말했다.

유튜브, 우버, 각종 음식 배달 애플리케이션 등 서비스 수요자와 공급자를 직접 연결해 주는 플랫폼 발달은 서비스 제공자들의 노동자성을 해체하고 있다.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개개인은 서로 경쟁관계에 있기 때문에, 과거와 같이 연대해 플랫폼 운영자에게 개선을 요구하기 어렵다. 미르셀 사무관은 “유튜브 등 새로운 디지털 매체들은 ‘우리는 고용주가 아니라 플랫폼을 제공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유튜버들은 플랫폼을 이용하기 위해 일반상업규정(AGB)에 동의해야 하며, 그 순간 유튜버와 유튜브의 관계는 평등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플랫폼이 개개인의 노동을 바탕으로 수익을 얻는 이상 고용주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독일의 유튜버인 요르크 슈프라베는 이미 2018년 3월 유튜버 유니온(연합)을 결성했다. 그는 고무줄부터 전기모터까지 다양한 도구를 이용해 새총을 만들고 각종 생활용품을 쏘는 영상으로 구독자 200만 명을 모았다. 그런데 지난해 유튜브가 갑자기 약관을 변경하면서 그의 비디오를 차단했다. 테러에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이유였다. 또 다른 비디오는 유튜브의 자동 필터 기능으로 차단됐다. 제목에 ‘발가벗은 진실’이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사람의 나체와는 전혀 상관없는 내용이었지만 유튜브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유튜브를 비롯한 플랫폼들이 임의로 약관을 변경해 생계에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고 교섭단체를 만들었다.

유튜버 유니온은 생긴 지 채 1년이 되지 않아 1만6500여 명의 회원을 모집했다. 독일의 사회학자 얀 펠릭스 슈라페는 “플랫폼 운영기업들은 기존 법의 빈틈을 이용해 노동자의 권리를 침해해 왔다”며 유튜버 유니온의 등장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유튜버 유니온은 현재 독일 금속노조와 협업을 논의 중이다.


프리랜서 은퇴 후 생계 보장은 여전히 과제

미르셀 독노회 사무관은 유튜버를 비롯한 프리랜서 노동자들이 떠안고 있는 가장 중대한 문제로 사회보장을 꼽았다. 독일에서 회사에 고용된 노동자들은 연금·의료·간호보험을 회사와 절반씩 부담해서 낸다. 그러나 프리랜서는 전부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 고용 노동자에 비해 소득이 낮고 불안정한 프리랜서들에겐 이중 부담이다. 예술가사회보험(KSK)은 프리랜서 노동자들에게 꿈같은 존재다. 독일의 언론·출판·예술 분야의 프리랜서들은 KSK를 통해 회사원과 동등한 사회보장 혜택을 받고 있다. KSK는 일정한 심사를 거쳐 연 3900유로 이상 소득을 얻는 프리랜서 창작자들의 연금·의료·간호보험의 절반을 대신 내준다. 예산은 연방정부와 각 기업의 분담금으로 충당한다.

미르셀은 이러한 제도를 다른 분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노인 빈곤 때문이다. 연금 및 간호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은 은퇴 후 노인 빈곤에 처할 위험이 크다. 이들도 최저생계비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독일법은 최저생계비 수급자가 다른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정해 뒀다. 이 때문에 현재 독일에서 진행 중인 연금법 개정 논의를 통해 프리랜서의 노인 빈곤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한편 독일의 여성 프리랜서 노동자는 남성에 비해 훨씬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다. KSK의 자료에 따르면, 여성 프리랜서는 글·음악·연기 등 전 분야와 전 연령대에서 남성에 비해 소득이 낮다. 유일한 예외는 20대 여성 작가군이지만, 30대부터는 역전된다. 미르셀 사무관은 “프리랜서 노동자의 성별 간 임금격차의 원인은 연구가 필요하다”면서 “프리랜서 창작자들의 주요 소득원인 공모사업 심사위원 대다수가 남성이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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