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재판 선 것 자체만도 의미…‘5·18 망언’, 긴장할 것”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9.03.11 16: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재판 출석한 전두환 전 대통령, 혐의 인정할까
피해자 측 변호인과 5·18재단 관계자 “형량 적겠지만 재판 상징성 매우 커”

32년 만에 ‘피고인’ 자격으로 광주를 방문한 전두환 전 대통령은 법정에서 자신의 혐의를 인정할까.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피소된 전 전 대통령의 첫 재판이 3월11일 오후 2시30분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렸다. 검찰이 지난해 5월 그를 불구속 기소한 지 10개월여 만의 재판 출석이다. 그는 2017년 4월 펴낸 자신의 회고록에서 5·18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를 ‘파렴치한 거짓말쟁이’ 등으로 비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가 광주로 향하는 이 날, 서울 연희동 그의 자택 앞은 이른 오전부터 지지자들과 보수단체의 집회로 떠들썩했다. 이들은 전씨의 재판 출석을 반대하고 5·18민주화운동을 ‘폭동’으로 비난하는 등 전씨가 광주로 출발하기 전까지 집회를 이어갔다. 32년 동안 전씨의 방문을 기다려 온 광주는 법정 앞 5월 단체와 광주 시민들의 일부 야유가 있었을 뿐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를 유지했다. 

고 조비오 신부 사자명예훼손 혐의를 받고 있는 전두환씨의 재판이 3월11일 오후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리는 가운데 전 씨가 재판을 받기 위해 법정에 들어서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고 조비오 신부 사자명예훼손 혐의를 받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재판이 3월11일 오후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리는 가운데 전씨가 재판을 받기 위해 법정에 들어서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전씨 고의성 입증하는 데 어려움 없을 것”

전씨 회고록 관련 피해자 측 변호인들과 5·18재단 측이 주목한 이날 재판의 관건은 크게 처음으로 자신의 혐의에 대해 직접 입을 열 전씨의 혐의 인정 여부와 사자명예훼손의 고의성 여부였다. 회고록 관련 피해자 측 변호인단과 5·18재단 측은 고의성을 입증할 만한 정황은 나올 만큼 나왔다는 입장이다. 

변호인단 중 한 명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 김정호 변호사는 이날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전두환 회고록 출판 시기가 2017년 4월인데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그로부터 3개월 전 이미 전일빌딩에 대한 헬기 사격 탄흔 결과가 나왔다. 팩트체크 기회가 있었는데도 헬기 사격을 극구 부인하고 조비오 신부님을 원색적으로 비난했다”며 “백번 양보해 의도적 명예훼손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최소한 미필적 고의는 분명히 있다”고 강조했다. 

조진태 5·18재단 상임이사 역시 “이미 드러난 상황만으로도 검찰이나 우리 측 변호인단이 전씨의 공소사실을 입증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거라고 다들 보고 있다”며 “다만 전씨가 재판에서도 계속 사실관계를 전면 부인할 경우 재판이 장기화되고 또다시 국민적 관심에서 멀어질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날 법정에 선 전씨는 재판 절차상 그간의 침묵을 깨고 어떻게든 자신의 입장을 스스로 밝혀야 한다. 회고록 출간 후 그동안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비난과 의혹에 전씨 자신은 줄곧 침묵을 이어왔다. 치매 등 건강 이상을 주장하며 미뤄왔다. 이 때문에 재판장이 공소사실에 대한 인정신문을 진행하면서 나오게 될 전씨의 일성(一聲)에 재판 전부터 관심이 집중됐다. 

회고록 관련 피해자 측 변호인단과 5·18재단 측은 전씨가 그동안 극구 부인했던 자신의 혐의를 향후 재판 과정에서 인정할 리 없다고 내다봤다. 피해자 측 정인기 변호사(민변)는 ”그동안 전씨의 일관성을 봤을 때 공소사실을 계속 부인할 것”이라며 “다만 헬기사격 의혹 자체부터 강하게 부인할지, 회고록 작성에 구체적으로 관여하지 않아 명예훼손 내용에 대해 잘 몰랐다고 부인할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호 변호사 역시 전씨 측이 이번 재판을 이미 물러설 수 없는 ‘정치투쟁’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 변호사는 “전씨는 헬기사격 사실과 북한군 개입설의 허위성을 인정하면 5·18 관련한 자신들의 모든 논리가 와르르 무너지는 상황”이라며 “자신들을 믿고 있는 세력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끝까지 지금 주장을 고수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재판에 출석하기 전 광주 동구 광주지방법원 앞에서 시민들이 전 대통령의 구속을 촉구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전두환 전 대통령이 재판에 출석하기 전 광주 동구 광주지방법원 앞에서 시민들이 전 대통령의 구속을 촉구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전씨, 재판 ‘정치투쟁’으로 여기고 주장 밀어붙일 것”

법원이 사자명예훼손의 고의성을 인정하고 유죄 판결을 내릴 경우, 전씨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받게 된다. 그를 향한 각종 의혹과 사회적 비난의 무게에 비해선 형량이 다소 낮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피해자 변호인단과 5·18재단 측은 가시적인 형량보다 재판의 상징적 의미에 가치를 두고 있다. 

조진태 5·18재단 상임이사는 “전씨가 재판에 선 것 자체로도 5·18을 모독했던 이들에게 상당한 파장을 줄 것”이라며 “그동안 5·18을 두고 망언을 일삼았던 이들에 대한 책임 규명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정인기 변호사 역시 “형량보다는 헬기사격이 있었느냐 없었느냐가 결정되면 역사가 달리 써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