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독립을 묻다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3.18 09:00
  • 호수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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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고보 2학년 학생 김동혁에게 1919년 3월1일은 운명의 날이었다. 그는 이날 선배로부터 독립선언서 여섯 장을 받아 시민들에게 배포하고, 만세 시위에 참가했다는 혐의로 체포돼 모진 고문을 받았다. 이어 열린 재판에서 그는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재판 과정에서 “피고는 학생인데 어떻게 해서 이번 계획에 가담했는가”라는 판사의 물음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나는 조선 사람으로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한 것입니다. 그것은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당연한 일일 뿐이었습니다.”(조한성 지음 《만세열전》 중에서)

1919년 3·1 만세운동을 비롯해 한반도 안팎에서 끊임없이 이어진 독립투쟁에 기꺼이 온몸을 던진 조선인 모두가 어쩌면 김동혁과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조선 사람으로서 반드시, 또 당연히 해야 할 일로서 만세를 부르고 독립을 외쳤다. 3·1 운동 100주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은 이 봄에 그들을 기리는 마음은 더욱 각별하고 애틋할 수밖에 없다. 그들의 희생이 있어 우리의 오늘이 있음을 또렷이 기억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미래가 어찌 귀결될지 뻔히 알면서도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진 그들의 마음이 얼마나 간절하고 강건했을지를 헤아리기는 쉽지 않다. 다만 조국을 위해서라면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은 그들의 행동이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숭고한 것임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따름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3월1일 오전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제100주년 3.1절 기념식에서 3.1절 노래를 제창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3월1일 오전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제100주년 3.1절 기념식에서 3.1절 노래를 제창하고 있다. ⓒ 연합뉴스

두 개의 100주년이 겹친 이 시간의 의미가 어느 때보다 깊고 무거워서일까. 가슴 안에서 문득문득 이런 질문이 꼬리를 물고 일어선다. 우리는 진정으로 김구 선생이 그토록 염원했던 ‘완전한 자주독립’을 이룬 국가에서 살고 있는가. 자신들이 없었다면 조선의 산업화도 불가능했다고 뻔뻔하게 말하고, 그런 내용을 교과서에까지 실어 보급하는 나라를 이웃 국가로 두고 있는 우리는 진정 독립된 국민인가. 위안부 할머니 문제는 물론, 강제 징병·징용 등 어느 하나도 말끔하게 해결된 것이 없는 이 상태를 과연 독립의 완결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해외에 나가 국적을 소개할 때 한국인이라고 말하면 으레 “South냐, North냐”라는 질문을 후렴처럼 들어야 하는 우리는 진정 독립된 자주 국가의 국민인가. 광복 이후 70여 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친일 세력의 영향력이 곳곳에 살아 있고, 일제의 잔재마저 다 청산되지 못한 나라에 살고 있는 나를 온전히 독립된 국가의 주권시민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서울 종로구에 소재한 서울도시건축센터에서는 지금 ‘기록, 기억: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 다 듣지 못한 말들’이라는 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그 전시관 한 귀퉁이 벽면에는 “저는 지금 열다섯 살입니다. 할머니들이 끔찍한 일을 당하셨을 당시의 나이입니다. 함께 울고 싶어요” “위안부, 시간이 흘러 자연스럽게 잊혀질 일이 아닙니다. 모두 기억하고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같은 내용의 관람평이 인쇄돼 붙어 있다. 이 시대 시민들은 거기서도 똑같이 묻고 있었다. “우리는 과연 완전히 독립된 나라에서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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