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층 더 교묘해진 북한 외화벌이…‘대북제재’ 버티기
  •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3.18 08:05
  • 호수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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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러시아와의 교역량 감소 불구, 석유 불법 환적·가상화폐 해킹 등으로 北 경제 지탱
늘어난 중국 관광객도 한몫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우리 국가에 대한 제국주의자들의 날강도적인 전쟁위협이 무용지물로 된 것처럼 극악무도한 제재압살책동도 파탄을 면치 못하게 되어 있다”고 말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3월9일 보도했다.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대북제재 압박 수위를 더 높여야 한다는 미국 내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에서 김 위원장은 제재를 ‘극악무도한 압살책동’으로 간주하고 ‘자력갱생’으로 위기를 타개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과연 대북제재는 북한 경제에 얼마나 타격을 주고 있는 것일까. 정말 시간이 좀 더 지나면 북한이 제재에 굴복할까. 미리 결론을 얘기하면 ‘여전히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북한은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제재가 지속돼도 그럭저럭 버틸 가능성이 커 보인다.   

북한 한 매장에 원산의  송도원 식품제조시설에서 생산된 제품들이 전시돼 있다. ⓒ AP 연합
북한 한 매장에 원산의 송도원 식품제조시설에서 생산된 제품들이 전시돼 있다. ⓒ AP 연합

대북제재 압박에도 ‘그럭저럭’ 버틸 가능성

2016년 이후 북한에 취해진 고강도 대북제재는 북한 경제에 상당한 타격을 주고 있는 게 분명하다. 이는 추락한 대중(對中) 무역 수치를 통해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다. 2018년 북·중 무역 총액은 24억3079만 달러로, 전년 대비 51.9%나 감소했다. 그중 북한의 대중 수출은 2억1314만 달러로, 전년 대비 약 88%나 줄었다. 이는 북한산 석탄을 비롯한 광물·섬유제품(임가공)·수산물 등 북한의 주요 대중 수출 품목에 대한 전면적 수입금지 효과에 기인한 것이다. 수입 또한 22억1765만 달러로 33.4% 감소했으나 수출에 비해서는 감소폭이 상대적으로 작다. 북한 입장에서 대중 무역적자가 무려 20억 달러가 넘는다.

중국 외 주요 무역대상국인 러시아와의 교역도 크게 감소했다. 중국과의 무역액에 비하면 매우 낮은 규모이긴 하지만 러시아 연방 관세청 자료를 보면 2018년 한 해 동안 수출입을 합한 북한과 러시아 간 총 교역 규모는 약 34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약 7800만 달러에 비해 56.3% 감소했다. 공식 무역만 놓고 보면 북한은 제재로 인해 막대한 외화 수입 손실을 보고 있는 셈이다. 이는 통치자금 축소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대북제재는 김정은의 대량살상무기(WMD) 개발 및 통치자금 차단을 꾀하고 있지만 사실 일반 주민들도 적지 않은 피해를 보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석탄 수출이 금지되면서 탄광 근로자들이 곧바로 거리로 나앉게 됐다. 탄광을 통해 밥벌이를 했던 식당과 물류업체들도 갑자기 할 일을 잃었다. 예를 들어 제재 조치로 석탄 수출을 막는다면 그로 인해 여기에 종사하던 모든 사람들이 장사가 잘 안 되는 경우가 있다. 차 부속이나 식당, 갱목, 차 수리, 광차 생산 등 장사가 전반적으로 잘 안 되니까 시장에서도 돈 유통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북한 주민들에게 긍정적인 면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포착되고 있다. 예를 들어 석탄의 화력발전소 공급량이 늘어 평양을 중심으로 전력 사정이 나아지고 있다. 또한 북한 당국도 나름대로 석탄 수출 중단에 대처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전국에 연탄공장 설립을 지시했고 주민들에게 연탄으로 난방을 할 수 있도록 집 구조를 개조할 것을 유도하고 있다. 최대 철광석 생산지인 함경북도 무산광산이 최근 사실상 가동을 중단했다. 대북제재 등의 여파로 광물 수출이 제한되면서 생산에 차질을 빚다가 결국 가동을 멈췄고, 이에 광산 노동으로 벌이를 하던 무산 지역 주민들이 생활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북한 당국에서는 무산을 ‘지원이 절실한 지역’으로 선정하고 타 지역 주민들에게 호소하고 있지만, 다른 지역도 먹고살기 힘들어 제대로 호응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섬유나 수산물 교역도 어려워지면서 관련 직종에 종사하는 주민들 생계도 어려워졌다. 수산사업소나 북·중 합작·합자 기업이 몰려 있는 나선 경제특구도 상황이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대북제재 영향으로 북·중 합작 기업의 가동이 원활하지 않고 일부 중국산 자재도 유입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수산물 등 주요 상품에 대한 수출 길도 막혀 관련 업종에 종사했던 주민들도 타격을 받고 있다. 

반면 현재 북한에서 시장은 여전히 활성화되고 있다. 이는 강력한 대북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 경제가 굳건하게 버틸 수 있는 주요한 동력이기도 하다. 대북제재로 인해 유류 가격이 요동을 치고 있지만 물류 유통시장은 그리 타격을 받지 않고 있다. 이는 시장 활성화에 따라 교통 수요가 갈수록 높아지는 것에 따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강력한 대북제재 아래서도 북한 물가는 안정세를 보여주고 있다. 

시장 내에선 제재의 파급효과가 크게 두드러지지 않고 있다. 특히 제재 국면에서도 시장 물가가 안정적인 건 시장원리에 따른 결과로 보인다. 일단 제재로 인해 외화 수입이 감소하면 시장 내 유동자산이 줄어든다. 이는 곧 주민들의 수요 감소로 이어져 자연히 시장 물가가 크게 요동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 주요 수출품이 제재 대상으로 지정됨에 따라 이를 내수시장에 풀게 되면, 오히려 예전에 비해 일부 품목의 물가가 눈에 띄게 떨어질 수도 있다. 이는 한편으로 상품공급이 안정적이며 공급의 원천인 외화 또한 안정적으로 공급되고 있음을 뒷받침한다. 


강화된 대북제재에도 구멍 ‘숭숭’

한편 북·중 간 공식 무역 규모는 많이 줄어들었으나 지난해 중국 관광객의 북한 방문은 크게 늘었다. 중국 통계국에서는 비공개로 하고 있으나 중국 관광통계국 관계자에 따르면, 방북하는 중국인 관광객 수가 2018년 7월부터 비약적으로 급증해 전년 대비 약 50% 늘어났다. 방북 중국인은 2018년 6월12일 북·미 정상회담 전후 다시 증가해 약 120만 명에 달한다고 추정한다. 따라서 중국인이 방북해 1인당 최소 300달러를 사용한다면, 2018년 한 해 동안 북한이 관광 등을 통해 벌어들인 외화 수익은 약 3억6000만 달러로, 수출을 통한 것보다 많다. 또한 북한이 지난 2017~18년 가상화폐 교환업체를 공격해 약 5억 달러(약 5685억원)를 탈취했다는 유엔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보고서가 제출됐다. 북한이 경제 제재를 피해 외화를 획득하는 주요 수단으로 사이버 공격을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재로 상실한 약 40% 안팎의 외화를 사이버 공격을 통해 암호화폐로 획득했다고도 지적했다. 석유제품의 불법 환적 등 제재를 회피하는 북한의 수법이 한층 정교해졌다는 것이고 이는 대북제재의 이행과 효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결론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대북제재가 북한의 추가적 비핵화 조치를 이끌어 낼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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