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유전자’의 힘
  • 김경원 세종대 경영대학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3.20 18:00
  • 호수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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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를 복제해 판매하는 비즈니스가 있다. 주로 서구의 부자들이 아끼던 애완견이 수명을 다하면 수십만 달러를 들여 그 개를 복제해 똑같은 강아지를 키우겠다는 수요 때문에 생긴 것이다. 관련 복제기술이 가장 뛰어난 나라는 한국이라고 한다. 그런데 한국의 한 연구소에서 실험적으로 미국에서 한때 아주 뛰어났던 군견을 복제해 만든 어린 강아지 두 마리를 미국의 어느 군견훈련소에 제공한 적이 있었다. 사설기관인 그 훈련소는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에서 돈을 받고 군견과 경찰견을 훈련시켜 키워내는데, 그 대표가 몇 년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필자도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가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를 들려줬다. 

기증받아 생후 3개월부터 훈련시킨 그 강아지들의 ‘원견(피복제견)’은 이라크에서 몇 년 동안 활약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가 키워낸 강아지들은 적의를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서는 일절 짖거나 이빨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교육을 받았다. 생후 1년이 지난 후 이 두 마리를 자동차 뒷좌석에 태우고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있던 중, 갑자기 이 개들이 맹렬히 짖으며 차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개들이 짖는 쪽을 보니 멀리 터번을 쓴 아랍인들 셋이 길을 가고 있었다. 이 개들은 그때까지 아랍인들을 본 적이 없었고, 원견을 만나 본 적도 없었다.

위와 같은 현상을 ‘셀룰러 메모리(cellular memory)설’ 즉 ‘세포기억설’이라고 부른다. 심장이나 간 등 장기를 이식받은 사람이 장기 기증자의 성격, 습관 등을 그대로 물려받는 현상도 이 경우다. 예를 들어 칼로 살해당한 사람의 장기를 이식받은 사람의 꿈에 일면식도 없던 사람이 자꾸 나타나 칼로 찌르자 이를 경찰에 말해 범인이 검거됐다는 사례 등이 여럿 보고됐다. 뇌가 아닌 장기라도 세포 하나하나에 기억이 각인돼 이식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2: 19세기 초 프랑스의 생물학자 라마르크는 ‘용불용설’을 주장했다. 나무의 새싹을 즐겨 먹는 기린이 높은 나무 위의 먹이를 먹으려 목을 위로 늘이다 보니 실제로 목이 길어졌다는 이론이다. 자꾸 쓰는 기관은 발달하고 안 쓰는 기관은 퇴화한다는 것인데 이렇듯 후천적으로 획득된 형질이 유전을 통해 전해진다는 것이다.

이를 뒤집은 것이 다윈이다. 19세기 후반 내놓은 《종의 기원》이라는 책에서 그는 ‘적자생존’에 의해 생물의 진화가 일어난다고 봤다. 기린의 예를 들자면 목이 긴 기린들은 먹이를 잘 획득하며 살아남아 자손을 남길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기린들은 일찍 도태돼 결국 목이 긴 기린들만 남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2000년대 초반 인간의 유전체, 즉 게놈(또는 지놈) 지도가 규명 발표된 이후 유전학에서도 큰 진보가 이뤄졌고, 그 결과 불과 몇 년 전부터 ‘후성유전학(epigenetics)’이라 불리는 학설이 나와 기존의 이론을 뒤집고 있다. 전문영역이라 필자는 잘은 모르겠으나 생물학 교수에게 물어보니 쉬운 말로 “획득형질도 유전된다”는 주장이라고 한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2018년12월18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민정수석실 특감반 의혹과 관련해 입장문을 발표하고 있다. 김 대변인은 "문재인 정부의 유전자에는 애초에 민간인 사찰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특감반 의혹'과 관련한 입장을 발표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2018년12월18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민정수석실 특감반 의혹과 관련해 입장문을 발표하고 있다. 김 대변인은 "문재인 정부의 유전자에는 애초에 민간인 사찰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특감반 의혹'과 관련한 입장을 발표했다.

얼마 전 현 정부도 민간인을 사찰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청와대 대변인은 “문재인 정부의 유전자에는 애초에 민간인 사찰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이는 그리 좋은 비유가 아닌 것 같다. 현 정부는 인적 구성이나 통치철학 면에서 참여정부를 빼다 박거나(복제), 그대로 물려받았다(유전)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몇 년 전 청와대에서 발견된 민간인 사찰문건 중 5분 4 이상이 참여정부 시절에 작성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원래 유전자에는 없었을지 모르나 후천적으로 참여정부가 획득한 이런 형질은 새 이론대로라면 현 정부가 ‘물려받지 않았을까’라는 ‘합리적’ 의심도 떠오르기 때문이다. 대변인도 이제는 유전학의 최신 트렌드를 알아야 해 먹을 수 있는 세상 같다는 생각에 쓴 웃음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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