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VID 원형은 제네바 합의?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9.03.19 07:55
  • 호수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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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시대다. 혹자는 난세(亂世)라 부른다. 갈피를 못 잡고, 갈 길을 못 정한 채 방황하는, 우왕좌왕하는 시대다. 시사저널은 2019년 올해 창간 30주년을 맞았다. 특별기획으로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 등 각계 원로(元老) 30인의 ‘대한민국, 길을 묻다’ 인터뷰 기사를 연재한다. 연재 순서는 인터뷰한 시점에 맞춰 정해졌다. ⓛ조정래 작가 ②송월주 스님 ③조순 전 부총리 ④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⑤손봉호 기아대책 이사장 ⑥김원기 전 국회의장 ⑦김성수 전 대한성공회 대주교 ⑧박찬종 변호사 ⑨윤후정 초대 여성특별위원회 위원장 ⑩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⑪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6월26일 청와대 본관에서 전직 주미 대사를 초청해 간담회를 하고 있다. 이날 간담회에는 최영진, 한덕수, 이태식, 홍석현, 양성철, 이홍구, 한승주 등 전직 주미 대사 7명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참석했다. ⓒ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6월26일 청와대 본관에서 전직 주미 대사를 초청해 간담회를 하고 있다. 이날 간담회에는 최영진, 한덕수, 이태식, 홍석현, 양성철, 이홍구, 한승주 등 전직 주미 대사 7명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참석했다. ⓒ 연합뉴스

1994년 미국과 북한 사이에 핵사찰 허용과 경수로 제공을 약속한 제네바 합의는 지금도 논란이다. 1994년 당시에도 제네바 합의는 ‘북한의 과거 핵에 대해 제대로 확인할 수 없는 것 아니냐’며 적잖게 논란이 됐다. 결과적으로 제네바 합의는 부시 미 대통령이 북한을 3대 테러국가로 지목하고 북한이 흑연감속로 가동을 선언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당시 제네바 합의안이 마련되는 데는 한승주 전 장관의 역할이 컸다. 미국 측 대표를 맡았던 로버트 갈루치 국무부 군축담당 차관보는 훗날 제네바 합의에 대한 책을 써 한 전 장관에게 선물하면서 책의 맨 앞면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위기를 해결하는 데 귀하와 귀하의 노고와 성실성, 그리고 헌신이 아니었다면 제네바 합의는 이룰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귀하에게 이 책 저자들의 감사와 경의를 표하며 귀하의 우의에 대해 본인의 특별한 감사를 전합니다.”

이번 인터뷰에서 한 전 장관은 제네바 합의야말로 CVID(완벽하고 검증 가능하며 비가역적인 비핵화)의 전형이라고 말했다. CVID 방식의 비핵화를 위해 단계별 로드맵을 만들어야 했는데 초기 모델이 바로 제네바 합의였다는 것이다. 당시 미국과 북한은 경수로의 핵심 부품이 제공되면 북한 내 핵시설 모두를 폐기한다는 데 합의했다. 한 전 장관은 이러한 제네바 합의가 완벽하게 구현돼 북한의 비핵화가 완료되는 시기를 2000년 정도로 예상했다. 하지만 합의 위반으로 그로부터 20년이 다 되는 지금까지 북핵 문제는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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