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기치 못한 암초에 신음하는 강남 재건축
  • 노경은 시사저널e. 기자 (nice@sisajournal-e.com)
  • 승인 2019.03.20 17:00
  • 호수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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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송사에 사업 지연 불가피…공사비 증가·이자 부담 우려 조합 ‘발동동’

서울을 넘어 전국 주택시장 흐름을 주도해 온 강남 재건축 대표 사업장이 혹독한 시련의 계절을 맞고 있다. 사업 막바지까지 왔지만 예기치 못한 암초를 만나면서 다음 절차 진행이 불가한 상태다.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공사비가 늘어나고 이자 부담이 커지며 입주 시기까지 지연되는 등 조합원 손해가 늘어난다는 점에선 모든 사업장이 같은 처지다. 특히 한 사업장은 최악의 경우 재건축의 첫 단추인 조합설립인가부터 다시 받아야 할 수도 있어 조합은 만반의 대비를 하고 있다.

총 사업비만 10조원 규모로 추산돼 단군 이래 최대 정비사업장으로 불리는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재건축 조합은 지난달 말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소유권등기이전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LH와 관련 있는 총 94개 필지와 일부 건물 등기를 조합 명의로 이전해 줄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현재 16개 필지는 LH가 단독으로 소유하고 있고, 78개 필지는 LH가 지분 형태로 보유 중이다.

총 사업비만 10조원 규모인 반포주공1단지 재건축 사업(왼쪽)이 송사에 휘말리면서 일정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오른쪽 사진은 서울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 ⓒ 시사저널 이종현·최준필
총 사업비만 10조원 규모인 반포주공1단지 재건축 사업(왼쪽)이 송사에 휘말리면서 일정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오른쪽 사진은 서울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 ⓒ 시사저널 이종현·최준필

반포주공1단지, LH 땅 되찾아올까

LH는 반포1단지 조합의 주장이 맞는지 법무법인 세 곳으로부터 자문을 받았다. 그 결과 조합이 소유권 및 등기이전을 주장하는 일부 땅에 대해선 LH 소유가 인정될 수도 있으므로 법적으로 다퉈볼 실익이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 LH는 최근 소유권 주장에 나서기 위한 법률대리인 선정 작업에 돌입했다.

조합 역시 법무법인 광장을 법률대리인으로 선임하고 해당 사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한다는 방침이다. 반포1단지 1·2·4주구는 지난해 말 해당 자치구인 서초구청으로부터 관리처분인가까지 받았지만 LH와의 분쟁으로 이주 및 철거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LH 땅 소유권을 조합이 넘겨받지 못하면 조합원이 아닌 남의 땅이기 때문에 사실상 착공이 어렵기 때문이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법적 분쟁이 1심에서 끝나지 않고 대법원까지 갈 경우 사업기간이 수년 지체될 수 있다”고 말했다. 

개포주공4단지 재건축 정비조합은 단지 내에 있던 경기유치원과의 송사로 새 아파트 착공이 지연되고 있다. 양측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진 것은 조합이 기존 설계안을 변경하고 해당 안건을 통과시키기 위해 총회를 열었던 지난해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조합 측은 기존 설계안에서 수익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200세대를 추가로 지을 수 있는 형태로 설계를 바꿨다. 이 과정에서 경기유치원 부지가 계획했던 위치와는 달라졌다. 

조합은 종전 유치원 토지 및 건물(대지 115평, 감정평가액 약 66억원)과 종후 토지(대지 118평, 감정평가액 약 79억원)를 교환할 것을 제안했다. 감정평가액에서 기존보다 13억원이나 높은 만큼 보상은 충분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유치원은 건물 신축비용 20억원과 자체 판단한 기준에 따른 감정평가 부족액 125억2800만원 등을 추가로 요구했다. 유치원 측 요구액이 과하다고 판단한 조합은 이에 응하지 않았고 결국 유치원이 소송을 제기했다.  

올해 초 서울행정법원은 “조합은 단지 내에 있던 경기유치원 관리처분 부분을 취소하고 항소심 판결까지 그 효력을 정지하라”고 판결했다. 법원이 사실상 유치원 측 손을 들어준 셈이다. 다만 재판부는 유치원이 요구한 금액은 과다하다며 보상금 내역에 대해선 일부 기각했다. 조합은 이번 일로 기존 아파트를 모두 철거했지만 경기유치원만 이전 건물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법적 분쟁과는 별도로 양측이 협상을 시도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원활하지 않다. 조합 관계자는 “오는 22일이 항소심 최종 조정기일”이라며 “법적 대응과 협상 모두 진행하는 투트랙 전략을 쓰며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결국 지난달로 예정됐던 착공도 무기한 연기됐다. 

방배13구역 재건축 정비조합 역시 재건축 9부 능선이라 불리는 관리처분인가까지 받고도 이주 작업을 개시하지 못한 곳 중 하나다. 해당 사업장에는 현재 총 1500세대 정도가 있는데, 주로 노후한 단독주택이 대다수이고 일부 한 개 동으로만 이루어진 아파트가 10개 있다. 소송은 이 단동 아파트를 보유한 일부 조합원이 제기했다. 조합 측이 조합설립의 근거가 되는 소유자 동의서 요건을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도시정비법 제16조 2항에 따르면, 한 개 동으로 이루어진 10개의 아파트는 각각의 아파트에서 소유자 전체 중 4분의 3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런데 조합은 총 10개 아파트를 하나의 단지로 묶어 봤다. 이럴 경우 각 단지의 동의율이 과반을 넘기고 10개 단지를 합한 동의율이 4분의 3만 넘으면 되기 때문에 원래 조건보다는 요건을 갖추기가 수월하다. 실제 A빌라트는 12명 중 8명이 동의해 동의율이 63.1%다. B아파트는 19명 중 12명이 동의해 동의율이 63.1%였고, C가든은 9가구 중 6가구가 동의해 동의율이 66.6%다. 10개의 단동 아파트 가운데 3개 단지는 동의율이 2분의 1은 넘지만 4분의 3은 넘지 않은 것이다.


사업 지연으로 기존 조합원 피해 불가피

1심은 10개의 단지가 각각 별개의 아파트니만큼 아파트별로 4분의 3 이상 동의율을 충족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조합설립인가 취소를 선고했다.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인데, 법원에서 거듭 원고 측 손을 들어줄 경우 조합은 조합설립인가의 동의 요건을 법원의 판단대로 다시 갖춰 재건축 사업절차의 첫 단계인 조합설립인가부터 다시 밟아야 할 처지다. 방배13구역 조합 관계자는 “항소심은 올 6월께로 보고 있다. 당연히 이길 것으로 보고 있지만 혹여나 패소하면 대법원까지 갈 것”이라고 말했다.

재건축 사업이 계획보다 늦어지면 조합원 피해는 커질 수밖에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인건비나 자재비 인상에 따른 총 공사비는 늘어나게 된다. 개개인의 조합원은 이에 따른 추가분담금을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 물론 입주도 늦어진다. 김은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 팀장은 “정비사업 지연은 조합원 피해는 물론 중·장기적으로 수급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 서울은 대규모 재건축 정비사업장이 아닌 이상 대규모 신규 주택공급이 거의 없기 때문에 사업이 지연될 경우 신축 아파트 공급 부족으로 이어질 수 있어 우려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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