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 사장’ 승리 앞세워 누가 큰 그림 그렸나
  • 권상집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3.18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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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집 교수의 시사유감] ‘버닝썬 게이트’ 범죄의 재구성

‘버닝썬 게이트’의 주역으로 떠오른 승리. 그는 방송에서 늘 화려하고 유능한 CEO로 부각됐다. 방송을 통해 유창한 영어 및 중국어 실력을 뽐내며 글로벌 감각이 뛰어난 CEO로서의 모습을 보여준 그에게 수많은 예능 프로그램은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며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그는 화려한 조명 뒤에서 국제적 거물 또는 큰손이라 불리는 이들의 투자를 받기 위해 끊임없이 조아리며 성상납과 범죄를 모의한 패거리의 구성원이었다. 승리와 정준영 등 다양한 연예인들의 이름이 거론되는 이번 ‘버닝썬 게이트’에서 연예기획사 영역의 어두운 이면이 또 다시 비춰진다. 

문화콘텐츠 또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곳은 다름 아닌 SM, JYP, YG 등 대형기획사이다. 매출 및 이익 규모는 넷마블, 넥슨 등 게임회사에 비교도 안 되지만 젊은이들이 열광하고 지망하는 분야는 여전히 스타 매니지먼트이다. 과거 국내 일부 대기업들도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연예기획사 인수 또는 자체 설립을 검토한 적이 있다. 분석 결과, 연예기획사의 수익이 생각보다 크지 않고 다양한 로비 및 통제되지 않는 연예인들의 일탈 행위 등을 관리해야 하기에 상당수 기업이 매니지먼트 사업 검토를 중단한 바 있다.

승리(본명 이승현·29)가 3월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승리(본명 이승현·29)가 3월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스타 매니지먼트 영역을 업계 사람들은 ‘사람 장사’라고 일컫는다. 사람 장사는 게임이나 영화 등 콘텐츠 유통과 달리 다양한 경로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에 기획사를 이끄는 CEO에게는 역량 이외 소명의식이 필요하다. 스타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트레이닝도 필요하지만 엄청난 마케팅, 홍보비와 각계각층을 상대로 한 로비 비용 등도 인내, 감수해야 한다. 또한, 소속 연예인의 일탈로 시가총액 증발, 브랜드 가치 하락 등의 리스크 가능성이 항상 존재하고 이를 통제하는 것조차 쉬운 일은 아니기에 연예기획사 영역은 그 어떤 분야보다 복마전(伏魔殿)의 성격이 강하다. 

리스크도 크고 수익 창출이 쉽지 않다는 이유로 기획사의 CEO들은 소속 연예인들을 강력하게 통제하고 지휘한다. 대형 기획사들이 소속 연예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항상 체크하고 관리하는 건 업계에서는 일상화된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승리의 이번 버닝썬 논란에 대해 양현석 YG엔터테인먼트 대표가 “소속 가수들의 개인 사업은 YG와 전혀 무관하게 진행되어온 일”이라고 선을 긋는 건 액면 그대로 쉽게 믿기 힘든 부분이다. 거칠고 다양한 일들이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영역이라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아는 양현석 대표가 이를 몰랐을 리 없기 때문이다. 

‘버닝썬 게이트’의 본질, 마약 유통과 불법 유착

1월28일 시작된 버닝썬 사건의 시작은 단순 폭행 시비였다. 그러나 이미 지난해부터 강남 클럽 일대에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취재에 들어갔다는 얘기가 퍼진 상황이었기에 단순 폭행으로 해당 사건이 마무리될 것이라고 믿은 사람은 많지 않았다. 다만, 기획사들이 워낙 철두철미하게 수많은 거미줄 네트워크를 통해 각종 로비를 펼치며 탄탄하게 내부자 관계를 형성했기에 방송사들이 이를 파헤치기 쉽지 않다는 반론도 적지 않았다. 특히,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지상파 및 종편, 케이블은 승리를 유능한 기업가로 포장, 환호를 보내던 상황이었다. 

지난 2월26일 SBS의 연예매체 ‘funE’가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토대로 승리가 자신이 운영하는 강남 클럽을 통해 투자자들에게 성 접대를 하고 클럽을 로비의 근거지로 삼는다는 기사를 터뜨리자 상황은 반전됐다. 경찰 조사에 출석한 승리는 당시 “하루빨리 진상규명이 될 수 있도록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다”고 나섰고, YG는 “카카오톡은 조작되었다. 허위 사실을 유포할 경우 강력한 법적 대응에 나설 것”임을 공표하며 대중과 언론에 강경하게 대응했다. YG의 잘못된 강경 대응은 수많은 언론이 이후 버닝썬 취재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 도화선이 됐다.

YG가 가짜 뉴스를 비롯한 루머 확대와 재생산에 법적으로 강경 대응하겠다고 나섰으나 이들의 어리석은 대응으로 ‘버닝썬 게이트’는 급기야 모든 언론의 맞대응으로 확대됐고 사안도 단순 폭행에서 성 접대, 성폭행, 불법 촬영 및 유포, 원정 도박 등 범죄 종합세트로 나아가는 형국이다. 이미 승리를 비롯해 정준영, 최종훈 등이 피의자로 전환됐으며 이들 중 일부는 구속영장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다만, 우리가 ‘버닝썬 게이트’에 대해 여전히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승리나 정준영이 아닌 불법 마약 유통과 경찰과의 유착 의혹이 사건의 본질이라는 점이다. 

1월 말에 시작된 버닝썬 사건의 초점은 속된 말로 ‘물뽕’이라고 불린 마약거래와 성폭행, 버닝썬 관계자와 경찰의 암묵적 부당거래에 있었다. 안타깝게도 두 달이 흘러간 지금, 사건의 본질은 온데간데없고 승리와 정준영, 최종훈, 용준형, 이종현이라는 이름만 기억에 남는다. 대중이 원하는 건 이들에 대한 단죄 이전에 버닝썬 내에서 마약이 어떻게 유통될 수 있었고 해당 약물을 이용한 성폭력이 어느 정도 진행됐는지 밝혀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경찰과 유착 관계가 있다면 승리라는 이름 뒤에 누가 막후에서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실제 행사하는지 밝혀야 한다. 

‘버닝썬 게이트’의 정점, 끝까지 가야 하는 이유

승리는 2018년부터 요식업과 엔터테인먼트 분야의 젊은 사업가로 이미지를 쌓아나갔다. 연예인으로서 얼굴과 이름을 빌려주는 것이 아닌 진짜 사업가라는 점을 강조하며 그는 “바지 사장을 하면 고객이 신뢰하지 않는다”라는 점을 누차 강조했다. 신뢰와 책임감을 약속했던 그는 현재 “홍보만 주력했을 뿐 실질적인 클럽 경영과 운영에는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얘기하며 스스로 바지사장임을 공언했다. 참고로, 지난해 7월 한 방송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승리는 “라면 사업, 클럽, 화장품 사업, 인력 공급, 나노기술 및 바이오 계열 투자”를 진행 중이라고 밝힌 적도 있다. 

요식업과 엔터테인먼트에서 화장품, 나노기술과 바이오까지 사업 영역의 시너지에 대한 고려 없이 무차별 사업을 확대해나가는 승리를 뛰어난 사업가라고 믿은 이는 업계 내에서도 없었다. 그러나 지상파 및 종편, 케이블은 그를 뛰어난 사업가로 칭송하고 ‘위대한 승츠비’를 부르짖으며 그의 두 얼굴을 꾸짖지 않고 대중을 현혹시키는데 급급했다. 그가 다양한 사업 영역의 전면에서 ‘바지 사장’으로 나섰다면 분명 그를 조종하는 실세가 누구인지 밝혀야 한다. 이번 ‘버닝썬 게이트’에서 승리라는 꼬리를 자르려는 막후 세력을 밝히지 않는 한 이번 사태는 의미가 없다. 

승리는 버닝썬에 관해 실제 경영을 하지 않았다고 실토한 상황이다. 재무회계 및 전략기획에 대한 기초지식도 없는 그가 다양한 사업을 성공적으로 영위하는 것 자체가 블랙 코미디였다. 그렇다면 그를 전면에 내세운 후, 버닝썬에서 막대한 투자를 받기 위해 불법으로 마약을 유통하고 경찰 등 다양한 세력과 유착관계를 펼친 건 누구의 큰 그림인지 밝혀야 한다. 마지막으로 강경 대응, 법적 대응은 기획사가 아닌 대중이 이번 사태를 키운 이들에게 선포해야 할 일이다. 버닝썬의 어두운 이면보다 화려한 조명에 집착한 예능 프로그램과 연예 매체도 자신들의 책임이 무겁다는 점을 통감해야 한다. 괴물을 만든 건 괴물을 알고도 넘어간 그들 탓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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