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지방을 구원할까?
  •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3.21 13:00
  • 호수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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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영의 경제 바로읽기] 지방 문제 해결할 새로운 아이디어 없는 대책 아쉬워

2019년 대한민국은 과거 경험하지 못한 형태의 다양한 갈등을 경험하고 있다. 과거 민주 대 반민주, 영남 대 호남의 갈등은 아직 남아 있지만 그 수명을 다해 가고 있다. 반면 세대, 성별, 계층 간 갈등은 점차 심화되고 있다. 또 과거의 갈등이 ‘대한민국의 발전’이라는 근본 목표에 대해서는 동감한다는 전제가 있었다면, 현재 부상하고 있는 갈등은 상호 공감할 수 있는 전제조건이 붕괴한 상태에서 상대에 대한 피해의식, 내 것을 지켜야 한다는 절박감이 노골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여러 갈등 가운데 향후 큰 문제로 대두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 수도권과 지방의 갈등이다. 영남, 호남, 충청을 가릴 것 없이 모든 지역들은 인구 감소, 경제적 침체와 활력 저하에 노출돼 있다. 더 큰 문제는 수도권의 지역내총생산(GRDP) 성장률이 2015년 3.4%, 2016년 3.7%, 2017년 4%를 기록한 데 반해 지방의 경우 2015년부터 2017년까지 계속 2.3% 수준에 머무르고 있어 격차가 계속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월29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대상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월29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대상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심화되는 수도권과 지방의 갈등

이런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정부는 지난 1월29일 ‘2019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국가와 지역의 상생발전을 촉진하겠다는 목표에 따라 23개, 총 24조1000억원 규모의 사업을 선정했다. 잘 알려져 있듯이 핵심은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다. 사업의 경제적 타당성을 평가하는 예비타당성조사(이하 예타)의 경우 사업을 통해 혜택을 받는 대상이 많아질수록 사업의 편익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방은 이런 조건을 충족시키기 어렵기 때문에 공공 인프라 구축이 지연되고 젊은 층의 인구 유출이 이어지는 악순환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과연 예타 면제가 지방을 구원해 줄 수 있을까?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의 가장 큰 특징은 ‘철도’에 대한 각 지역의 요구가 높다는 점이다. 4조7000억원을 투자해 김천과 거제를 연결하는 172km의 남부내륙철도를 비롯해 충북선 철도 고속화, 평택-오송 복복선화, 대전도시철도 트램, 포천선, 대구산업선 등을 포함해 총 13조4000억원이 철도와 관련된 사업에 책정됐다. 반면 전통적인 SOC사업으로 간주되던 도로의 경우 5조8000원 규모였다. 총사업비 24조1000억원 가운데 약 83%가 교통 SOC에 배정된 이번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는 실제로 교통부문의 대규모 투자사업이라 할 수 있다. 

왜 이렇게 지방은 교통여건 개선에 집중하는 것일까? 지방의 교통여건 개선은 기업 이전, 인구 증가 등 여러 측면에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KTX로 대표되는 교통여건의 개선이 수도권으로의 쏠림현상을 더 가속화시켰다는 비판을 떠올려 보면 교통부문에 집중된 대규모 프로젝트의 효용성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특히 전라북도가 요청한 8000억원을 투입하는 새만금 공항의 경우 양양, 무안 등 많은 공항이 빈사상태에 놓여 있음을 감안할 때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를 통해 드러난 지방의 취약점은 변화하는 상황에 대한 인식 미비, 아이디어의 고갈과 합리적 의사결정 구조의 부족이라 할 수 있다. 지방이 겪고 있는 인구 감소, 경제적 활력 저하 등의 문제들은 단순한 교통여건의 미비로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무엇이 문제인지를 냉정하게 들여다보고, 그런 문제의 해결방법이 과연 있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방식을 그대로 반복하는 경향이 강하게 드러났다. 

SK하이닉스 증설 입지를 둘러싼 논란에서 드러났듯 기업들은 국내에서 저렴한 토지와 인건비만을 찾아 이전하지 않는, 아니 못하는 상황이 됐다. 철도 및 고속도로가 아닌 쾌적한 거주여건, 좋은 교육환경, 맞벌이를 배려한 양호한 양육시설과 운영체계가 기업의 유치와 일자리 창출에 더 중요한 시대가 됐다. 수도권과 지방의 물리적 격차뿐만 아니라 인식의 격차가 더 빠르게 이뤄지고 있지만 이에 대한 문제인식 자체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더 큰 문제는 어떻게 지방을 되살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물론 이번의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는 2018년 하반기부터 급하게 추진됐고, 이에 따라 신규 사업 발굴 및 기획을 위한 충분한 시간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평소 다양한 아이디어와 구체적인 계획안이 있었다면 천편일률적인 철도와 도로 사업이 아닌 보다 참신하고 새로운 사업이 선정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새로운 아이디어가 좁은 인력풀, 강력한 집행부와 취약한 지방의회로 대표되는 현재의 지방광역자치단체 체계에서 등장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중앙정부 역시 왜 이런 사업을 급작스럽게, 예타 면제라는 극약처방을 통해 시행하게 됐는지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논리가 부족했다. 국가균형발전이라는 명분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주는 요술방망이가 아니다. 급작스럽게, 선심성으로 금번에 한해 그동안 타당성이 부족하다고 거부해 오던 사업들을 추진하기보다는 제도 자체의 합리적 개선을 더 우선시해야 했지만 그런 논의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수도권과 지방에 대한 차별화된 예타 기준 적용을 포함한 제도개선이 이뤄지지 못할 경우 지방은 계속 중앙정부의 선심성, 일회성 특례에 기댈 수밖에 없다. 

더욱 중요한 점은 시간이 경과할수록 균형발전을 명분으로 하는 지방 지원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수도권의 인구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지방과의 유대가 약한 수도권 출신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2015년 10월 헌법재판소의 선거구 인구편차 2대1 조정 결정에 따라 시간이 경과할수록 수도권의 의사결정권은 커질 수밖에 없다. 과거와 같이 떠나온 고향에 대한 부채의식을 기반으로 한 지원은 쉽지 않고, 재원의 배분을 둘러싼 수도권과 지방의 대립과 갈등은 증폭될 가능성이 높다. 왜 24조원이 수도권에 집행되면 안 되는지에 대한 질문이 본격적으로 제기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대형 프로젝트 사업, 지방 문제를 해결할까?

대형 프로젝트와 사업이 지방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한다. 지방이 겪고 있는 문제와 어려움은 특정한 원인에서 시작한 급성질환이 아니라 오랫동안 여러 가지 상황이 겹치면서 발생한 만성질환이 됐다. 과거의 문제점을 지금 해결해 준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어려움이 있다. 고속도로·철도가 생기면 사람들이, 기업이 알아서 자리 잡고 발전하는 시대는 이제 끝났다. 수도권을 억제해도 지방이 발전하지 못하는 시대가 됐다. 시대가 변했고, 발전의 전제조건이 달라졌다. 변화된 상황에 대한 인식, 그리고 합리적인 예산배분 체계에 대한 논의와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 됐다. 모든 것이 모호한, 불확실성의 시대가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다. 단 하나 확실한 점은 예타 면제가 지방을 구원해 주진 못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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