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권력의 맛
  • 소종섭 편집국장 (jongseop1@naver.com)
  • 승인 2019.03.25 09:00
  • 호수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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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현실에서 크고 작은 권력을 접하고 행사합니다. 권력이라는 말은 정치, 조직의 책임자, 수사기관 등을 떠올리게 하지만 일상적으로는 갑을 관계로 표현됩니다. 많은 이들은 “나는 을이다”라고 외치지만 그들 또한 다른 측면에서는 갑입니다. 팀장은 팀원들에게는 권력을 행사하는 위치지만 본부장과의 관계에서는 지시를 따르는 관계입니다. 이처럼 우리 일상에서는 대부분 갑을 관계가 중첩되어 있습니다. 공기처럼 우리의 삶 자체가 권력 관계 속에 있습니다. 영원한 갑도, 영원한 을도 없습니다.  

권력에 대한 정의는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습니다. 누구는 ‘시스템을 움직이는 힘’이라고 말합니다. ‘공동체를 작동케 하는 이기심과 이타심, 전문성이다’라고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다른 이는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특정 행동을 하도록 영향을 미치는 힘’이라고 정의하기도 합니다. 저는 특히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말에 주목합니다. 한나 아렌트는 “권력은 소통의 수단이며 바람직한 권력은 리더와 팔로워가 공감대를 형성함으로써 권력자의 의지가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을 통해 실현되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이에 대해 “너무 이상적이지 않으냐. 현실적이지 않다”는 반론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특히 민주화되고 개인화된 사회일수록 한나 아렌트의 권력에 대한 정의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뇌과학자들은 권력을 잡게 되면 사람의 뇌가 바뀐다고 주장합니다. 신기한 일이지요. 권력을 쥐게 되면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과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분비가 활성화된다는 것입니다. 아일랜드 트리니티칼리지 심리학과 이안 로버트슨 교수가 2013년 발간한 책 《승자의 뇌》에 나온 내용입니다. 흥미롭습니다. 이렇게 되면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떨어지고 두려움을 잘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세상을 무서워하지 않고 자신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느껴지면서 더 큰 쾌감을 얻기 위해 권력을 휘두르게 되지요. 그는 회사에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한 이유를 이런 관점에서 설명합니다. 저도 되돌아보게 됩니다. 

이안 로버트슨 교수만 이렇게 주장하는 게 아닙니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켈로그 경영대학원  애덤 갈린스키 교수는 2006년 사람은 권력을 가질수록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다커 켈트너 미국 UC버클리대 교수는 권력에 취하면 타인과 동료를 괴롭히며 모욕을 더 많이 준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권력자와 뇌질환자가 공통점이 있다는 얘기지요. 

박상기 법무부 장관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2019년3월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과거사위원회 활동 및 버닝썬 수사 관련 법무부-행안부 합동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박상기 법무부 장관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2019년3월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과거사위원회 활동 및 버닝썬 수사 관련 법무부-행안부 합동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권력’ 이야기를 한 것은 최근 우리 사회 핫이슈가 된 몇 가지 사건들을 떠올렸기 때문입니다. 강남 클럽 ‘버닝썬 사건’과 관련해 의혹 덩어리가 된 아이돌그룹 빅뱅의 멤버 승리와 가수 정준영씨 사건이 그렇습니다. 권력이 된 대형 연예기획사들과 덩달아 권력의 단맛을 본 연예권력자들의 일그러진 현실을 보여줍니다. 대통령을 비판한 기사를 쓴 블룸버그통신 기자의 실명을 거론하며 비판한 민주당 대변인이나 “썩은 뿌리를 뽑아야 한다”며 정권을 비판하는 야당 대표도 본질에 있어서는 비슷해 보입니다. 이번 호 커버스토리로 다룬 ‘김학의 전 차관 사건’도 사실이라면 같은 맥락이겠지요. 국민이 권력을 느끼지 못할 때가 가장 행복한 때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봄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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