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포비아가 만들어낸 무슬림의 두 얼굴
  • 오은경 동덕여대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3.27 15:00
  • 호수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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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 공포에 떠는 무슬림들과 보복 테러에 나서는 무슬림들

3월15일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시(市) 이슬람사원에서 발생한 두 건의 무차별 총격 사건은 국제사회를 다시 공포에 휩싸이게 했다. 범인은 이민과 난민을 반대하는 백인우월주의자 호주인으로 밝혀졌다. 문제는 이슬람사원에서 무슬림들을 공격했다는 것인데, ‘이슬람포비아’를 전면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라는 점에서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런데 사건에 대한 충격이 미처 가시지 않은 이틀 만에 테러 공격으로 추정되는 무차별 총격전이 또 한 번 네덜란드 중부 도시 위트레흐트의 트램 안에서 벌어졌다. 백인 테러에 대한 무슬림의 보복 테러 여부에 대한 우려로 전 세계인은 긴장하고 있다. 무슬림들의 분노와 테러, 서구 백인들의 이슬람 혐오, 보복 테러…. 이 원한과 혐오의 끝은 어디일까. 이런 검은 악마의 쇠사슬에서 우리 인류가 놓여날 희망은 있는 것일까.

‘이슬람 공포증’ 혹은 ‘이슬람 혐오’로 번역되는 ‘이슬람포비아’는 언젠가부터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용어가 되었다. 외국인 혐오증(xenophobia), 반테러주의(anti-terrorism), 반이슬람주의(anti-Islamism) 등의 용어와 모호하게 혼용되고 있으면서 인종주의(racism), 반무슬림주의(anti-Muslimism), 문화적 인종주의(cultural racism)의 한 형태라는 다양한 주장과 해석이 난무하는 가운데 무슬림에 대한 사회적 차별·폭력 행위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2005년 보다 못한 유럽평의회가 이슬람포비아는 “명백히 인권침해이며, 사회결속에 대한 위협”임을 지적했지만, 무슬림들에 대한 서구인들의 혐오는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얼마 전 발생한 뉴질랜드 이슬람사원 무차별 총격 사건은 그 심각성을 입증해 주고 있다.

3월17일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총기난사로 50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의 알 누르 사원을 경찰이 출입통제하고 있다. ⓒ AP 연합
3월17일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총기난사로 50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의 알 누르 사원을 경찰이 출입통제하고 있다. ⓒ AP 연합

유럽 국가들, 이미 ‘이민자 통합정책’ 실패

 

많은 전문가들은 이슬람포비아와 무슬림들의 테러를 문명의 충돌로 진단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서구인들이 이슬람포비아를 갖게 된 것은, 서기 610년 이슬람이 태동한 이후 100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급속하게 빠른 속도로 아프리카·중동·유럽 대륙으로 전파되면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중동에서 시작된 이슬람교는 711년 이베리아 반도, 732년에는 프랑스 지역까지 진출하여 카롤루스 마르텔루스와 대결전을 벌였다. 이후 비잔틴 제국이 이슬람 세력을 막아주는 방패 역할을 하기도 하였지만 결국 1453년 동로마제국이 오스만튀르크에게 멸망하면서 무슬림들에 대한 유럽인의 공포는 최고조에 이르게 된다. 1683년 비엔나 전투가 얼마나 치열하고, 관심거리였으면 이슬람을 상징하는 초승달 모양의 ‘크루아상’ 빵이 유럽인에게 삽시간에 퍼졌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렇게 시작된 이슬람포비아는 서막에 불과했다. 중세문명을 주도해 나갔던 이슬람 문명과 대제국 오스만튀르크가 세계정세를 읽지 못하고, 산업화와 근대화에 뒤처지게 되면서 유럽열강에 의해 산산조각이 난다. 식민지로 전락하고만 이슬람 지역에서 서구인들은 중동 무슬림들에 대한 비뚤어진 편견과 무시를 담은 오리엔탈리즘을 생산하고, 유포하였다. 이는 결국 서구인들에 대한 무슬림들의 피해의식을 만드는 씨앗이 되었다.

식민공간에서 태동한 “쿠란으로 돌아가자”라는 이슬람 민족주의 이념 와하비즘은 점차로 이슬람의 정치적, 급진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이는 후에 사우디아라비아 건국 당시의 민족주의와 건국이념이 되기도 하였지만, 이른바 “근본주의”라고 일컫는 정치이슬람(political Islam)의 토양이 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정치이슬람, 즉 극단주의자들의 세력 결성과 팽창에는 서구인들의 무책임한 패권주의와 이기적 행보가 큰 원인제공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가장 대표적 사례가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문제일 것이다. 영국과 미국을 비롯한 서구 사회가 이스라엘 건국을 지원하고 연대하는 것을 목격한 아랍인들 가슴에는 씻을 수 없는 좌절감과 배신감이라는 대못이 박혔다. 팔레스타인들은  기꺼이 스스로 자살폭탄이 되어 산화해버리기를 선택했다. 이는 하루아침에 가족과 삶의 터전을 잃은 인간들이 가족을 지키고자 했던 생존을 위한 마지막 몸부림인 것이다.

소위 ‘지하디스트’, 급진주의 무슬림들이 부르짖는 반미(反美) 또한 미국의 작품이다. 1980년대 소련은 중동에서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했고, 냉전시대 소련을 견제해야 했던 미국은 오사마 빈 라덴과 밀월관계를 형성하였다. 그런데 탈냉전이 시작되기 무섭게 미국은 당시 연대했던 무슬림들에게서 등을 돌려버렸던 것이다.

전 지구적 자본화 시대, 세계화로 인해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었다. 식민공간 중동 및 아프리카에서 유럽과 미국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무슬림들은 더욱 증가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이미 유럽은 ‘유라비아(Eurabia)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무슬림의 급증으로 인해 유럽이 급격하게 이슬람화되어 가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이미 이민자 통합정책에서 실패했다. 이민자를 공화주의 이념, 즉 정교분리 원칙에 입각해 통합하려는 정책은 오히려 무슬림 이민자들을 배제하고 차별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오히려 무슬림들의 저항과 반감만 불러일으킨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부르카 금지령이다. 더구나 갈수록 보수화되고 있는 서구 사회에서 정치권은 반(反)이슬람 정서를 확산하고, 반(反)이민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지배계층은 무슬림 이민자와 이슬람에 대한 공포와 증오를 조장함으로써 국민들의 지지를 얻었다. 신문·방송 등 미디어는 이슬람과 무슬림에 대한 왜곡되거나 부정적인 보도를 확대하면서 이슬람포비아 현상을 부추겼다.

언론에서 ‘테러리즘’이나 ‘극단주의’라는 주제로 기사를 채우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이슬람’ 하면 ‘테러’를 떠올리기에 이르렀다. 결과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무슬림들은 ‘잠재적인 위험요소’로 간주되기에 이르렀다.

3월18일(현지 시각) 네덜란드 중부 도시 위트레흐트의 총격 사건 현장에 구조대원들이 출동해 있다. 경찰은 뉴질랜드 테러에 대한 보복 테러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 EPA 연합
3월18일(현지 시각) 네덜란드 중부 도시 위트레흐트의 총격 사건 현장에 구조대원들이 출동해 있다. 경찰은 뉴질랜드 테러에 대한 보복 테러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 EPA 연합

‘이슬람포비아’ 주력하는 한 테러 피할 수 없어

서구가 뿌린 이슬람포비아 씨앗에서 자란 이슬람 급진주의 세력은 2001년 9·11 테러를 기점으로 알카에다(Al-Qaeda)에서 IS로 이어지는 테러조직으로 확산, 성장했다. 이에 대한 해결 대안이나 대책 마련에 골몰하기보다, 전 세계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했다. 앞다퉈 테러방지법 강화 및 불법이민자 추방 등의 강력한 치안질서 강화대책을 마련하기에만 바빴다. 당연히 잠재적 테러리스트 무슬림들이 주요 타깃이었다. 서구 언론은 “무슬림=근본주의=테러”로 등치되는 이미지를 생산하는 데만 열을 올렸고, 한국 또한 거리감 없이 서구 언론을 번역, 재생산해 왔다.

이런 국제사회 분위기 속에서 무슬림들의 소외감과 분노는 심화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유럽의 무슬림 2세들은 차별과 편견 속에 제대로 일자리를 찾거나 꿈을 펼칠 수 없게 되자 ‘외로운 늑대’로 성장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결국 서구 사회에 대한 저항과 반감을 품고 성장하게 된 이들은 서구와의 성전(지하드)을 선포한 IS의 달콤한 유혹에 빠져들게 된다. 서구, 특히 유럽 주류사회의 무슬림에 대한 무책임한 방관과 차별, 이민자 배제, 그리고 이슬람포비아 확산을 통한 정권 유지 및 강화라는 프레임 속에서 무슬림에 대한 인종차별은 더욱더 심화되었고, 무슬림의 소외와 분노는 날이 갈수록 축적되고 있다. 

전 지구적 자본주의와 글로벌화 속에서 이민과 다문화 사회는 이미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그런데 주류사회가 이민자, 특히 무슬림들을 포용하지 않고 이슬람포비아를 생산하는 데 주력한다면 테러 또한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또 다른 재앙이 될 것이다. 테러는 21세기형 전쟁이다. 그 전쟁의 발발은 전 지구적 자본화라는 양극화를 주도한 서구와 주류사회에 우선적인 책임이 있다고 해도, 이 세상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 전쟁 없는 세상에서 살기 위해 우리 모두 다 같이 포용의 방법을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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