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 경영권 첫 박탈한 국민연금…“경제계의 촛불혁명”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19.03.28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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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스튜어드십 코드 영향력 확대 예상돼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에 제동이 걸렸다. 국민연금이 지난해 도입한 스튜어드십 코드가 3월27일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부결이라는 첫 사례를 만들면서, 앞으로 스튜어드십 코드의 영향력이 경영계에 더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자가 투자 기업의 의사 결정에 관여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하는 것을 뜻한다. 기금 자산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할 우려가 있는 기업에 대해서 문제를 적극 해소하고 개선할 수 있도록, 우선 경영 참여에 해당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모든 효과적인 수단을 강구하고 적극 이행하겠다는 것이다.

대한항공 정기 주주총회에서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안은 의결권 있는 주식 73.84%를 가진 주주가 표결에 참여해 찬성 64.1%, 반대 35.9%로 부결됐다. 대한항공 지분 11.56%를 보유한 국민연금은 조 회장 일가 등 특수관계인(33.35%)에 이은 2대 주주다.

이날 주총에서 반대표를 던진 국민연금의 지분이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안 가부를 갈랐다. 국민연금은 3월26일 저녁 조 회장의 선임 반대 입장을 공개한 바 있는데, 이로 인해 무게 추가 기울었다는 분석이다.

3월27일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에서 열린 '대한항공 정기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이 우기홍 대한항공 대표이사에게 항의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3월27일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에서 열린 '대한항공 정기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이 우기홍 대한항공 대표이사에게 항의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지난해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던진 주총 안건 607개 가운데 부결된 경우는 7건 뿐이었다. 대주주 이사 재선임 안건에 대해서도 2011년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 2016년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등에 반대표를 던졌지만 연임 실패라는 결과로 이어진 선례는 없었다. 2016년 3월에도 국민연금은 과도 연임 등을 이유로 조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을 반대했지만 조 회장이 표 대결에서 승리하며 연임에 성공했다.

이번 조 회장의 경영권 박탈로 인해, 다른 기업들도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무시할 수 없게 됐다. 기업 총수들의 활동에 변화가 올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기업들이 중점 관리 기업으로 선정되지 않도록 사익추구를 삼가고, 주주가치를 극대화하는 경영을 펼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올해 횡령∙배임 등을 중점관리 사안으로 정해 해당기업과 비공개 대화를 추진한다. 금융당국도 스튜어드십 코드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3월27일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의 긍정적인 면을 잘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재계는 기업 활동 위축 가능성이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국민연금이 민간 기업의 경영권을 좌우하는 ‘연금사회주의’ 우려가 커졌다”고 비판했다. 경총은 “국민연금은 투자기업의 자유로운 경영활동 보장을 통해 주주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중심을 잡아야 한다”며 “국민연금이 기업경영권을 흔드는 일이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연임이 부결되면서 대한항공 주가가 급등한 것만 봐도 총수 일가의 비리나 반사회적 행위를 척결하면 기업 발전과 국가, 사회에 기여가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총수 일가의 반사회적∙반기업적∙반주주적 전횡과 일탈이 없다면 국민연금이나 주주들이 나설 일도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이번 결과는 재벌 대기업 총수 일가의 반도덕적 행위를 용납하지 말자는 결의와 다짐이 만든 성과로, 주식 시장과 경제 생태계의 촛불혁명”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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