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영 사태가 보여준 방송가의 씁쓸한 민낯
  •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3.30 14:00
  • 호수 153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범죄자를 스타로 둔갑시킨 마비된 윤리의식

이번 버닝썬 게이트에서 흘러나온 정준영의 범법행위들은 방송가에도 엄청난 후폭풍을 불러왔다. 대중들은 범죄자조차 스타로 만들어내는 방송에 대해 분노했다. 과연 방송들은 그 영향력만큼 윤리의식을 갖고 있었을까. 

2016년 정준영의 몰카 촬영 논란은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기에 충분했다. 성범죄, 그중에서도 몰카 촬영 및 유포를 통한 온라인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 논란은 더 거셀 수밖에 없었다. 결국 정준영은 자신의 주력 프로그램이 됐던 KBS 《1박2일》에서 ‘잠정 하차’했다. 하지만 성범죄의 어떤 진실이 밝혀질 것 같던 당시 상황은 피해자가 고소를 취하하고 직접 나서 정준영의 무혐의를 주장함으로써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나버렸다.

문제는 이 무혐의를 아무런 윤리적 문제조차 없는 듯 덜컥 받아들여 성급히 그를 복귀시킨 프로그램의 윤리적 둔감함에 있었다. 《1박2일》은 지속적으로 ‘정준영의 빈자리’를 거론하며 그에 대한 다른 멤버들의 그리움을 담아냈고, 결국 잠정 하차 4개월여 만에 정준영을 복귀시켰다. 다시 돌아온 정준영에게 《1박2일》 멤버들은 “진짜 너니?”하고 반색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물론 당시에도 이 빠른 복귀에 대한 불편한 시선은 계속 제기됐지만, 국민 예능 프로그램으로 자리한 《1박2일》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매회 방송에 나와 게임을 하고 망가지며 형들과 끈끈한 동료애를 보여주면서 정준영은 예전부터 갖고 있던 ‘4차원 매력의 소유자’로 금세 거듭났다. 

KBS 《1박2일》은 2016년 불법 몰카 촬영 논란으로 ‘잠정 하차’했던 정준영을 불과 4개월여 만에 복귀시켰다(오른쪽). 반성 없이 범죄를 반복했던 정준영은 결국 상습적으로 성관계 동영상을 불법 촬영하고 유포했다는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 ⓒ 시사저널 박정훈·KBS
KBS 《1박2일》은 2016년 불법 몰카 촬영 논란으로 ‘잠정 하차’했던 정준영을 불과 4개월여 만에 복귀시켰다(오른쪽). 반성 없이 범죄를 반복했던 정준영은 결국 상습적으로 성관계 동영상을 불법 촬영하고 유포했다는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 ⓒ 시사저널 박정훈·KBS

범죄자 정준영, 어떻게 4차원 매력의 소유자 됐나

그리고 2년이 지난 현재 그는 포승줄에 묶인 채 유치장으로 들어갔다. 상습적으로 성관계 동영상을 불법 촬영하고 유포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단톡방을 통해 나온 대화내용을 보면, 정준영은 그것이 범법행위인지조차 잘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듯했고, 여성을 하나의 성적 도구나 대상으로 치부한 흔적이 역력했다. 사실상 범죄자였지만 어떻게 대중들에게는 4차원 매력의 소유자가 됐는가는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그건 《1박2일》을 위시해 여러 방송 프로그램들이 그를 이런 이미지로 만들어 소비해 왔기 때문이다. 

2013년 SBS 박상도 아나운서는 ‘강용석의 변신은 무죄?’라는 칼럼을 게재했다. JTBC 《썰전》 등을 통해 방송인으로 급부상하고 있던 강용석 변호사에 대한 우려를 담은 당시 칼럼은 ‘방송의 이미지 세탁’ 문제를 지적했다. 대학생들과의 술자리에서 아나운서를 지망한다는 여학생에게 “다 줄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아나운서 할 수 있겠느냐”며 논란을 일으켰던 강용석이었다. 하지만 강용석은 방송을 통해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 있어 탁월한 수완을 보였던 인물이었다. 국민 비호감으로까지 불렸던 그는 Mnet 《슈퍼스타K》 같은 프로그램에 나와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들어 놓으면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방송을 보게 만드는 화력으로 활용했다. 그는 아나운서 비하 발언이 논란이 된 이후에도 계속 《썰전》을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공고히 굳혀 나갔다. 

그는 그 후에도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승승장구하는 듯 보였지만, 결국 2015년 ‘불륜 스캔들’이 터졌다. 하지만 그는 그 순간에도 자신이 피해자라고 SNS 등을 통해 피력했다. 그는 “신의 눈 밖에 난 시시포스도 아닌데 뭔가 좀 해보려고 고생고생해서 산중턱 넘어 애써 올라갔다 싶으면 쪼르륵 미끄러져 바닥에서 다시 시작해야 된다”고 적기도 했다. 하지만 이 불륜 의혹을 둘러싼 소송 서류를 위조한 혐의로 강용석은 지난해 10월 1심에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JTBC 《썰전》에 출연했던 강용석 ⓒ JTBC
JTBC 《썰전》에 출연했던 강용석 ⓒ JTBC

강용석 사례를 통해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건 방송이 가진 막강한 영향력이다. 윤리적 문제를 일으키거나 심지어 범법행위를 했는데도 방송은 그걸 활용하기도 하고 나아가 이미지 세탁까지 해 주는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그 윤리 부재의 방송 제작 과정에서 시청자들은 소외되고 동원되는 존재로 전락해 버린다. 방송 이미지만을 보고 호감을 보냈던 시청자들이 후에 그가 범법자였다는 걸 알고 느낄 허탈감과 배신감을 방송 제작자들은 알고 있는 걸까.

이번 정준영 사태는 지금껏 방송 제작자들도, 또 그걸 바라보던 시청자들도 무심코 지나쳐 왔던 윤리적·도덕적 둔감함을 새삼 돌아보게 만들었다. 이번 정준영 사태에서 범법의 정황들이 드러났던 이른바 그의 ‘황금폰’은 과거 MBC 《라디오스타》에서 그저 예능 소재 거리가 됐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대중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이런 이야기를 아무런 죄의식 없이 버젓이 한 그들의 불감증도 문제지만, 그것을 재미의 하나로 포장한 방송 프로그램의 윤리적 불감증도 충격이었다. 결국 MBC는 해당 방송 분량 다시보기 서비스를 중단했다. 


섣부른 동정론이 도덕적 해이 부추겨

압수된 정준영 휴대폰의 단톡방 내용은 그뿐만 아니라 FT아일랜드 최종훈, 씨엔블루 이종현, 하이라이트 용준형으로 불똥이 튀었고, 엉뚱하게도 《1박2일》 출연자인 김준호와 차태현의 내기골프 논란으로까지 이어졌다. 단톡방에 올려진 내기골프 정황에 대해 양측은 사과와 함께 모든 방송 하차를 선언하면서, “해외 골프는 사실이 아니고 내기골프도 단지 게임의 재미를 위한 부분이었을 뿐이다. 게임이 끝난 후 현장에서 금액을 돌려주거나 돌려받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런 해명에도 불구하고 김준호처럼 이미 과거 도박 문제로 논란이 됐던 인물이 단순한 게임으로라도 내기골프를 쳤다는 사실이나, 그런 내용이 게재된 단톡방에 해당 PD도 있었음에도 이에 대한 경각심이 없었다는 건 얼마나 도덕적으로 안이했던가를 잘 드러낸다. 

그러고 보면 음주운전, 도박, 탈세 심지어 성희롱이나 성폭력 같은 일들을 저질러 논란이 됐던 연예인들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복귀해 활동하는 일이 너무 쉬운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물론 누구나 한 번의 실수는 있을 법하고 다시 한 번의 기회는 줄 수 있는 사회의 아량도 필요하지만, 그들에게 다시 기회를 줄 때 더 엄정한 도덕적 검증이나 경각심을 가질 수 있는 장치가 선결돼야 하는 게 아닐까. 도덕적 해이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건 ‘잘못을 저지르고도 쉽게 복귀해 다시 활동할 수 있는’ 방송과 연예계의 안이함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