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벤치만 지킨 이강인…벤투의 소신인가? 아집인가?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3.31 09:00
  • 호수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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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기약한 슛돌이의 A매치 데뷔…“유럽에서 불렀는데 투입했어야” vs “관찰로도 큰 의미” 팽팽

“이강인이 데뷔전을 치르지 못하고 2만km를 다시 날아온다.” 스페인의 유력 일간지 ‘마르카’가 발렌시아의 특급 유망주 이강인의 첫 A매치 소집이 끝난 뒤 쓴 기사 내용이다. 이강인이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최연소 발탁 7위에 해당하는 만 18세 20일의 나이로 3월 A매치 2연전(볼리비아·콜롬비아전)에 소집됐지만, 결국 그라운드를 밟지 못하고 유럽으로 돌아갔다. 

아시안컵에서 실망스러운 성적을 낸 뒤 다시 출발하는 벤투호에서 손흥민 활용법 이상으로 큰 관심을 모은 것은 이강인의 데뷔전이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은 투톱을 기반으로 새 포메이션과 전술을 통해 손흥민 활용법을 제시하는 데 성공했다. 전방에 전진 배치된 손흥민은 남미의 강호 콜롬비아와의 경기에서 벤투호 출범 후 첫 득점에 성공하며 2연승을 이끌었다.

반면 이강인 활용은 전무했다. 소속팀 일정 탓에 소집 하루 뒤인 19일 파주NFC에 입소한 이강인은 “어릴 때부터 꿈꿔온 자리다. 흥민이 형을 비롯한 선배들과 함께해 영광이다”고 소감을 밝혔다. 하지만 그 이후 이강인의 얘기를 들을 순 없었다. 경기에 뛰지 못한 이강인은 믹스트존에서 많은 언론사들의 인터뷰 요청을 정중하게 거절한 뒤 떠났다. 

ⓒ 연합뉴스 

왜 이강인은 실전에 투입되지 못했나

이강인이 첫 A대표팀 소집에서 얻은 것은 데뷔전 대신 인내와 경험이었다. 하루 늦게 입소했지만 훈련은 충실히 소화했다. 몇몇 선수들은 부상 등으로 훈련을 쉬거나, 도중에 소속팀으로 돌아갔지만 이강인은 하루도 빠짐없이 훈련장에 나섰다.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의 평가도 좋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훈련장에서 보여준 기술 수준과 내용만 놓고 보면 출전했어도 큰 문제 없었을 것이라는 호평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소집에서 벤투 감독은 좀 더 확실하고, 검증된 선수들의 활용에 집중했다. 이강인이 뛰는 공격 2선의 자원이 가장 경쟁이 심했다는 점도 데뷔전 불발의 원인이다. 벤투 감독은 권창훈·이재성 등 부상에서 돌아온 선수들과 이청용·황인범·이승우 등 기존 선수들에게 우선 기회를 줬다. 이강인은 공격형 미드필더와 왼쪽 측면을 담당할 수 있는 선수인데 해당 포지션의 순번에서 밀렸다는 인상을 줬다. 

선수 기용에 있어 신중한 벤투 감독의 성향도 영향을 미쳤다. 지휘봉을 잡은 뒤 벤투 감독은 새로운 젊은 선수를 꾸준히 선발하고 있지만, 출전까지는 일정 시간이 걸린다. 이승우의 경우 대중적 인기가 상당히 높지만, 지난해 9월 코스타리카전 이후 A매치에 6경기 연속 나서지 못했다. 아시안컵 16강전과 8강전에 교체 출전하며 서서히 출전 시간을 늘린 그는 볼리비아전에 30분을 뛰었다. 

벤투 감독의 선수 활용 원칙은 확고하다. 가능성 있는 선수를 불러서 바로 쓰기보단 일정 시간 관찰한다. 팀의 플레이 스타일에 녹아들었다는 판단이 들 때 기용을 시작한다. 이승우 외에도 황인범·김문환·권경원 등이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정승현·박지수는 꾸준히 발탁되지만 거의 활용되지 못했다. 이번 3월 A매치에 새로 발탁된 선수 중 출전 기회를 얻은 것은 권창훈뿐이었다. 이강인 외에 백승호·김정민·최철순·구성윤도 출전하지 못했다. 

이강인에 대해 벤투 감독은 “기술적으론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평가를 남겼지만, 그 외에는 구체적인 평가나 출전 가능성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저 “미래를 염두에 두고 있다. 계속 지켜볼 것이다. 상황에 따라 전술에 맞게 기용할 것이다”는 원칙적 발언을 했다. 대중의 기대와 관심과는 거리가 먼 그의 성향과 방식에 대해 지나치게 보수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번 볼리비아·콜롬비아와의 경기에서 전술 변화라는 의도에 따른 성과가 눈에 띄었음에도 평가가 호의적이지 않은 이유다. 

3월26일 서울 마포구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남자 축구대표팀과 콜롬비아의 평가전. 손흥민이 경기가 끝난 뒤 이강인과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3월26일 서울 마포구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남자 축구대표팀과 콜롬비아의 평가전. 손흥민이 경기가 끝난 뒤 이강인과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강인 활용 더 시급한 U-20팀과 U-22팀

소신과 아집은 빛과 그늘 같은 존재다. 이강인 활용을 둘러싸고 일단은 ‘선수 활용은 감독의 절대 권한’이라는 원칙이 더 존중받는다. 그러나 결과가 따라주지 못한다면 철학과 방식에 대한 벤투 감독의 소신은 아집을 넘어 독선으로 지적받을 수 있다. 이번 2연전에서 벤투 감독은 교체 카드를 다 활용하지 않았다. 친선전에서는 최대 6명까지 교체할 수 있는데, 볼리비아전에서는 4명을, 콜롬비아전에서는 3명을 교체 투입했다. 패배의 여파가 상대적으로 적은 친선전에서 굳이 교체 카드를 아낄 필요가 있었느냐는 지적이다. 

전 국가대표 선수들도 조심스러운 비판을 했다. 유튜브 《꽁병지TV》를 운영하고 있는 김병지는 “이번이 이강인의 기량을 평가할 절호의 기회였다. 이강인도 이승우처럼 기회를 얻게 되겠지만, 감독의 소신만큼 팬들의 마음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천수도 자신의 유튜브 채널인 《터치플레이》를 통해 “뽑았으면 썼어야 했다. 선수는 뛰어야 퍼포먼스를 확인하고 평가할 수 있다”며 벤투 감독의 폭넓지 못한 선수 활용을 지적했다. 

벤투호 내부의 목소리는 조금 달랐다. 주장 손흥민은 “너무 급하면 미끄러진다. 열흘 동안 함께 훈련하며 이강인이 성장하는 게 눈에 보였다. 묵묵히 지켜봐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대표팀에 오는 선수는 모두 중요하고, 능력 있다. 내가 너무 주목받는 것도 다른 선수들에게 미안하다. 어린 선수들에 대한 팬들의 기대감을 이해하지만, 특정 선수의 팀은 아니다”는 의견도 밝혔다. 황인범은 “강인이는 내가 그 나이에 대표팀에 왔었다면 불가능했을 모습을 보여줬다. 대표팀 구성원들이 강인이의 장점을 많이 알게 됐다”며 감탄하는 모습이었다. 벤투 감독의 의도대로 팀의 일원으로 녹아들면서 서로를 파악하는 중요한 시간을 가졌다는 얘기였다. 비슷한 체험을 한 적이 있는 이승우는 소집 첫날 이강인·백승호에 대한 질문을 받자 “대표팀은 좋은 자리지만, 나름대로 적응해야 한다. 먼저 온 입장에서 돕고 싶다”고 말했다.  

각급 연령별 대표팀과의 상관관계는 다소 민감한 문제일 수 있다. 소집하고도 활용되지 못한 이강인을 보며 가장 허무해진 쪽은 오는 5월 폴란드에서 열리는 FIFA U-20 월드컵을 준비하는 정정용 감독의 20세 이하 대표팀이다. A매치 기간 동안 유럽 원정을 다녀온 20세 이하 대표팀은 이강인의 발탁을 벤투호에 양보해야 했다. 2020년 도쿄올림픽을 준비하는 김학범 감독의 22세 이하 대표팀도 차후 이강인 선발이 중요한 문제로 대두될 수 있다. 활용이 더 시급한 각급 대표팀의 입장을 반영한 현명한 교통정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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