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보령 르포] “시방 우린 밥 대신 먼지 먹고 사는 겨”
  • 충남 보령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19.04.01 08:00
  • 호수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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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력발전에 잿빛도시 된 보령…고정마을의 먼지 수난사

“‘저것’ 생기고 나서는 밥 대신 먼지 먹고 사는 겨.” 지난 3월25일 찾은 충남 보령시 주교면 고정마을의 주민회관. 벽에 몸을 기댄 김병옥씨(74)가 뿌연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한숨 섞인 김씨의 말에 방에 빙 둘러앉은 할머니들이 “말해 뭐 혀” “그러니께”라며 맞장구를 쳤다. 김씨가 말한 ‘저것’이란 1983년 고정마을에서 약 2km 떨어진 곳에 세워진 보령화력발전소를 가리킨다. 발전소가 들어서기 전부터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들은 어느덧 머리가 하얀 노인이 됐다. 그들은 요즘 뉴스에 나오는 ‘미세먼지’란 말이 익숙하다 못해 지겹다고 했다. 마을 이장인 최병조씨(47)는 “발전소 들어오고서 멀쩡하던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생활이 이 지경이 됐는데 나라에서는 하나 도움 주는 게 없다”며 고정마을의 ‘먼지 수난사’를 들려줬다.

충남 보령화력발전소 ⓒ 시사저널 박정훈
충남 보령화력발전소 ⓒ 시사저널 박정훈

장독대부터 지붕까지 새까매진 고정마을

충남은 석탄의 도시로 불린다. 충남에만 30기의 석탄화력발전소가 들어차 있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 석탄화력발전소(60기)의 절반에 이르는 수치로, 전국 석탄설비 총량의 51.5%가 충남에 몰려 있다. 석탄화력발전소가 지역 경제의 효자로 불리던 시절도 있었지만 대기오염이 극으로 치닫고 있는 지금, 발전소는 충남의 골칫거리가 됐다. 내구연한 30년을 훌쩍 넘긴 보령 1호기(1983년 준공)와 보령 2호기(1984년)가 연기를 내뿜으며 전기를 생산하는 사이, 충남의 대기오염물질 배출량은 2015년 기준 경기(28만3000톤)에 이어 2위(27만9000톤)를 차지할 정도로 극심해졌다.

그런 충남의 변화를 몸소 겪어낸 이들이 살고 있는 곳이 충남 주교면에 위치한 고정마을이다. 고정마을은 보령화력과 인접해 있다 보니 분진 피해가 가장 큰 지역으로 알려진 곳이다. 인생의 절반 가까이를 보령화력과 산 고정마을 노인들은 발전소 덕에 얻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지역 경제의 득(得)이 될 것이라 여겼지만, 정작 발전소가 쥐여준 것은 마을을 뒤덮은 까만 재와 먼지뿐이었다.

고정마을에서 태어났다는 김추자씨(71)는 “옛날에는 먹고살기 참 좋은 동네였다. 산이고 바다고 먹을 것이 지천에 널려 있어서 조개 팔아다가 자식들 먹여 살리고 그랬다”며 “얼마나 깨끗했는지 몰라”를 연신 강조했다. 그는 “다 옛날 얘기고, (화력발전소가) 지어지고 나서는 온 마을이 새까맣다. 김이고 굴이고 바다에서 나는 것들은 다 먹을 수도 없고, 이제는 창문도 못 열어놓는다”고 토로했다. 그러더니 김씨는 “뉴스 보니까 서울도 지금 난리라던데”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김씨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던 조선분씨(85)는 “이게 말로 하면 모른다. 여기 먼지는 보통 먼지가 아니라 아주 시꺼먼 탄가루다”며 기자를 마을 어귀에 위치한 자신의 집으로 안내했다. 마을회관에서 2분쯤 걸어가 마주한 조씨의 집 외관은 예상외로 깨끗했다. 그러나 조씨가 흰 목장갑을 낀 채 창문을 한 번 만지자 장갑에 까만 먼지가 묻어났다. 그는 창문뿐 아니라 집 안팎의 담과 기둥, 바닥을 손으로 계속 훑어 보였다. 어느새 장갑이 새까매지자 조씨는 “누가 보면 청소를 안 한 줄 아는데 매일같이 쓸고 닦아도 이렇게 된다”고 말했다.

조씨는 주름진 손을 털어내며 “밖에다가 빨래 너는 건 엄두도 못 낸다. 여기(고정마을) 사람들은 햇빛이 쨍해도 무조건 빨래는 집 안에서 말린다. 안 그러면 옷이 또 까매지니까”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조씨는 “된장이나 간장도 해를 봐야 맛있는데, 이제 그럴 수도 없다”며 장독대를 가리켰다. 비닐로 밀봉된 장독대의 뚜껑을 손가락으로 훑자 검은 먼지가 어김없이 묻어났다. 그렇게 묻어난 먼지는 비누로 몇 번을 지워도 잘 닦이지 않았다. 먼지보다는 마치 기름때 같았다.

고정마을 주민 최삼순씨(오른쪽)는 보령화력 탓에 남편(왼쪽)이 폐암에 걸렸다고 주장했다. ⓒ 시사저널 박정훈
고정마을 주민 최삼순씨(오른쪽)는 보령화력 탓에 남편(왼쪽)이 폐암에 걸렸다고 주장했다. ⓒ 시사저널 박정훈

남편 폐에 박힌 ‘석면’…“갑자기 암환자 늘어”

고정마을에서 만난 주민들은 보령화력을 두고 입을 모아 ‘암덩이’라고 말했다. 먼지를 뿜어내는 발전소가 미워서 지은 악명이 아니다. 실제 화력발전소가 세워진 이후 암환자가 크게 늘었다는 게 마을 주민들의 주장이다. 이장 최병조씨는 “고정리에 130세대, 400명 가까이가 사는데 예전에는 아픈 사람 하나 없었다”며 “발전소 세워지고는 암환자로 한 해에만 몇 명이 죽어나간다. 간이고 위고 폐고 갑자기 암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작년에만 8명이 암으로 죽었다”고 전했다.

혹시 발전소 탓에 암환자가 늘었다는 주민들의 말은 근거 없는 ‘화풀이’가 아닐까. 충남에서 평생을 살았다는 최삼순씨(76)는 자신의 남편이 ‘발전소가 낳은 암환자’라며, 병원의 진단이 이를 증명한다고 주장했다. 최씨의 남편 진용남씨(80)는 지난 2017년 폐암 1기를 진단받은 뒤 지금까지 투병 중이다. 최씨는 “누구보다 건강했던 남편이었는데 덜컥 암에 걸렸다. 이후 귀도 멀고 오른팔도 마비돼, 내가 온 종일 옆에서 씻겨주고 먹이고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씨 말에 따르면 진씨를 수술한 천안의 순천향대학병원 담당의가 최근 진씨의 폐암 발병원인으로 ‘석면’을 지목했다고 한다. 컴퓨터단층촬영(CT) 결과 석면으로 인한 폐암 발병이 의심된다는 소견을 밝혔다는 것이다. 석면은 장기간 노출될 경우 15~30년 정도의 잠복기를 거쳐 폐암·악성중피종·석면폐 등을 유발하는 1급 발암물질로 분류된다. 2010년 당시 김재균 민주당 의원은 보령화력을 운영하는 중부발전을 비롯한 5개 발전사가 운영하고 있는 발전소에 대한 석면 검출 유무를 조사한 결과, 모두 174곳이 석면을 사용했고, 687곳이 석면 사용이 의심된다고 밝힌 바 있다. 

최씨는 “(화력발전소가) 없었으면 남편이 이렇게 (암에) 걸리지는 않았을 거다. 사람들이 나라에서 보상을 받으라는데 늙은이들이 뭘 어떻게 해야 (보상이) 나오는지 알 길이 있겠나. 그냥 사는 거다”라며 “남편이 (먼지를) 피해야 하는데 사방에서 먼지가 날리니까 마스크도 의미가 없다. 저것(화력발전소) 때문에 바카지(게)나 조개 잡던 것도 포기하고 지금은 10원 한 푼 못 버는데, 남편까지 아프니 막막하다. 그나마 세 아들들이 보내주는 돈으로 겨우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보령에는 유독 진씨처럼 호흡기가 아픈 이들이 많다. 지난 2017년 기준 통계청 자료를 확인한 결과, 충남 보령시의 인구 10만 명당 호흡기질환 사망률은 전국 평균보다 2배 가까이 높았다. 2017년 전국의 호흡계통 질환 사망자는 인구 10만 명당 63.7명이다. 같은 기간 보령은 10만 명당 113명에 이른다. 일각에선 보령 지역의 노인 인구가 많은 탓에 결과가 다소 왜곡됐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같은 기간 지역별로 존재하는 연령 차이를 통계적으로 제거한 ‘연령표준화 사망률’을 집계한 결과를 보더라도, 보령은 호흡계통 질환 사망자가 10만 명당 32.6명으로, 전국 평균(32.2명)과 서울(25.3명), 경기(27.7명)보다 높았다. 

주민들이 화력발전소 때문에 피해를 입고 있다고 주장하는 충남 보령시 주교면 고정마을 ⓒ 시사저널 박정훈
주민들이 화력발전소 때문에 피해를 입고 있다고 주장하는 충남 보령시 주교면 고정마을 ⓒ 시사저널 박정훈

보령 호흡계통 사망자 늘어…“재생에너지 전환 시급”

최병조씨는 이장으로서 보령의 작은 마을이 처한 이 같은 현실이 답답하다고 했다. “정권이 바뀌어도 똑같다. 공무원들도 발전소 직원들도 다 ‘괜찮다’며 우릴 외면했다. 발전소 탓에 이렇게 사는 게 우리들의 잘못은 아니지 않나. 노인들이 몇 푼 받자고 이러는 게 아니다. 적어도 이 마을에서 평생 살아갈 주민들인데, 죽을 때까지 나라가 건강검진이라도 매년 무료로 진행해 줬으면 좋겠다. 이게 무리한 요구인가?”

한편, 보령화력발전에서 빚어진 미세먼지 논란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소속 문석주 보령시의원은 “노후화된 화력발전소를 조기에 폐쇄하고, 그곳에 LNG발전소를 세우는 방안이 있다고 생각한다. 보령시만의 특수성인 화력발전소 바로 옆에 LNG가스저장소가 있어 전력생산단가를 낮출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방안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현재 가동하고 있는 화력발전소의 오염배출농도를 낮출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며 화력발전소에 대한 시민감시기구를 보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 주민이 자신의 집에 날아온 화력발전소 미세먼지를 보여주고 있다. ⓒ 시사저널 박정훈
한 주민이 자신의 집에 날아온 화력발전소 미세먼지를 보여주고 있다. ⓒ 시사저널 박정훈

부랴부랴 미세먼지 저감 ‘총력전’ 나선 충남도

미세먼지 탓에 지역사회가 몸살을 앓으면서, 충남도는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겠다”며 강도 높은 대기질 개선작업에 들어갈 것을 예고했다. 3월25일 충남도는 도의회 농업경제환경위원회 의원들과 충남도의 미세먼지 추진 현황 및 대책에 대해 설명하는 간담회를 가졌다. 

문경주 기후환경국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석탄화력발전소·석유화학단지·철강단지 등 산업 부문에서 발생하는 대기오염물질이 전체의 67.4%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평상시에도 산업시설 중심의 상시 저감대책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농도 비상저감 노력과 함께 미세먼지 노출에 민감한 계층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미세먼지 쉼터, 미세먼지 마스크 보급 등 소소하지만 도민의 눈높이에 맞는 사업들을 지속적으로 발굴해 추진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충남도는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 △산업시설의 탈황·탈질 등 방지설비와 먼지를 잡기 위한 집진설비 확충 △화력발전소 가동률을 80%로 제한하는 상한 제약을 30기 중 노후된 20기를 대상으로 도의 명령으로 시행 △발전소 가동 중지(셧다운) 도내 노후 발전기 전체 확대 정부 건의 △연말까지 발전사 협력사업으로 육상전력장치(AMP) 구축 △대기오염물질 배출기준 농도 규제에서 총량 규제로 변경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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