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봇대에도 세금을 매겼던 일제의 악랄한 착취
  • 이원혁 항일영상역사재단 이사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3.29 17:2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원혁의 ‘역사의 데자뷰’] 27화 - 제국주의 ‘별별’ 세금들
일제강점기 농민, 노동자, 상인들의 '항세(抗稅)' 투쟁 끊이지 않아

요즘 우리 사회는 마치 '세금과의 전쟁'을 치르는 듯하다. 여기저기서 한숨과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다들 "소득은 제자리인데 세금만 더 떼어간다"면서 꼭 필요한 곳에 쓰이는 건지 걱정들이 많다. 언제 우리 국민이 나라 잘 되는 일에 몸 사린 적이 있었는가. 세금이 제대로 쓰이는 걸 경험한 적이 없으니 그저 빼앗긴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일게다. 이런 인식을 갖게 된 데는 과거 일제의 가혹한 세금 정책으로 호주머니를 탈탈 털린 기억도 한 몫 했으리라 여겨진다.

 

봉이 김선달도 울고 갈 일제의 '별난' 세금들

메이지 유신 이후 잇달아 침략 전쟁을 벌인 일제는 전비 마련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2017년 일본 쥬오(中央)대학에서 펴낸 《일본의 전시재정》이란 책에는 이른바 벼락부자세, 전봇대세, 화대세로 불리는 '기묘한' 세금 항목들이 등장한다.

그 중 벼락부자세는 제1차 세계대전 중 전쟁물자와 선박 사업 등으로 떼돈을 번 졸부들에게 물린 세금이었다. 정식 명칭은 '전시이득세'였는데 참전에 따른 적자 재정을 메우기 위해 급조한 것이었다. 이 세금으로 2년 동안 2억 9000만 엔, 현재 가치로 무려 60조 원이 넘는 돈을 거둬들였다. 당시 졸부들의 행태가 여러 차례 구설에 올랐던 탓에 일본내 여론은 '멋진 세금'이라며 환영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전봇대에도 세금을 매긴 점이다. 20세기 급격한 산업화로 전기와 전신 이용이 급증하자 전신주도 따라서 늘어났다. 일제는 "전신주는 근대 산업국가를 상징하는 지표다"라며 '전주입국(電柱立國)'을 내세워 설치를 장려했다. 그러면서 1927년 부터 대륙침략을 위한 전비조달 명목으로 전주세를 물려 막대한 수입을 올렸다.

한데 가뜩이나 비좁은 거리에 마구 세우다 보니 전기줄이 뒤엉켜 미관을 해치고 안전을 위협할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2018년 11월 포브스지에 따르면 세계의 주요 도시 중 파리, 런던, 홍콩은 전신과 전주를 100% 지하에 묻었고 서울도 46%에 이른다고 한다. 하지만 내년 올림픽을 앞두고 있는 도쿄는 그 비율이 8%에 그치고 있다. 근대의 상징이자 '세금 효자' 전봇대가 일본의 골칫거리로 전락하고 만 셈이다.  

흉물 처럼 서있는 쇼와시대 전신주와 전선. 오른쪽은 지폐를 태워 불을 밝히는 벼락부자를    풍자한 만화인데 교과서에도 실렸다
흉물 처럼 서있는 쇼와시대 전신주와 전선. 오른쪽은 지폐를 태워 불을 밝히는 벼락부자를 풍자한 만화인데 교과서에도 실렸다

전쟁의 광기는 속칭 화류계에도 세금폭탄을 터트렸다. 전비에 쪼달린 일제는 기생에게 주는 팁 등 '화대' 까지 손을 댔는데 그 세율의 인상 폭이 폭발적이었다. 1939년 20%에 머물던 화대세는 전쟁 말기엔 400%로 5년만에 20배나 올랐다. 전시인지라 유흥업소에서 눈치를 보며 세금 신고를 제대로 하지 않자 세무당국이 아예 선수를 쳐버린 것이다.

이렇다보니 수입에 따라 세금을 내는게 아니라 세금을 감안해서 화대가 정해지는 희한한 일이 일어나게 됐다. 이처럼 1차세계대전,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등 잇단 침략 전쟁을 벌인 일제는 동시에 자국민들과도 '세금 전쟁'을 치렀던 셈이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지난해 3월 일본 산케이신문은 "태평양전쟁 전, 식민지 조선은 일본 본토 보다 세금이 적었다"라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조선총독부 재무국장을 지낸 미즈다 나오마사가 쓴 《총독부 시대의 재정》이라는 책을 언급하며 "일본은 소득에 대한 세금비율이 14~15%였는데 조선은 10% 미만이었다"란 점을 지적했다. 이어 조선인들을 착취하긴 커녕 도리어 세금 부담을 덜어주며 '인도적'으로 대했다고 강변하기도 했다. 아무리 우익 성향의 신문이라지만 참으로 '낮뜨거운'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일제는 1904년 조일협정을 강제하고 조선의 '돈줄'부터 장악했다. 일본 제일은행을 중앙은행으로 정해 자본 수탈에 나섰고, 동양척식회사를 만들어 일본인들의 약탈적인 땅 매입을 부추겼다. 먼저 토지와 금융제도를 손 본 것은 세금 확보 때문이었다. 병탄 이후 20년 동안 토지세는 전체 세수의 절반 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컸다. 더구나 조선총독부의 통계연보를 살펴보면, 1931년 약 4000만 원(圓)이던 세수가 1943년엔 3억 7000만 원으로 무려 9배나 더 늘어났다. 산케이신문이 주장한 세금 혜택은 고사하고 되레 조선인들을 세금으로 쥐어짰던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일본인의 세금으로 식민지 조선을 먹여 살렸다"라는 식의 왜곡 보도를 일삼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일본 내지 보다 조선의 세금이 적었다'는 제목의 산케이신문 기사. 서구의 착취에 비해    일본은 식민지를 인도적으로 대했다는 내용(붉은 선). 일제는 조선의 인력거와 리어카에도     세금을 물렸다
 '일본 내지 보다 조선의 세금이 적었다'는 제목의 산케이신문 기사. 서구의 착취에 비해 일본은 식민지를 인도적으로 대했다는 내용(붉은 선). 일제는 조선의 인력거와 리어카에도 세금을 물렸다

 

일본 언론, "일본인 세금으로 식민지 조선 먹여 살렸다"

당연히 식민지 조선은 본토보다 훨씬 악랄한 세금 착취에 시달렸다. 일본의 '전시이득세'와 마찬가지로 조선에서도 '임시이득세'를 물렸고, 전신주에도 세금을 매겼으며, 유흥업소 출입시 입정세를 받았다. 일본의 세금 항목들이 식민지에도 고스란히 적용됐던 것이다. 거기에다 태평양전쟁 때는 '특별행위세'라 하여 사진 촬영, 미용, 옷 염색, 인쇄 제본 등을 할 때마다 요금의 20~30%를 거두기까지 했다. 이렇다 보니 일제강점기 내내 농민, 노동자, 상인들의 '항세(抗稅)' 투쟁이 끊이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상해 임시정부의 포고령 제1호가 "납세를 전면 거부할 것" 이었을까 싶다.

아시아 다른 식민지의 세금 착취와 저항 운동은 어땠을까. 인도를 식민지배한 영국은 소금의 생산과 판매를 독점하고 원가의 24배가 넘는 세금을 매겼다. 1930년 3월 마하트마 간디는 "소금은 가난한 사람들의 유일한 양념이다"라며 소금세 거부운동을 펼쳤다. 그와 지지자들이 24일 동안 약 400km를 걷는 '소금 행진'을 벌이자 인도 전역에서 소금 저장소를 습격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영국군의 총격으로 수천 명이 죽거나 다치고 6만 명이 경찰에 붙잡힐 정도로 사건의 파장이 컸다. 하지만 이처럼 격렬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기껏해야 소금 생산지 주민에게만 극소량의 채취가 허용됐을 뿐이다. 침략이나 식민지배도 돈 때문에 벌인 일이라 열강들이 쉽사리 세금을 포기할 리 없었던 것이다.

간디의 소금 행진 모습. 오른쪽은 폴 두메르 총독과 베트남 아편 공장 근로자들이 퇴근하며    몸수색 받는 모습
간디의 소금 행진 모습. 오른쪽은 폴 두메르 총독과 베트남 아편 공장 근로자들이 퇴근하며 몸수색 받는 모습

프랑스 역시 식민지 베트남의 소금과 술을 독점하고 막대한 세금을 매겼다. 소금세를 5배 올렸고, 마을마다 술 소비량을 강제로 정해서 주세를 4년 사이에 6배나 더 거두었다. 더욱 기막힌 일은 식민당국이 나서서 아편을 부추긴 사실이다. 프랑스의 통치 이전, 베트남에서 아편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다. 한데 1897년 부임한 폴 두메르 총독은 아예 '국영' 아편 공장을 세우고 반강제적으로 소비를 조장했다. 아편세는 1902년 총독부 예산의 25%, 1914년에는 37%를 차지할 정도였다. 거리 곳곳에 술 주정뱅이와 '아편 좀비'들이 들끓게 되자 식민통치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도 함께 끌어올랐다.

마침내 1908년 베트남 전역에서 항세시위가 일어났다. 프랑스군의 발포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꽝남성에서만 천여 명이 체포되거나 처형됐다. 당시 후에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베트남의 국부 호찌민 (1890~1969)은 시위대의 주장을 식민정부에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 일로 호찌민은 퇴학을 당했고, 하급관리였던 그의 아버지는 산골 오지로 쫒겨난 후 곧 옷을 벗어야 했다. 결국 세금 투쟁이 그가 반식민 운동에 뛰어든 계기가 된 것이다. 호찌민은 1945년 9월 2일 발표한 독립선언문에서 "그들은 아편과 알코올을 강요해 우리를 인종적으로 약화시켰고, 다수의 부당한 세금을 만들어 처참한 빈곤의 나락에 빠뜨렸다"라며 세금 착취가 독립항쟁의 불씨를 당겼다고 적었다.

지금 일본에서는 때아닌 '청구권 시비'가 일고 있다. 얼마 전 우리 대법원이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내리자 일각에서 "한국에 170조 원의 청구권을 행사하자"는 주장을 펴는 것이다. 패망 후 한반도에 남겨두고 온 일본의 자산을 돌려달라는 얘기다. 남의 땅을 빼앗고, 임금 떼먹고, 세금 도둑질까지 하고도 마치 빚쟁이처럼 구는 이들의 행태는 언제쯤 그 끝을 맺을까. 눈 감으면 코 베어 갈 '요주의' 이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