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 “문재인 대통령, 분열의 정치 하고 있다”
  • 안성모 기자 (asm@sisajournal.com)
  • 승인 2019.04.02 08:00
  • 호수 153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창간 30주년 특별기획 인터뷰] 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
“청와대 아닌 국무회의 중심 국정 운영해야”

혼돈의 시대다. 혹자는 난세(亂世)라 부른다. 갈피를 못 잡고, 갈 길을 못 정한 채 방황하는, 우왕좌왕하는 시대다. 시사저널은 2019년 올해 창간 30주년을 맞았다. 특별기획으로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 등 각계 원로(元老) 30인의 ‘대한민국, 길을 묻다’ 인터뷰 기사를 연재한다. 연재 순서는 인터뷰한 시점에 맞춰 정해졌다. ⓛ조정래 작가 ②송월주 스님 ③조순 전 부총리 ④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⑤손봉호 기아대책 이사장 ⑥김원기 전 국회의장 ⑦김성수 전 대한성공회 대주교 ⑧박찬종 변호사 ⑨윤후정 초대 여성특별위원회 위원장 ⑩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⑪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 ⑫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⑬ 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 

헌법(憲法)은 국가의 근본법이다. 국민의 기본권을 규정하고 이를 보장하며, 국가의 통치 작용과 통치 조직을 정하고, 국가 권력의 행사와 그 근원을 규정한 근본 규범이다. 우리 헌법은 한국 현대사에서 부침을 겪었다. 때로는 독재자의 장기집권 수단이기도 했고, 때로는 민주화의 열망이 맺은 결실이기도 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로 시작하는 헌법은 오랜 기간 국민 삶과 동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로 이어지는 헌법은 이제 국민 삶과 밀접하다. 헌법에 의해 ‘최고 권력’ 대통령이 탄핵되고, 헌법 개정에 대한 사회 각계각층의 요구가 쏟아진다. 헌법은 더 이상 권력을 비호하는 방패가 아니라 권력을 겨냥한 날 선 칼이 됐다.

원로 헌법학자인 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허 교수는 3월18일 경희대 제2법학관에서 가진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이 헌법의 규범력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제왕적 대통령으로 군림하며 삼권분립의 원칙을 훼손하고 있고, 헌법적인 절차와 과정을 무시하며 독단적인 국정운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허 교수는 “지금이라도 헌법의 규범력을 준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 교수와 문 대통령은 ‘인연’이 있다. 독일 뮌헨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허 교수는 1972년 경희대 법학과 교수로 부임했는데, 문 대통령이 그해 경희대 법학과에 입학한 것이다. 허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72년 입사 동기’이고, 넓은 의미에서 ‘사제 관계’에 있었던 셈이다. 허 교수는 “문 대통령이 내 헌법 강의를 열심히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 시사저널 최준필
ⓒ 시사저널 최준필

“통합정치 해야 하는데 분열정치 하고 있어”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문재인 대통령 취임 때 속으로 기대를 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 기대가 완전히 무너져버려서 지금은 대단히 실망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선 대통령이라는 게 자신을 뽑아준 사람도 있지만 뽑아주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 모두를 아우르는 통합의 정치를 해야 하는데, 정반대되는 분열의 정치를 하고 있어요. 나아지겠지 했지만 날이 갈수록 더 심해져요. 내 편만 챙기고 내 편이 아닌 사람은 전부 배척하는 거죠. 그리고 정책노선이 좌파로 흘러가고 있어요. 좌파 이데올로기에 몰입하고 있는 것 같아 대단히 실망하고 있습니다.”

현 정부의 적폐청산은 어떻게 보시나요.

“적폐청산도 필요하겠죠. 그런데 적폐청산이라는 건 외과적으로 꼭 필요한 부분만 제한적으로 해야 하는 건데, 사회 전체를 대상으로 전방위적으로 적폐를 청산하겠다는 건 처음부터 가능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마치 편 가르기 정치의 표본처럼 보여요.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단기간에 끝내고 말아야지 집권 이후 지금까지 계속 이어진다는 것은 정상적인 적폐청산이라고 보기 어렵죠.”

보수와 진보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보수와 진보라는 개념 자체가 정확하지 않다고 봐요. 어느 한쪽이 좋고 어느 한쪽이 나쁘다고 말하는 건 부정확하다는 거죠. 그보다는 우파와 좌파라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할 겁니다. 사실 우리 사회가 좌우 이념 갈등이 아주 극심한 사회죠. 과거부터 존재해 왔는데, 지금 그게 더 심해졌어요. 그게 문제라는 거예요. 통치의 궁극적인 목적이 뭐냐면 바로 사회통합이에요. 내가 가진 헌법 철학에 비춰보면 사회통합이 통치의 근본적인 목적이라고 봐요. 분열된 것도 아울러서 통합시키려 노력하는 게 통치자의 첫 번째 책무인데, 문 대통령은 이를 갈라놓고 있어요. 인사만 보더라도 그래요. 과거 문 대통령이 야당 시절 흔히 말하는 보수 정권의 낙하산 인사를 굉장히 비난했는데, 지금 낙하산 인사가 그 어느 정권보다 심해요.”


“존경할 만한 대통령 없었다는 건 국민의 불행”

허영 교수의 날 선 비판은 ‘헌법의 규범력’으로 이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헌법 질서의 규범력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를 묻자 “열거하면 한이 없다”고 했다. 허 교수는 첫 번째로 “삼권분립 원칙을 근본적으로 무너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면 필연적으로 남용되거나 악용되기 마련이니까 입법·행정·사법을 나눠 맡기고 서로 견제하도록 하는 게 삼권분립의 원칙 아닙니까. 우리나라도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가 나눠져 있죠. 그런데 행정부의 수장이 대통령이라고 한다면, 입법부는 거의 대통령의 수족처럼 움직이고 있고, 사법부도 소위 말하는 적폐청산을 한다는 명목으로 장악을 했단 말이에요.”

청와대 중심의 국정운영도 헌법의 규범력을 지키지 않는 근거로 제시했다. 허 교수는 헌법 88조와 89조를 거론했다. 88조에는 ‘국무회의는 정부의 권한에 속하는 중요한 정책을 심의한다’고 돼 있고, 89조에는 17개 항목을 나열하며 ‘다음 사항은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고 적시돼 있다. 허 교수는 “지금 국무회의는 뒷전이고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가 국정의 중심축인 것처럼 운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청와대 비서실이라는 글자는 우리 헌법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아요. 비서라고 하는 것은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참모에 불과한 거지, 그 사람이 국정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도 아니잖아요. 인사청문회를 거치지도 않고 검증된 바 없는 사람들을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에 앉혀놓고 그들을 중심으로 국정운영을 하고 있죠. 국무회의는 형식적으로 하는 거고.”

청와대 중심의 국정운영. 허 교수는 구체적 사례로 지난해 3월에 있었던 문 대통령의 헌법개정안 발의 과정을 들었다.

“헌법개정안은 중요한 국정사안이라 국무회의 심의를 거치도록 돼 있는데 청와대에서 다 만들어서 민정수석을 통해 발표하게 하고 국무회의에서 형식적으로 통과시켰다”는 것이다. 허 교수는 “이런 행위가 우리 헌법의 규범력을 근본적으로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했다. 

허 교수는 또 “우리 헌법에 분명히 국무위원은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게 돼 있는데, 국무총리의 제청을 받아서 임명하는 법이 없는 것 같다”며 “청와대가 지시해서 낙점한 사람을 국무총리가 형식적으로 제청하는 건 헌법을 어긴 것”이라고 했다. 이와 함께 검찰의 행태도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피의자를 죄인으로 취급해 검찰 포토라인에 세우고 그 사람의 인격권을 침해하고 있는데 이게 다 적폐청산이라는 명목하에서 이뤄지는 거란 말이에요. 그리고 불구속 수사의 원칙이 있는데, 마치 구속이 원칙이고 불구속이 예외인 것처럼 행해지고 있죠. 이게 다 헌법의 규범력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현 정권에서만 드러나는 현상이라기보다는 과거 정권 때부터 있어왔던 부분 아닌가요.

“물론 과거가 다 클린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그 정도가 심하다는 거죠. 그리고 과거 정권의 그런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했던 정권이라면 그것을 반면교사로 삼아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렇게 돼야죠. 그런데 오히려 더 심해지니까 문제라는 거죠.”

허영 교수는 역대 대통령에 대한 평가에서도 문 대통령을 ‘최악’으로 꼽았다. “군사 독재정권을 빼고 1987년 민주화 이후 들어선 정권에서 그래요. 노태우는 군사정권의 한 축이니까 제외하고,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이렇게 놓고만 친다면 난 최악의 대통령이라고 생각해요.”

인터뷰 다음 날 허 교수로부터 이메일이 왔다. 허 교수는 문 대통령을 문민정부 출범 이후 가장 나쁘게 평가한 근거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제왕적 대통령으로 군림하면서 삼권분립의 원칙을 훼손하는 통치행태 △헌법적인 절차와 과정을 무시한 독단적 국정운영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실험을 통한 경제파탄 초래 △포퓰리즘 정책의 남발과 세금 퍼붓기 정책으로 국가재정 악화 △우리 민족끼리의 정책기조에 따른 친북정책의 일관으로 인한 국가안보태세 약화 △한·미 동맹의 균열과 대일본 관계의 악화로 인한 고립적인 외교정책 △염치없는 내로남불 정치행태의 연속.’

그러면 잘한 대통령은 누구라고 보시나요.

“잘한 대통령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상대적으로라도.

“상대적으로도 점수를 줄 만한 대통령은 없어요. 그게 우리 대한민국 국민이 갖는 불행이에요. 지금까지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고 존경할 만한 대통령이 없었다는 것. 이게 얼마나 불행한 겁니까.” 

문 대통령에게 조언을 하신다면.

“앞서 얘기한 것처럼 헌법의 규범력을 준수해야 합니다. 헌법 규범에 따라 청와대 중심이 아닌 국무회의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하고, 삼권분립의 원칙을 지키도록 노력하고, 제왕적 대통령 행세를 집어치우고, 그렇게 헌법의 규범력에 따라 통치를 해 달라는 게 내 희망이에요.”

2004년 4월7일 프레스센터에서 허영 교수가 탄핵정국의 헌법적 해법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04년 4월7일 프레스센터에서 허영 교수가 탄핵정국의 헌법적 해법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 연합뉴스

“4년 중임제로 개헌…결선투표제도 도입”

현재 ‘잠정 중단’ 상황에 놓인 헌법 개정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일까. 허영 교수는 그동안 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해 온 헌법학자다. 허 교수는 ‘87년 헌법’이 개정돼야 하는 이유에 대해 “시대정신이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밝힌 후 “언젠가는 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제왕적 대통령 문제도 개헌을 통해 바로잡을 수 있지 않을까. 이에 대해 허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에는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을 줄이는 내용이 없었다”고 했다.

“지방분권이라는 이상한 개념을 헌법 제1조에 넣었는데, 지방분권이라고 하는 게 헌법상 개념이 아니에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어요.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을 줄이는 부분은 기껏 헌법재판소장을 재판관 호선으로 한다는 정도인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러면 당시 안으로 개헌을 진행하는 건 부적합하다고 보신 거네요.

“그 개헌안이 통과됐더라면 더 나빠졌을 거예요.”

권력구조 개편과 관련해서는 대통령 4년 중임제가 제시됐습니다. 평소 교수님께서도 4년 중임제가 합당하다고 말씀해 오셨죠.

“1980년대부터 주장한 게 대통령제 정부라면 국민이 직선으로 뽑은 대통령이 4년 임기를 채웠으면 그 임기 동안 했던 업적에 대해 평가받을 수 있는 기회를 최소한 한 번은 더 부여해야 된다는 거였죠. 잘했든 못했든. 잘했으면 재선이 되는 거고 못했으면 재선이 안 되는 거고. 그 기회를 부여하는 게 대통령 직선제의 의미거든요. 그런데 현 헌법을 만들 당시 시대 상황이 장기집권에 너무 시달리다보니까 5년 단임으로 하라는 거였죠. 그때 시대정신이 두 가지였죠. 대통령을 내 손으로 뽑는다, 장기집권을 막는다.”

지금도 4년 중임제가 합리적이라고 보십니까.

“나는 대통령제 정부 행태를 지지한 사람입니다. 일부에서 말하는 이원정부제는 되지도 않고, 의원내각제 이건 정당정치가 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더더욱 안 되고. 결국은 그동안 해 온 대통령제를 개선해 가져가자는 겁니다. 대통령제를 하되 4년 중임제를 하자는 건데 다행히 문 대통령의 개헌안에도 포함됐었죠. 여기에다 대통령 결선투표제를 도입해야 합니다. 87년 당시 3김(金)이 서로 아전인수로 해석하는 바람에 상대보다 한 표라도 더 얻으면 되도록 했죠. 그런데 대통령을 직접 뽑는 나라에서는 다 도입을 했어요. 최근 슬로바키아 대통령선거에서도 13명의 후보가 나왔는데 결국은 두 명이 결선투표를 했거든요.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적어도 국민 과반 이상이 내 등을 밀고 있다 이래야 국정운영이 되는 거지요.”

국무총리제 대신 부통령제로 해야 한다는 말씀도 하셨죠.

“국무총리제라는 게 지금 전혀 의미가 없는 거 아니에요. 내가 보기에 총리가 청와대 비서실장보다 권한이 없는 것 같아요. 대통령이 시키면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거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그런 국무총리제 둬서 뭘 합니까. 그리고 본래 대통령제와 국무총리제는 안 맞아요. 부통령제를 선택해 대통령과 러닝메이트로 뽑으면 되죠. 보세요.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는데 어디까지가 그 사람의 권한인지 얼마나 말이 많았습니까. 심지어 헌법재판소장이 공석인데 그것 하나도 임명할 수 없었죠. 처음부터 대통령과 부통령을 러닝메이트로 내세우고 대통령 유고 시 부통령이 대통령 직무를 승계하도록 하면 됩니다.”

의원내각제는 아니라고 하셨는데 국회에 대한 국민 신뢰가 많이 떨어져 있죠.

“최하 아닙니까. 국민들의 국회에 대한 믿음이 거의 없어요. 그런 국회에 무슨 국정을 맡길 수 있어요.”

국회의원의 특권도 줄여야 하지 않을까요.

“당연히 없애야 돼요. 대한민국에서 왜 너나 할 것 없이 국회의원 하고 싶어 합니까. 특권 때문에 그래요. 금배지 하나 달면 총리 불러 야단치고 장관 불러 야단치고. 자기가 최고인 것처럼. 거기에다 불체포특권 있죠, 면책특권 있죠. 여러 가지 무수한 특권을 누리니까 그게 매력이 있다고 보는 거예요. 그래서 파이를 줄여야 돼요. 선진국 국회처럼 세비를 팍 줄여야죠. 국회의원이 왜 기사를 데리고 다녀야 됩니까. 선진국은 다 자기가 운전하고 다니는데. 자전거도 타고 다니잖아요. 보좌관은 왜 9명이나 필요합니까. 세계 의회 사상 국회의원이 9명씩 보좌관 두는 나라는 없어요. 국회의원에게 주는 특권의 절반은 없애야 된다고 생각해요.”

국회에서 선거제도 개편을 논의 중인데 각 정당의 입장이 조금씩 다릅니다. 특히 자유한국당에서 비례대표제 폐지안을 내놨는데 이를 두고 위헌 논란이 있습니다.

“헌법을 보면 ‘국회의원 선거구와 비례대표제 기타 선거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고 돼 있습니다. 헌법에 비례대표제가 들어가 있으니 이걸 빼면 위헌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어요. 그러나 헌법은 한 조문이나 한 문구만 보고 해석하는 게 아니에요. 전문에서부터 부칙까지 통일적으로 해석해야 하는데, 국회의원 선거제도라고 하는 것은 말하자면 게임의 룰이에요. 국회를 구성하는 게임을 어떤 룰로 할 거냐. 결국 그 게임에 참여하는 모든 선수들이 합의할 수 있는 룰을 만들어야 돼요. 참여하는 선수 한편에게 유리하고 한편에게 불리한 룰을 만들면 페어플레이가 되겠습니까. 비례대표제가 헌법 규정에 있건 없건 제일 중요한 헌법 정신은 선거에 참여하는 각 정당이 합의할 수 있는 합의안을 만드는 것이라고 봐요.”


“공론화위원회 대의민주정치에 위배”

허영 교수는 올해의 화두로 ‘경제재건’을 꼽았다.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인 ‘소득주도성장’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다. 허 교수는 “소득주도성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철학에서 나온 건 아니라고 본다”고 했다.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강조해 온 소득주도성장을 문 대통령이 받아서 밀어붙였는데 결과적으로 여러 부작용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장 교수(전 실장)가 강단에서 주장할 수는 있지만 세상 어디에도 소득주도성장 경제정책을 펴서 성공한 사례가 없잖아요. 현실은 문 대통령이 생각했던 것처럼 못사는 사람이 잘사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못살게 됐잖아요. 그러면 빨리 방향 선회를 해야죠. 그게 책임 있는 정치인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잘못했다는 걸 느끼는 순간 ‘이런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예상 못 하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이렇게 됐으니까 이제부터는 달리 해야겠다’ 국민에게 솔직히 얘기하고 그러면 국민이 얼마나 박수치겠어요. 그렇게 안 하기 때문에 문제라는 거죠. 원자력발전소도 마찬가지죠. 대통령이 선거 공약에 제시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 한마디로 공사를 중단시키고, 헌법적인 근거도 없는 공론화위원회라는 기구를 만들어 가지고….”

원자력발전소 건설과 대입제도 개편과 관련해 공론화위원회가 구성됐죠.

“공론화위원회라는 거는 헌법적인 근거도 없고, 정당화시킬 수 있는 기구가 아니에요. 그 사람들이 전문가도 아니고 누구에게 책임을 집니까. 그 결정에 대해서.”

국민의 의견을 듣겠다는 취지 아닌가요.

“우리가 지금 대의민주정치를 하고 있잖아요. 대의민주정치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신임과 책임입니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아서 대의기관에 보내고 그 사람들에게 정책을 위임하고 그들이 결정한 것에 책임을 지는 메커니즘이 되풀이되는 거예요. 그런데 공론화위원회 그 사람들을 국민이 뽑은 게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대의민주정치에 위배되는 거죠. 또 우리 헌법에 국민투표를 할 수 있는 길이 있어요.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한 정책은 대통령이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어요. 대통령이 꼭 필요하다고 한다면 국민투표에 부쳐 그 결과에 따라 정책을 추진하면 되죠.”

현 정부에서 중점을 둬온 남북관계 개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대통령이 남북관계에 관심을 꺼버리면 안 되죠. 우리 헌법에도 통일을 지향하도록 돼 있기 때문에 통일을 지향하는 그 시각은 가져야 돼요. 그런데 우리의 지정학적 조건이 남북관계가 오로지 남과 북의 관계로만 끝나게 돼 있지 않아요. 한·미 동맹 문제 있죠, 한·일 관계 있죠, 중국과의 관계도 있죠. 그렇기 때문에 글로벌한 국제정치 테두리 속에서 가능한 남북관계의 발전을 추구해야지 이것저것 다 빼버리고 우리 민족끼리 하자 이거는 가능하지도 않고 성공할 수도 없습니다. 문 대통령이 그걸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 같아요. 독일 통일 과정을 보면, 콜 총리가 러시아·영국·프랑스와 유대를 강화해 왔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죠. 문 대통령도 국제정치적 환경을 잘 살펴서 지혜롭게 북한과의 관계를 유지해 나가야 해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허영 교수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허 교수는 “헌정사를 집대성한 책을 쓰고 싶다”고 했다. 우리 헌정사에서 잘된 부분과 잘못된 부분을 정확히 짚어서 기록으로 남기겠다는 것이다. 허 교수는 “자료를 모으고 있지만 방대한 작업이라 언제 될지는 모르겠다”며 “내가 시작을 하면 후학들이 이어받아 할 수 있는 그런 길도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국회 인사청문회 너무 형식적 야당, 불평만 할 게 아니라 대안 제시해야”

문재인 대통령이 3기 개각을 단행하면서 국회 인사청문회가 치러지고 있다.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는 “지금의 인사청문회는 너무 형식적”이라며 “청문보고서가 채택되든 안 되든 대통령이 마음대로 임명할 수 있다면 인사청문회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현재 국무총리를 비롯해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감사원장의 경우 국회의 임명동의가 필요하지만, 장관은 국회의 뜻과 상관없이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다.

“인사청문회라는 건 취지가 검증과정에 있어요. 그 사람이 도덕적으로 그리고 정책적으로 이 자리에 적합한 사람이냐. 도덕적 흠결이 있거나 정책적으로 적임자가 아니라는 판단에 청문보고서가 채택 안 되면 임명되지 않도록 해야죠. 야당은 뒤에서 불평만 할 게 아니라 대안을 제시해야 하잖아요. 이런 모순이 있으니까 이렇게 바꾸자고 강력히 밀어붙여야죠.”

“매일 최선을 다하며 즐겁게 살아가는 게 아름다운 노년”

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는 이번 학기 법치국가 원리와 쟁점을 주제로 강의를 한다. 허 교수는 “석좌교수라고 그냥 노는 게 아니라 특강 형식으로 강의를 한다. 법학전문대학원 학생들의 초미의 관심사는 변호사 시험 합격이라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내용을 내 전공에 맞는 주제로 강의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나이에 비해 건강한 편이다”며 “노인이 건강을 챙기지 않으면 안 되잖느냐”고 했다. 지금도 새벽에 일어나 운동을 하는 게 일과의 시작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아름다운 노년을 보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허 교수는 ‘오늘’이 중요하다고 했다.

“매일매일을 가장 보람 있게 보내는 게 아름다운 노년 아닐까요. 노인은 내일을 알 수 없잖아요. 그러니까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거예요. 즐겁게.”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