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가는 ‘더스트 포비아’ “이불 밖은 위험해”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19.04.03 10:00
  • 호수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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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가 만든 한국 사회 신풍속도

#5살 아이 엄마인 송호현씨(가명)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미세먼지 농도를 체크하는 것이다. 공기의 질이 양호한 상태로 확인되더라도 방심하지 않는다. 이번엔 지역 맘카페에 접속한다. 이곳 회원 중 한 명이 미세먼지 측정기를 구매해 매일 아침 미세먼지 농도를 공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앱과 맘카페를 통해 ‘이중점검’을 하는 것이다. 그 결과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날은 최대한 옥외 활동을 삼가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서원용씨(가명)는 미세먼지가 심한 날이면 안방과 거실에 비치해 둔 공기청정기 2대를 24시간 가동한다. 실내 공기가 답답해도 절대로 창문을 열지 않는다. 장도 온라인으로 보고 식사는 직접 해 먹거나 배달음식으로 해결한다. 불가피하게 외출을 할 일이 있으면 마스크 착용은 필수다. 귀가할 땐 항상 겉옷을 꼼꼼히 털어낸다. 집 안에 들어서면 화장실로 직행해 손발과 얼굴은 물론 흐르는 물에 눈을 씻고 콧속까지 꼼꼼하게 닦아낸다.

미세먼지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가 높아지면서 외출 시 마스크 착용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 시사저널 박정훈
미세먼지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가 높아지면서 외출 시 마스크 착용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 시사저널 박정훈

배달음식 늘고 실내 공간 관심 높아져

이는 비단 이들만의 사례가 아니다. 미세먼지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엔 우려를 넘어 공포마저 담겨 있다. ‘더스트 포비아(Dust Phobia·미세먼지 공포증)’라는 말이 공공연한 이유다. 미세먼지에 대한 공포는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바꿔놓고 있다. 미세먼지가 우리에게 남긴 변화는 어떤 것이 있을까. 

당장 눈으로 확인 가능한 것은 미세먼지 마스크를 착용한 이들이 늘었다는 점이다. 마스크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에 가까워졌다. 버스 등 대중교통이나 건물 내에서 마스크를 쓴 경우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실내도 미세먼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미세먼지 마스크가 일상 깊숙이 들어오면서 ‘패션 아이템’으로도 진화하고 있다. 기존 흰색 일색에서 다양한 색상과 디자인을 더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아동을 위한 캐릭터 마스크도 출시되고 있다.

집 밖의 미세먼지를 마스크로 차단했다면 집 안에는 공기청정기가 있다. 이미 공기청정기는 필수가전으로 자리 잡은 상태다. 한 가구에 여러 대를 사용하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휴대용 공기청정기도 인기다. 차량과 사무실은 물론 유모차 안에 넣고 사용할 수도 있다. 심지어 목에 걸고 사용할 수 있는 웨어러블 공기청정기도 시중에 출시됐다.

고가의 공기청정기 가격이 부담이 되는 경우 직접 제작에 나서기도 한다. 온라인상에서는 ‘공기청정기 DIY(Do It Youself·자체 제작)’ 등의 게시물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공기청정기용 필터에 환풍기용 팬을 연결하는 식이다. 온라인에 공기청정기 제작 방법을 공개한 네티즌은 “공기청정기가 수입제품의 경우 비싼 건 300만원에 달하는 데 비해 필터와 환풍기용 팬 등 5만원 이하로 공기청정기를 직접 만들어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 외부활동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배달음식 수요도 늘고 있다. 배달앱 ‘배달의민족’ 조사에 따르면, 미세먼지가 심했던 올해 3월1~3일(금~일) 사이 음식 주문량은 334만여 건이었다. 전주 같은 요일에 비해 7.5%(24만여 건) 증가한 수치다. 이런 추세는 배달앱 ‘요기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올해 3월1~3일 요기요를 통한 배달 주문량은 미세먼지가 비교적 양호했던 2월8~10일에 비해 25.4% 증가했다.

이는 배달을 하지 않는 식당들의 매출이 줄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실내에 마련된 식당의 경우는 그나마 사정이 낫다. 노점상의 경우 미세먼지의 직격탄을 그대로 맞았다. 음식이 미세먼지에 그대로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서울 구로구에서 붕어빵 노점상을 운영하는 한아무개씨는 “비닐 포장이 돼 있는 삶은 옥수수는 꾸준히 판매되는데 매대에 진열해 놓는 붕어빵은 잘 사가지 않는다”며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는 손님들 발길이 뚝 끊긴다”고 푸념했다.

미세먼지로 외출이 줄어들면서 오프라인보다 온라인 쇼핑을 선호하는 경향도 뚜렷해지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1월 온라인쇼핑 동향’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 국내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10조7034억원이었다. 전년 동기보다 17.9%(9조763억원) 늘어난 수치다. 통계가 집계된 이래 1월 기준 역대 최대치이기도 하다. 장기간 사용 목적의 대용량 생활필수품 판매가 급증하고 있는 것도 미세먼지가 가져온 변화 중 하나로 꼽힌다.

미세먼지는 여가생활의 풍경도 바꿔 놨다. 불과 수년 전만 해도 봄이 되면 봄꽃놀이나 외부 체육행사 등이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여가생활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키즈카페와 스크린골프장, 스크린야구장, 롤러스케이트장, 볼링장, 실내 양궁장, 실내 낚시 등 실내 여가공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미세먼지가 우리 여가생활을 ‘실내화’시키고 있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자료도 있다. 비씨카드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미세먼지가 실제 소비 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 이상일 때 영화관 일평균 이용금액이 ‘보통’ 때보다 29% 높게 나타난 것이다. ‘매우 나쁨’인 날에는 33% 더 많은 관객들이 영화관을 찾았다. 미세먼지로 야외 대신 실내 여가를 즐기려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얘기다.


맑은 공기 찾아 떠나는 ‘에어 노마드’ 등장

미세먼지에 대한 우려는 최근 ‘수돗물을 가습기에 넣으면 연무에 미세먼지가 포함된다’ ‘최근 경상북도 경산의 홍역 감염자 발생은 해외에서 미세먼지를 타고 홍역 바이러스가 넘어왔기 때문’ 등 루머까지 퍼지면서 한층 깊어지고 있다. 이렇다 보니 어린 자녀를 둔 가정을 중심으로 미세먼지로부터 피난을 가기 위해 해외 이민을 고민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이 때문에 ‘에어 노마드(Air Nomad)’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공기(Air)와 유목민(Nomad)을 더한 신조어로 맑은 공기를 찾아 이동하는 이들을 일컫는다.

실제 한 지역 맘카페에서는 이민을 문의하거나 이민을 떠난 사례를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또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미세먼지’를 검색하면 연관검색어로 ‘이민’이 뜬다. ‘미세먼지’와 ‘이민’이 동시에 언급된 글의 수가 2015년(125건) 대비 2017년(1418건)에 10배 이상 증가했다는 다음소프트의 빅데이터 분석 결과도 있다. ‘미세먼지 때문에 이민 가고 싶다’는 말을 더 이상 푸념으로 들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 때문에 3월23일부터 이틀간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2019 해외 유학·이민 박람회’는 때아닌 호황을 누렸다. 이주 전문업체 국민이주 관계자는 “이번 상담 건수는 지난해 가을에 열린 박람회 대비 77% 정도 늘었다”며 “미세먼지가 생활의 질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 느끼게 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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