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잉 추락 사고 계기로 ‘항공굴기’ 노리는 중국
  • 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4.03 16:00
  • 호수 153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美 ‘B737 맥스8’ 추락 이후 中 ‘C919’ 부상
중국산 여객기에 대한 불신 해소에 주력

3월 상순 중국 베이징에서 개최됐던 전국인민대표대회 기간 중 한 참석자가 돌연 주목을 받았다. 중국상용항공기공사(COMAC) 부사장인 우광후이(吳光輝)였다. 3월14일 우 부사장은 쇄도하는 중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음처럼 자신 있게 말했다. “현재 시험비행 중인 ‘C919’는 예정대로 2021년에 고객에게 인도될 것이다. 그 뒤 중국 항공기 산업클러스터는 거대한 수익원을 갖게 된다.” C919는 우 부사장이 총설계사로 개발하는 중국산 중형 여객기다.

중국 언론이 C919에 주목했던 이유는 미국 보잉사의 ‘B737 맥스8’이 잇따른 추락 사고로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C919는 최대 190석의 단일 통로형 여객기다. 최대 210석인 B737 맥스8보다 길이가 약간 작을 뿐 폭은 같다. 또한 5555km인 최대 항속거리, 마하 0.8인 최고 속력, 7만7300kg인 최대 이륙중량 등의 스펙이 조금 뒤처질 뿐이다. 3월22일 일본의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보잉기의 추락 사고가 중국산 여객기에 도약의 날개를 달아주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최대 수혜자로 B737 맥스8의 경쟁 기종인 C919를 손꼽았다.

C919는 보잉과 에어버스가 양분한 중형 여객기 시장 판도를 뒤엎기 위해 중국 정부가 중장기 국책사업 중 하나로 시작했다. 지난해 말까지 ‘코맥’(중국상용항공기공사)은 800여 대의 C919를 사전주문 받았다. 구매는 에어차이나(國航)·동방항공·남방항공·하이난(海南)항공 등 중국 4대 항공사가 주도했다. 하지만 28개사의 고객 리스트에는 글로벌 항공기 임대업체 지카스를 포함해 서구의 저가항공사(LCC)와 개발도상국 항공사가 다수 포함됐다. 왜냐하면 C919의 가격이 보잉과 에어버스의 경쟁 기종보다 저렴하기 때문이다. 우 부사장은 “올해 유럽항공안전청에 C919의 운항허가 심사를 신청한 상태”라고 밝혔다.

3월10일 에티오피아항공 소속 B737 맥스8 여객기가 추락하자마자 중국의 행보는 흥미로웠다. 사고 후 20시간도 안 돼 자국 항공사들이 보유한 같은 기종의 여객기 96대를 운항금지 조치한 것이다. 이는 B737 맥스8을 보유한 국가 가운데 가장 빠른 결정이었다. 결국 다른 나라들도 줄지어 운항금지 대열에 동참했고, 미국도 3월13일 합류했다. 중국의 이런 발 빠른 조치는 이례적이었다. 뉴욕타임스조차 “중국이 보잉기 추락 사고 이후 자국의 항공 안전을 믿어도 좋다고 강조한다”는 기사를 내며 호평했다.

중국상용항공기공사(COMAC)의 상업용 여객기 C919 ⓒ PIC 연합
중국상용항공기공사(COMAC)의 상업용 여객기 C919 ⓒ PIC 연합

중국, 가장 빨리 ‘B737 맥스8’ 운항 금지시켜

금세기 초까지 중국에서는 항공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났다. 특히 1992년부터 1994년까지 7건의 여객기 추락 사고가 발생해 492명이 목숨을 잃었다. 2000년 6월에는 언스(恩施)에서 우한(武漢)으로 가던 우한항공의 ‘윈(運)-7’이 추락했다. 윈-7을 개량해 개발한 ‘선저우(新舟)-60’도 크고 작은 사고를 일으켰다. 그로 인해 수출했던 57대 중 26대는 안전 우려와 정비 문제로 오랫동안 격납고 신세를 졌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울삼아 중국은 미국 연방항공청(FAA)을 룰모델로 엄격한 항공 안전대책을 시행했다. 그 덕분에 2010년 이래 중국에서는 큰 항공 사고가 발생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중국산 여객기에 대한 불신은 해소하지 못했다. 중국 4대 항공사들조차 자국산 여객기의 구매를 꺼릴 정도였다. 사실 중국은 2005년부터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의 상업용 여객기 구매국으로 올라섰다. 하지만 구입한 항공기는 대부분 보잉과 에어버스의 중대형 여객기였다. 이는 급속한 경제성장과 개인소득의 향상에 따라 여객기 이용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전문 조사기관에 따르면, 향후 20년 동안 중국은 최대 8575대의 신규 여객기 수요가 발생한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1조2000억 달러(약 1361조4000억원)에 달한다.

중국 정부 입장에서 이런 현실을 마냥 두고 볼 순 없었다. 그래서 중소형 여객기 개발에 들어갔다. 그 첫 성과물이 ‘ARJ21’이었다. ARJ21은 최대 90석의 좌석, 3700km인 최대 항속거리, 마하 0.78인 최고 속력, 4만3500kg인 최대 이륙중량 등의 소형 여객기다. 2008년 11월 첫 시험비행에 성공했고, 2015년 11월에 첫 상업 운항을 시작했다. C919는 코맥이 ARJ21에 뒤이어 낳은 두 번째 ‘옥동자’다. ARJ21과 C919의 긴 시험비행 기간에서 볼 수 있듯이, 중국은 세계 항공업계가 가진 자국산 여객기의 안전성 의구심을 불식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C919의 초기 설계부터 시제기 제작, 시험비행 과정까지 전모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를 국영 CCTV에서 수시로 방송하고 있다. 여기에는 자체 개발한 ‘윈-20’이 가세했다. 윈-20은 군용기로도 대량 생산됐던 윈-7의 악몽을 씻고자 중국이 야심 차게 개발한 전략수송기다. 7800km인 최대 항속거리, 시속 920km인 최고 속력, 66톤인 최대 적재중량을 갖추었다. 지난해 7월 CCTV는 윈-20의 설계부터 시험비행을 담은 다큐 5부작을 방송했다. 중국이 전략병기의 제작 과정을 대외에 공개한 것은 아주 이례적이었다.


美 항공기 엔진 제조업체의 협력도 관건

이를 두고 일부 중화권 매체는 “남중국해의 패권을 두고 다투는 미국을 겨냥한 행보”라고 보도했다. 전략수송기는 분쟁지역에 신속하게 병력과 장비를 나를 수 있다. 대륙과 거리가 먼 난사군도(南沙群島)에 물자를 수송하는 데 적합하다. 또한 중국은 윈-20을 공중급유기로 개조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현재 폭격기를 개조한 ‘훙요우(轟油)-6’이 있으나, 최대 항속거리는 5600km, 적재중량은 18.5톤에 불과하다. 공중급유기로 윈-20이 남중국해에 투입되면, 최첨단 전투기 ‘젠(殲)-20’이 난사군도에서 자유롭게 비행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의 이런 행보는 대내외적으로 ‘성능이 뛰어나고 안전한 항공기를 생산한다’는 인식을 심어주려는 의도가 크다. ‘항공굴기(崛起)’의 관건이 첨단기술과 안전성에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의 야심이 마냥 순조롭게 진행되는 건 아니다. 지난해 3월 C919 시제기에 문제가 발생해 반년 가까이 시험비행이 중단됐었다. 미·중 무역분쟁 이후에는 미국 항공기 엔진 제조업체의 협력도 시원치 않다. 중국이 기술적 어려움을 딛고 보잉기 추락 사고라는 호재를 잡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