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도 실패한 새벽배송 한국선 일상이 되다
  • 유재철 시사저널e. 기자 (yjc@sisajournal-e.com)
  • 승인 2019.04.04 13:00
  • 호수 153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켓컬리 성공, 유통업계 뜨거운 감자 부상…대기업들도 앞다퉈 가세

박진경씨는 과거 전자상거래가 처음 생겼을 당시 결제는 물론 택배로 물건을 받는 게 어색해 오프라인 장터의 직거래를 이용했다. 불편한 것이 많고 익숙하지 않아서였다. 내 소중한 물건이 안전히 나에게 올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물론 있었다. 그러던 박씨는 이제 퇴근 후 저녁 10시가 되면 떨어진 식재료를 모바일로 주문하고, 다음 날 이른 아침 집 앞에 놓인 택배를 확인하는 일이 일상이 돼 버렸다.

한 번 주문하면 2~3일 걸리던 택배는 ‘당일’ 배송에서 이제 ‘2~3시간’ 배송으로 점점 호흡이 가빠지고 있다. 늦어야 오후 5시까지 받던 주문도 최대 밤 12시까지 늘었다. 이렇게 주문을 넣으면 몇 시간 후 집 앞에 상품이 도착한다. 미국 아마존도 성공하지 못한 ‘새벽배송’이 한국에선 당연한 일상이 됐다.

ⓒ 일러스트 정찬동
ⓒ 일러스트 정찬동

“배송 is 뭔들” 신선식품 배송 전쟁

새벽배송은 국내 스타트업계가 가장 먼저 도전장을 내밀었다. 샐러드, 과일 등 상하기 쉬운 신선식품을 좀 더 빨리 받고 싶은 고객의 니즈와 스타트업의 과감한 실험정신이 절묘하게 만나 결국 열매를 맺은 것이다. 새벽배송은 소비자들로부터 큰 반향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했다.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동네 마트조차 가기 버거운 일상에 오아시스와 같았다. 새벽배송에 뛰어드는 스타트업이 점점 늘어나면서 주문 가능 상품 가짓수가 많아졌고 배송도 안전하고 빨라졌다. 직장인 송지우씨는 “솔직히 가격이 싼 편은 아니지만 새벽배송으로 채소나 과일 등을 신선하게 먹을 수 있어 편하다. 이젠 익숙해져 자주 이용한다”고 말했다.  

새벽배송이 대세로 자리매김한 데는 무엇보다 신선식품 스타트업 ‘마켓컬리’의 공이 크다. 4년 전 첫 서비스를 시작한 마켓컬리는 밤 11시까지만 주문하면 다음 날 아침 7시 전까지 상품을 집으로 배달했다. 상하기 쉬운 신선식품을 배달하는 것 자체도 생소했지만 초고속 배송은 소비자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입소문은 순식간에 퍼졌다. 매출도 무섭게 치고 올라왔다. 마켓컬리는 2016년 173억원, 2017년 465억원, 2018년에는 1500억원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파악된다.

마켓컬리는 단숨에 유통업계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마켓컬리의 시장가치가 2000억원에서 최대 4000억원에 달한다는 분석이 IB업계에서 나왔다. 카카오와 사모펀드(PEF)의 마켓컬리 인수설은 그만큼 새벽배송 시장이 미래 먹거리로 인정받기에 충분하다는 사인인 것이다. 

스타트업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새벽배송 사업에 대기업들도 앞다퉈 진출하고 있다. 새벽배송이 온라인 전성시대를 다시 한번 이끌 만큼 시장에 큰 충격파를 던졌다고 인정한 셈이다. 마켓컬리의 성장을 본 기존 유통 강자들도 부산해졌다. 이마트와 롯데슈퍼, GS리테일 등이 이 시장에 발 벗고 뛰어들었다. 

이마트는 지난해 5월 온라인 새벽배송 ‘쓱배송 굿모닝’을 시작했다. 쓱배송 굿모닝은 이마트몰을 통해 전날 오후 6시까지 주문하면 다음 날 오전 6~9시 혹은 오전 7~10시 두 가지 시간대에 상품을 받을 수 있다. 롯데마트와 롯데슈퍼도 서울과 부산 등 광역시를 중심으로 새벽배송인 롯데프레시를 선보였고, GS리테일은 ‘GS프레시’라는 새벽배송을 서울과 경기 일부(분당, 일산, 부천) 지역에서 시행하고 있다.

새벽배송이 이렇게 주목받는 것은 대형마트의 성장세가 멈춘 영향도 있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대형마트는 온라인과 편의점에 고객을 빼앗겨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이제는 생존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특히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라 영업시간 제한, 의무휴일 지정 등 각종 규제로 인해 대형마트의 위기감은 그 어느 때보다 큰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새벽배송’이 생존의 기로에 놓여 있는 대형마트의 마지막 몸부림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대형마트에 가지 않고도 빠르고 품질 좋은 상품을 받아볼 수 있다면 ‘메이저 브랜드’에 익숙한 소비자들에게 충분히 어필할 수 있다고 업계는 관측하고 있다. 

실제 이마트몰의 성장세를 보면 소비자들의 선호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지난해 이마트의 오프라인 매장 매출은 전년 대비 3.1%에 그친 반면, 이마트몰은 25.2% 증가했다. 이마트몰의 매출도 사상 첫 1조원을 돌파한 1조504억원을 기록했다. 업계 관계자는 “이제 버티는 것조차 버거운 대형마트들이 새벽배송마저 실패하면 정말 문을 닫아야 하는 지경”이라며 “새벽배송에 사활을 걸고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 출혈경쟁으로 중소기업 부담 가중

업체 간 출혈경쟁은 우려할 만한 수준까지 이르렀다. 배달앱업체 우아한형제들의 자회사 우아한신선들은 지난 2월말을 기점으로 ‘배민찬’ 서비스를 중단했다. 우아한형제들은 2015년 국내 최초 신선식품 새벽배송 스타트업 덤앤더머스를 인수해 배민프레시로 개편했고, 지난해 9월에는 반찬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했다. 이때 브랜드명도 ‘배민찬’으로 변경했다. 그러나 최근 유통업계에 ‘새벽배송’ 바람이 불면서 출혈경쟁이 심화됐다. 우아한형제들은 반찬 배송 서비스를 배달의민족에 흡수·통합해 사업 효율성을 높이기로 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막강한 자금력과 마케팅으로 단숨에 시장점유율을 올릴 수 있는 대기업의 새벽배송 진출로 고유의 브랜드 파워나 영업력 없는 중소업체들은 시장에서 살아남기 힘들게 됐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의 신선식품 새벽배송은 앞서 미국 아마존이 뚫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었다. 아마존은 지난 2007년 연회비 299달러를 내면 신선식품을 바로 집 앞까지 배송해 주는 사업(아마존 프레시)을 시작했지만 제대로 해 보지도 못하고 접었다. 이후 2017년 10월 이번에는 집 안까지 물건을 배달하는 ‘인-홈 딜리버리(In-Home Delivery)’를 도입했지만 보안 문제 등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