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이 사라진다’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4.04 15:00
  • 호수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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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영의 경제 바로읽기] ‘축소에 대한 인정’이 우선…지자체 간 통합 적극 추진돼야

지방의 인구 감소를 넘어 지방 소멸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낯설게 들리지 않는다. 저출산·고령화 추세와 대도시 및 수도권으로의 인구 유출이 지속되면서 지방 축소는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는 이런 변화를 피상적으로만 인식하고 있을 뿐 구체적 적응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의지와 노력으로 인구 감소 추세를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이를 위해서는 더 많은 예산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더 호응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인구 감소는 전국적인 단위로 나타나고 있지는 않지만, 이미 지역별로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2016년 국토연구원 연구 결과에 따르면, 태백·공주·정읍·남원·김제·영주·영천·상주·밀양·동해·익산·여수·경주·삼척·보령·논산·나주·김천·안동·문경 등 21개 도시가 인구를 비롯한 여러 가지 측면에서 ‘축소도시’로 분류됐다. 인구 감소는 그 자체로 다가오기보다는 빈집 증가, 시가지 공동화 등 물리적 변화를 통해 체감된다. 

인구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각 지자체들은 통합 시도에 나섰지만, 실제 통합까지 성공한 건 마산·진해·창원과 청주·청원 딱 두 곳에 불과하다. ⓒ 연합뉴스
인구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각 지자체들은 통합 시도에 나섰지만, 실제 통합까지 성공한 건 마산·진해·창원과 청주·청원 딱 두 곳에 불과하다. ⓒ 연합뉴스

‘축소에 대한 인정’ 거부하는 지자체

1995년 전국적으로 3만6000호를 기록했던 빈집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해 2015년에 100만 호를 넘어섰다.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공동주택의 공실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학생 수 부족으로 문을 닫는 폐교 역시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2010년 3386개이던 폐교 수는 2018년 3752개로 증가했다. 물리적 환경 변화와 더불어 이용인구 감소로 인해 문화시설이나 체육시설 등 공공시설 운영에 따른 적자는 확대되고 있다. 하수처리장 등의 경우 일정 수준 이상의 오폐수 발생을 전제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인구 감소로 인한 오염물질 발생량 저하는 시설의 효율성을 저하시킴으로써 더 많은 환경오염을 가져올 수도 있다. 과거 인구 증가를 전제로 만들어진 모든 SOC의 효율 저하와 유지비용 증가는 필연적이다. 

유휴·방치 부동산이 증가할수록 거주민들은 사회적 불안정과 불안감을 느끼게 되고, 이런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지역 주민들은 기초생활서비스 이용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인구 감소가 발생할 경우 지자체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 가장 먼저 할 일은 줄어드는 인구에 맞춰 각종 시설을 재배치하고, 도시계획을 비롯한 각종 계획과 행정체계를 수정하는 것일 것이다. 인구가 증가하던 시절에 당연하게 생각하던 외곽으로의 확대 역시 강력히 제한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지자체들 가운데 이러한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는 곳은 없다. 

많은 지자체들은 여전히 외곽지역에 새로운 주거단지를 건설하거나 각종 개발행위를 적극 허용하고 있다. 장래 인구가 감소할 것으로 전망하고, 이에 따른 도시계획을 수립하는 지자체는 거의 없다. 과거 지정했던 시가화 예정지 가운데 아직까지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은 곳을 보전용지로 지정하는 등의 적극적 조치를 취한 사례 역시 매우 드물게 나타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인구 감소를 공무원 조직의 위기로만 간주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지난 2월 경북 상주시는 10만 명 이하로 인구가 감소하자 모든 공무원이 상복을 입고 근무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상주시는 인구 10만 명 이하로 감소한 후 2년간 회복하지 못하면 실·국이 1개 줄어들고, 부시장 직급이 3급에서 4급으로 내려가는 것이 큰 문제라고 이야기하면서 정작 이로 인해 시민들이 겪을 수 있는 불편함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전체 공무원 가운데 1% 미만인 10여 명 내외의 4급 서기관 이상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를 지자체 전체의 문제인 것처럼 인식하는 것이 우리나라 지자체의 현실이다. 

전 세계적으로 대도시의 지속적인 성장, 중소도시의 축소와 몰락은 광범위하게 발생하는 현상이다. 많은 도시들은 이러한 추세를 되돌리기 위해 노력했으나 결국 과거로의 회귀는 불가능함을 인정하고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자동차 산업 중심지로 이름을 날리던 미국 디트로이트시의 경우 1950년 185만 명이던 인구가 2018년 68만 명까지 감소했다. 이 과정에서 디트로이트시는 기업 유치를 위해 세금 감면 혜택을 부여하고 도시 재활성화를 위해 건물 신축, 경전철 개통 등의 투자를 시행했으나 결국 2013년 파산을 선언했다. 이후 디트로이트시는 시민 참여를 통해 축소되는 도시의 현실을 인정하고 투자 억제지역 선정, 도시 서비스 전달체계 재편, 방치된 주택 철거와 토지 용도전환 등을 통해 남아 있는 주민들이 안정된 환경에서 거주할 수 있도록 도시계획을 전환했다. 

독일의 경우 통일 이후 충분한 검토 없이 동독 지역 재건을 위한 투자를 확대하면서 기존 도시 외곽에 신규 주택단지들이 건설됐다. 이로 인해 2000년대 들어 기존 도심의 공동화가 가속화됐으며, 100만 호 이상의 공실 발생으로 인해 건설업체 파산과 주택시장 붕괴가 일어났다. 이에 독일 연방정부는 기존 주택 철거를 위해 보조금을 지급하는 극약 처방으로 공실률을 낮추고 주택시장을 안정화시켰으며, 라이프치히를 비롯한 지자체는 철거 이후 발생한 토지의 효과적 사용을 위해 다양한 파트너십을 형성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인구 감소와 도시 축소의 속도는 늦춰졌으며 무엇보다도 시민들 삶의 질 유지, 그리고 미래에 대한 대비가 가능하게 됐다. 

비교적 성공적으로 축소지향적 도시전략을 추진하는 도시들은 시민의 참여와 공감대 형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했으며, 다양한 협력적 거버넌스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축소지향적 도시전략 추진하는 해외 도시들

축소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축소에 대한 인정’이다. 사람이 청년기를 거쳐 노년을 맞이하듯이 도시 역시 이러한 경로를 걷게 되는 것은 불가피한 면이 있다. 억지로 과거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는 축소를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시민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인접 지자체 간 통합 역시 적극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앞서 언급한 상주시가 인접한 문경시와 통합할 경우 인구는 17만 명, 예산은 1조5000억원 규모의 지자체가 될 수 있다. 지역 간 소(小)이기주의에서 탈피해 시민들에게 더 많은 혜택과 편의를 제공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기존의 광역-기초로 연결되는 행정체계를 인구 100만 명 단위의 단일화된 체계로 개편해 효율을 높여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축소되는 도시에 대한 적응과 준비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이 관(官) 주도의 일방적 계획과 시행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 축소되는 도시에 남아 있는 시민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더 많은 혜택과 편의를 제공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고민해야만 한다. 기존의 방식을 탈피하고, 고정관념을 깨는 것에서부터 올바른 적응은 시작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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