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왜 환자와 눈을 마주치지 않을까
  • 유재욱 유재욱재활의학과의원 원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4.07 15:00
  • 호수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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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욱의 생활건강] 의무기록·진단 결과만 중시하는 풍조 때문

영화 《우아한 세계》에서 인구(송강호 분)는 기러기 아빠가 된 조폭의 일상을 실감 나게 연기했다. 캐나다에 유학 간 가족에게 돈 부쳐대기에 바쁜 인구는 어느 날 컨디션이 안 좋아 병원을 찾았다가 당뇨병 진단을 받는다. 의사는 환자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컴퓨터 화면만 쳐다보면서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한다. “당뇨 오셨네요. 2주 치 약 처방해 드릴게요. 나가시면 간호사가 설명해 드릴 거예요.” 인구는 아무 설명 없이 나가라고 하는 의사에게 서운해서 한마디 한다. “이 양반아, 당신이 의사잖아~ 내가 간호사 만나러 왔어? 당뇨가 감기야?” 

우리가 현실에서 너무 자주 경험하는 일이라 씁쓸하다. 환자의 가장 큰 불만 중 하나는 의사가 환자를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료 행위도 결국 환자와 의사 간 소통인데, 의사가 환자에게 눈길도 안 주고 컴퓨터만 쳐다보고 있으니 답답하다.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첫 번째, 종이 차트가 없어져서다. 대부분의 병원에서는 전자 차트를 사용한다. 자료들이 전산화돼 과거 의무기록은 물론 엑스레이나 피검사 결과도 컴퓨터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환자에 대한 모든 정보가 컴퓨터 안에 있으니 아무래도 환자는 안 쳐다보고 자꾸 컴퓨터만 보게 된다. 또 의사가 하는 말과 행위는 모두 차트에 기록돼야 한다. 만약 환자를 쳐다보느라 의무기록을 작성하는 것을 등한시했다가는 봉변을 당할 수 있다. 법은 차트 기록만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의무기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환자가 낫는 것이 중요한데 주객전도(主客顚倒) 된 상황이다. 

두 번째, 요즘 의사는 시진(視診)을 하는 데 인색하다. 과거 의사가 환자를 진단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문진(問診)과 시진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여러 가지 첨단진단기가 발달해 환자를 보지 않고도 어느 정도 진단이 가능해졌다. 진단 결과는 컴퓨터 화면에 나오기 때문에 환자보다는 컴퓨터를 쳐다본다. 하지만 이것 말고 법적인 문제도 발목을 잡는다. 만약 의사가 소신대로 문진과 시진만 믿고 MRI 검사를 하지 않았다가 의료사고가 나면 모든 책임은 의사가 감당해야 한다. 반면 MRI 검사를 했다면 최선의 진료를 했다고 간주하는 경우가 많다. 시진과 문진 등 의사가 환자를 보면서 할 수 있는 진단기법의 활용은 위축되고 고가의 검사들이 남발될 수 있는 환경이다. 

한 의사가 컴퓨터 모니터를 보며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한 의사가 컴퓨터 모니터를 보며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신뢰감 형성돼야 치료도 잘된다

그럼에도 의사는 환자를 반드시 관찰하고 만져봐야 한다. 의사가 환자를 오랫동안 진료하면 더 정확한 진단을 할 수 있고, 필요 없는 검사나 치료를 줄일 수 있다. 실제로 조사에 따르면, 15분 진료를 한 결과 기존의 3분 진료를 한 군에 비해 검사 개수가 21% 줄어들고 처방 약은 57% 감소했다. 진료비가 23%나 줄어든 것은 당연한 결과다. 물론 여러 가지 절차와 행정적인 문제가 남아 있지만, ‘환자의 건강을 위한다’는 대의(大義)를 가지고 공감대를 형성해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라포(rapport)’라는 말이 있다. 환자와 의사 사이에 맺어지는 깊은 신뢰감을 말한다. 라포가 깊게 형성되어야만 치료 결과도 좋아지는 것은 자명하다. 만약 객관적인 자료에만 의존해 컴퓨터만 쳐다보고 환자를 쳐다보지 않다가는 언제 AI(인공지능)가 의사를 대치하게 될지 모른다.  

의학은 사람을 고치는 학문으로 과학의 영역이고, 의술은 아픈 사람을 치유하는 예술의 경지다. 의사는 의학을 배웠지만 결국은 의술을 행하는 사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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