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 세대] 꼰대, ‘밀레니얼 세대’ 이해해야 산다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19.04.08 08:00
  • 호수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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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어느 별에서 왔니 ‘신인류 밀레니얼 세대 사용설명서’

아침 8시58분. ‘아슬아슬하게 세이프’다. 그런데 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히는 기분이다. 저만치 부장님의 도끼눈이 들어온다. 상관없다. 정시 출근보다 무려 2분이나 먼저 왔으니. 막내의 기본을 다할 때다. 월요일 오전 회의 자료를 출력하고 회의실을 세팅했다. 팀장님 발표에 대한 피드백을 스마트폰으로 바로 사내 클라우드에 정리해 올렸다. 부장님이 왠지 나를 계속 거슬려 하는 눈치인데 이유를 모르겠다. 부장님은 분명 아침엔 ‘해장용’ 따뜻한 아메리카노가 맞는데. 행복한 점심시간이다. 샐러드 도시락을 꺼내고 유튜브를 켰다. 부장님이 뭐라 하시며 지나간 것 같은데 이어폰을 껴서 잘 안 들렸다. 오후엔 곧 있을 회계감사 자료 정리를 명받았다. 엑셀 만든 사람은 노벨상 줘야 한다. 다행히 퇴근시간 전까지 마감했다. 단체 카톡방에 정리한 파일을 올리고 18시에 정시 퇴근을 했다. 

7시 정각. 청소 어머니께서 오늘도 반갑게 맞아주신다. 컴퓨터를 켜고 오전 회의 자료를 다시 한번 점검한다. 부실한 막내 아이템을 부장인 내가 직접 보강한다. 오늘은 꼭 한소리를 해야겠다. 그런데 막내가 꼴등으로 출근한다. 우리 땐 월요일 회의엔 1시간은 먼저 왔는데. 회의를 하는데 막내는 계속 휴대폰을 한다. 회의를 하는 건지 애인과 연락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요즘 애들은 집중력도 예의도 낙제점이다. 점심시간이다. 그래, 밥이라도 사주면서 좋게 말해야지 했는데 식사는 혼자 하신단다. 대체 조직생활을 뭐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오후도 긴장의 연속이다. 곧 회계감사가 있다. 업무배분을 했다. 감사 때까진 검토의 연속이다. 당연히 야근이다. 그런데 막내가 18시가 되자 옷을 주섬주섬 입는다. 자기 일을 다 했으니 퇴근이란다. 기가 막힌다. 우리 아이도 밖에서 저럴까 겁이 났다. 

2019년 대한민국 일터에선 매일 ‘빅뱅(대폭발)’이 일어난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라고 발칙하게 외치는 신인류가 직장으로 ‘침투’하고 있다. 기성세대의 사고체계와 그간의 경험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문제는 그들이 누구인지, 새로운 세대가 등장한 의미가 무엇인지 미처 알기도 전에 이들이 조직의 중요 부분을 차지하고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밀레니얼 세대(Millennials)’의 등장이다. 

전문가마다 정의가 조금씩 다르지만 밀레니얼 세대는 대략 1980년대 중반부터 2000년까지의 기간에 태어난 이들을 일컫는다. 밀레니얼 세대에 이어 Z세대가 등장했다는 분석도 있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2010년까지의 출생자로 분류되는 이들은 밀레니얼 세대와 상당 부분 비슷한 정서와 행태를 공유하면서도 분명히 다른 성향과 행동패턴을 보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언제나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를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는 데 어려움을 느꼈지만, 유독 밀레니얼 세대가 도드라지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앞선 세대와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성장한 이유가 크다. 

ⓒ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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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세대를 ‘꼰대’로 만들다

우선 이들은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s)’다. 태어나 보니 세상은 연결돼 있었다. 스마트폰은 신체의 일부와도 같다. ‘수평적 커뮤니케이션’과 ‘빠른 속도’에 익숙하고 ‘소유’만큼 ‘공유’에 익숙하다. 세계적인 경영전략가 돈 댑스콧은 디지털 네이티브인 밀레니얼 세대가 ‘자유’ ‘개성에 맞는 맞춤제작’ ‘철저한 조사능력’ ‘사회적 가치’ ‘협업’ ‘재미’ ‘속도’ ‘혁신’ 등의 가치를 중시한다고 분석한 바 있다.

반면 이들은 불안정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성장했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를 거치며 ‘저성장’이 ‘뉴노멀’이 된 세상 속에서 자란 것이다. 실용적이면서도 희소성에 열광하고 남들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밀레니얼 세대가 경제적 측면에서 갖는 복합적 사고가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밀레니얼 세대는 직장에서도 남다른 모습으로 기성세대들을 혼란케 한다. 이들은 뛰어난 컴퓨터 활용능력, 어학 실력과 협업 능력을 갖췄으면서 동시에 기존 질서에 저항한다. 조직보다 개인을 중시하며 조직과 대등한 관계임을 내세운다. 더 효율적인 업무방식이 위계 등에 가로막히면 ‘퇴사의 이유’가 된다. 그간의 업무·소통 방식에 안주하는 기성세대를 꼰대로 만들며 기존의 조직문화를 뒤흔드는 것이다. 

기성세대는 이들이 너무 낯설다. 성공이나 출세에는 도통 관심이 없는, 도무지 열정이 없는 모습인가 싶다가도 자신의 취향이나 주관은 고집스럽게 내세우며 쉽게 양보하지 않는다. 회사 업무에 대한 기본적 에티켓이나 개념이 없어 보이는데, 디지털 기술 등 새로운 변화에는 기가 막히게 적응하며 앞서간다. 연애와 결혼, 출산 등을 포기한 ‘N포 세대’라고 스스로를 일컬으면서 왜 그토록 사표를 쉽게 던지는지, 어째서 해외여행은 그토록 자주 가는지 기성세대는 이해하기 어렵다. 

기성세대를 혼란스럽게 하는 밀레니얼 세대에 대한 연구는 최근 세계적으로 많이 이뤄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관련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하지만 소비 주체, 즉 고객으로서의 밀레니얼 세대를 분석하려는 작업은 진척이 있는 반면 기업과 조직의 구성원으로서의 밀레니얼 세대를 분석하는 작업은 그리 많지 않다. 사실 기업의 첫 번째 고객이 바로 신입사원인데도 말이다. 

최악의 취업난 속 신입사원 80% “이직 고려”

한국의 ‘밀레니얼 직장인’들은 지금 어떤 상황일까. 이들의 상황을 잘 보여주는 통계가 있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지난해 취업에 성공한 신입사원 67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신입사원 중 79.6%가 이직을 고려하거나 이직을 위한 구직 활동 중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악의 취업난 속 신입사원 5명 중 4명은 현재 직장이 불만족스러워 이직을 고려하고 있는 것이다. 

신입사원들이 이직을 고려하는 가장 큰 이유는 현 직장의 연봉에 대한 불만족(복수응답·55.6%)이다. 미흡한 복리후생 제도(38.6%), 성장할 수 없다는 불안감(30.1%), 업무에 대한 회의감(26.5%), 배울 점이 없는 직장 상사(24.3%) 등도 주된 이유를 차지했다. 반면 현 직장에 만족하는 가장 큰 이유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의 보장(47.2%)이었다. 직무에 대한 만족감(30.3%), 팀워크(22.1%) 등이 뒤를 이었다. 

이와 같은 통계가 의미하는 바는 뭘까. 왜 밀레니얼 세대는 임금, 복리후생과 같은 ‘가시적 보상’에 이토록 민감할까. 이은형 국민대 교수는 “그들의 성장배경을 살펴보면 몇 가지 이해할 근거가 있다”고 설명한다. 자존감이 강하고 개인주의적 성향이 뚜렷한 밀레니얼 세대는 회사와의 관계를 동등한 계약으로 파악하는 동시에 자신의 지식과 기술, 경험 등에 대한 걸맞은 보상을 당연하게 여긴다고 것이다. 또 이들은 콩 한 쪽도 나눠 먹고, 장남이 출세해 남은 가족을 부양해야 했던 베이비부머 세대와는 차원이 다른 풍족한 시대에 컸기 때문에, 원하는 걸 바로 얻기 원하는 특성이 크다. 

아울러 이들은 성장을 중시한다. 밀레니얼 세대는 조사에서 ‘자신이 성장할 수 있다고 느낄 때’와 ‘회사가 직원들에게 관심을 갖고 배려할 때’ 상당한 만족감을 느꼈다. 일을 통해 성장 가능한 근무환경이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무척 매력적인 것이다. ‘워라밸’은 필수다. 이들은 워라밸을 포기하고 임원, 최고경영자가 되는 것보다 행복한 만년과장을 꿈꾼다. 보장만 된다면 카페 주인 자리를 더 선호하는 게 밀레니얼 세대다. 수평적 의사소통, 취향 존중 등도 이들에겐 중요한 가치다.


밀레니얼 세대와 함께하는 직장생활 꿀팁

그렇다면 대체 직장에서 밀레니얼 세대를 춤추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 ‘선택의 자유’를 줘라

밀레니얼 세대는 스스로 한 선택에 더욱 큰 만족감을 느낀다. 물론 직장은 직장이다. 업종과 기업의 특성에 맞게 밀레니얼 세대에게 ‘선택의 자유’를 줘야 한다. 예를 들어 근무시간을 선택할 자유, 휴가를 선택할 자유, 복지혜택을 선택할 자유 등이다. 보상도 마찬가지다. 상사가 좋아하는 것으로 보상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 그들은 회식과 등산보다 공연 티켓이나 휴가 같은 즉각적인 보상에 더 반응할 것이다. 생각처럼 비용이 더 들지도 않는다. 오히려 개방적이고 투명한 의사결정을 통해 선택의 자유가 주어진다면 생산성을 더 높이는 등의 훨씬 나은 결과를 받아들 수 있다.

2. ‘왜’를 설명해 동기부여를 키워라

간편 송금 서비스 ‘토스’를 유니콘(기업 가치 10억 달러 이상인 비상장 스타트업) 반열에 올려놓은 비바리퍼블리카의 이승건 대표는 조직 구성원들을 춤추게 하려면 ‘동기부여’가 핵심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이 일이 왜 중요한지 충분히 공감시키고 그래서 동기부여가 충분히 될 때 일은 저절로 된다”는 설명이다. 노하우가 있다. 정보공유다. 이 대표는 정보공유를 통해 조직 구성원들이 주인의식을 갖게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회사에 현금은 얼마나 있는지, 매출액 추이는 어떻게 되는지 등부터 회사의 상황, 목표 달성 현황까지 실시간으로 공개하자 구성원들이 무엇을 더 열심히 해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알고 행동하게 됐다는 것이다.

3. 성장할 수 있음을 보여줘라

기업이 밀레니얼 세대에게 제공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기회는 일을 통한 성장이다. 그들은 인생 10모작 시대에 산다. 직장보다 직업이 중요한 세대다. 이들은 회사가 자신의 성장을 위해 다양한 교육과 훈련을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을 통해 성장하려면 조직이 상당히 높은 체계를 갖춰야만 가능하다. 직무설계는 합리적이고, 보고체계는 간결하고, 피드백은 즉각적이면서도 충실하고, 일하는 방식은 상호의존적이어서 협업이 잘돼야 한다. 

4. 공간을 재구성하고 업무를 재구축하라

직장이 즐거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밀레니얼 세대에겐 ‘재미’와 ‘의미’가 중요한 가치다. 이은형 국민대 교수는 기업의 공간을 새롭게 구성하고 일의 내용을 재구축할 것을 권한다. 공동작업 공간을 멋지게 만드는 것은 밀레니얼 세대에게 매력적이다. 직무기술서도 새로 써보는 게 좋다. 현재의 직무기술서가 과연 최선인지, 여기에 재미와 의미를 더하는 방법은 없는지 고민해 봐야 한다. 이 과정에 밀레니얼 세대의 참여와 수평적 커뮤니케이션, 실질적인 권한 부여는 필수다. 

5. 리더가 변해야 한다

밀레니얼 세대를 춤추게 하는 모든 과정은 리더의 관심과 실행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누구나 변화는 귀찮거나 두렵다. 조직도, 구성원도 언제나 하던 대로 하고 싶어 한다. 관성을 깨고, 변화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동인이 필요하다. 리더가 직접 그 변화를 이끌어야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 《88만원 세대》를 쓴 경제학자 우석훈씨는 “리더가 바뀌지 않으면 직장 민주주의는 오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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