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 세대] 최강 소비 권력, 소비지도도 바꿨다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19.04.08 08:00
  • 호수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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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 세대가 키운 유통·소비 시장

‘가성비’ ‘가심(心)비’를 넘어 ‘나(Me)심비’를 추구한다. 1인 가구 소비성향을 뜻하는 단어는 ‘1코노미’에서 ‘ME코노미’로 진화됐다. ‘포미(For Me)족’은 자신의 가치를 위해 소비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 트렌드를 보여주는 단어들이다. 밀레니얼 세대가 사회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면서 소비 권력의 핵심이 됐고, 기업들은 이들을 잡기 위해 다양한 마케팅을 선보이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가 만들어낸 신(新)소비지도. 과연 어떤 모습일까. 

ⓒ 일러스트 이승현
ⓒ 일러스트 이승현

■ 나나랜드에서, For Me 

영화 《라라랜드》의 제목을 패러디한 ‘나나랜드’라는 말이 있다. ‘나’가 세상의 중심인 밀레니얼 세대들이 사는 배경을 일컫는 말이다. 나나랜드의 밀레니얼 세대들은 자신의 색깔을 소비 스타일로 표현하는 데 익숙하다. 그래서 인기를 끄는 것이 ‘한정판’이다. 특히 패션업계가 협업해 내놓는 한정판은 브랜드에 새로운 이미지를 입힌 만큼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밀레니얼 세대를 적극적으로 공략했다.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가 ‘에어백스 97’ 상품 출시 20주년을 기념해 주얼리 브랜드 스와로브스키와 협업한 신발은 45만원의 고가임에도 하루 만에 완판됐고, 나이키 조던 시리즈 한정판은 백화점 오픈과 동시에 매진됐다.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과 스트리트 브랜드 슈프림이 콜라보한 한정판 제품도 품절 대란을 일으켰다. 펜디-휠라, JW앤더슨-유니클로 등 유명 브랜드가 SPA 브랜드나 스포츠 브랜드와 손잡고 내놓은 한정판에 밀레니얼 세대는 열광했다. 그렇게 구매한 한정판 사진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 계정에 해시태그를 달고 게시한다. 새로운 것 이상을 추구하는 밀레니얼 세대는 ‘레트로(Retro)’에도 주목한다. 일명 ‘복고’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뉴트로(New+tro) 현상을 ‘2019년 트렌드’로 꼽으면서 “단순히 과거 제품을 내놓는 것이 아닌 밀레니얼 세대의 감성을 건드리는 트렌드가 반영돼 있어야 한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그동안 기업들은 소비자 유형을 나이와 성별에 따라 정형화해 왔다. 그러나 밀레니얼 세대에게 이 같은 구분은 무의미하다. 성 역할과 획일화된 아름다움에서 벗어나 ‘나다움’을 쫓는 밀레니얼 세대의 예시로 ‘그루밍족(남성 중 치장이나 옷차림에 금전적으로 투자하는 사람)’을 들 수 있다. 과거 기성세대가 갖고 있는 편견과 달리 남성들도 뷰티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최근 20대 남성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6.4%가 ‘남성이 화장하거나 꾸미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실제로 전체 화장품 매출에서 남성 고객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2년 14%에서 2017년 22.5%까지 증가했다. 


■ 그럼에도, 착한 소비

마트에서 ‘갓뚜기 라면’을 고른다. 오뚜기는 시식 판매 직원도 정규직으로 고용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갑질 논란’이 있었던 남양유업의 유제품은 먹지 않는다. 대신 가맹점과의 상생 원칙을 지킨다는 이디야 커피를 마신다. 밀레니얼 세대들은 사회적 책임을 잘 수행하는 기업의 물건을 구매하는 것을 선호한다. 의견 표출을 어려워하던 기성세대와 달리, ‘나’의 뜻을 소비로 드러내는 데 주저함이 없다. 컨슈머 오블리주(Consumer Oblige)라는 단어도 등장했다. 

사회적 신념을 패션 소품에 투영하기도 한다. 위안부 할머니를 후원하는 마리몬드 가방을 구매해 사용하고, 한 켤레의 신발을 구매할 때마다 아프리카 어린이에게 신발을 선물한다는 탐스 슈즈를 신는 것도 그 예다. 어차피 소비를 할 것이라면, 가치에 맞거나 사회에 의미 있는 소비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동물복지와 환경을 고려한 ‘착한 소비’도 새로운 세대의 소비성향을 보여준다. ‘에코 퍼(eco pur)’는 기성세대에게는 ‘싸구려 털옷’이었다. 그러나 모피 채취 과정이 유튜브 등을 통해 공유되면서, 에코 퍼가 새로운 소비층 사이에서도 떠오르기 시작했다. 패션업계의 지각변동을 가져왔음은 당연하다. 2017년에는 명품 브랜드 구찌가 동물과 환경 보호를 위해 리얼 퍼 제품을 생산하지 않겠다고 공언했고, 스텔라 매카트니, 아르마니 등 브랜드도 모피 사용 중단을 선언했다.


■ 연예인보다 ‘유튜버’를 믿는다

경험을 공유하는 문화는 밀레니얼 세대에게 익숙하다. 먹고, 여행을 떠나고, 감정을 드러내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쇼핑을 구상하고, 물품을 사고, 사용하는 것까지도 학습하고 공유한다. SNS와 유튜브를 통해서다. 연예인이 등장하는 TV 광고를 통해 제품을 접하던 기성세대와 달리, 밀레니얼 세대들은 진정성이 있다고 판단하는 인플루언서(유튜버 등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들)를 믿는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15~34세 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연예인보다 1인 유튜버를 신뢰한다는 반응은 뷰티 부문에서 73.4%, 패션 부문에서 63.3%, IT 전자기기 부문에서 86.9%에 달했다. 인플루언서들을 영입하거나 그들과 협업에 나서는 유통업계의 움직임이 점차 두드러지고 있는 이유다. 김익성 한국유통학회장은 “밀레니얼 세대들이 원하는 소비를 보여주는 인플루언서의 문화적 영향력은 매우 크다. 기업도 이들과의 협업을 통해 제품을 광고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 신조어와 B급으로 들어간 ‘그들만의 세상’

유통업계가 신조어를 활용한 언어 파괴 마케팅을 펼친 것 역시 밀레니얼 세대를 공략한 것이다. 자판으로 소통을 많이 하는 밀레니얼 세대는 기존 단어를 비슷하게 생긴 글자로 표현하는 데 익숙하다. ‘명작’을 ‘띵작’으로, ‘멍멍이’를 ‘댕댕이’로 표현한다. 새로운 콘텐츠와 낯선 경험을 요구하는 밀레니얼 세대는 이러한 마케팅에 폭발적으로 반응했다. 2016년 처음 선을 보인 ‘쓱’은 신세계그룹의 온라인 통합 신설법인 SSG닷컴에서 선보인 성공사례다. SSG를 한글로 표현한 ‘ㅅㅅㄱ’을 ‘쓱’으로 명명하고, TV와 온라인 광고 내에서 등장하는 대사의 모든 자음을 ㅅ과 ㄱ으로 바꿔 이슈 몰이를 했다. 팔도비빔면은 35주년 한정판 ‘괄도네넴띤’을 출시했고, 위메프는 ‘메뜨 가격 따괴 상뚬 총 출동’이라는 문구를 내걸었다. 패션기업 LF는 브랜드 영문명이 ‘냐’로 보인다는 데 착안해 ‘몰 좀 아냐’라는 광고로 색다른 이미지를 구축했다. 

광고도 밀레니얼 세대 공략을 위해 바꿨다. 짧은 시간 안에 흥미를 이끌어내는 ‘B급 광고’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LG생활건강의 ‘LG 빡치게 하는 노래’는 토요일 밤을 즐기려던 광고 제작자에게 갑자기 LG생활건강 마케팅 부서에서 연락이 와 영상을 주문했다는 내용으로, 마치 ‘그림판’으로 그린 것 같은 낮은 품질에 욕설도 가감 없이 등장한다. 세제 제품에 대한 설명은 30초도 채 안 된다. 이 영상은 유튜브에서만 조회 수 210만 회를 넘기며 호평을 받았다. ‘불토’에 일을 한다면 이렇게 반응할 것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다. ‘어른들의 브랜드’ 이미지를 고수했던 한국인삼공사의 홍삼 브랜드 정관장도 온라인몰 ‘정몰’의 B급 광고를 내놓았다. 퇴직하고 택배기사로 일하는 이종격투기 김동현 선수가 배달을 갈 때마다 ‘정말 건강에 미친 사람들’을 만난다는 내용으로 5일 만에 유튜브 조회 수 100만 건을 돌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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