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4월8일 별세하면서 그의 일대기가 주목 받고 있다. 조 회장의 다사다난했던 70년간 삶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네 가지 순간을 짚어봤다.
1. 대기업 총수 최초 경영권 박탈 ‘오명’
조 회장은 지난 3월27일 열린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 연임에 실패했다. 조 회장이 1999년 아버지 故조중훈 회장에 이어 대한항공 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른 지 20년 만에 주주들에 의해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게 된 것. 이로써 조 회장은 주주들의 주주권 행사로 대기업 총수가 경영권을 박탈당한 첫 사례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2. 못난 ‘아버지’의 대명사…가족들의 잇단 ‘갑질’
경영권 박탈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지기까지 조 회장 일가의 ‘갑질’ 사태가 있었다. 조양호 회장의 장녀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2014년 승무원의 마카다미아 제공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여객기를 공항으로 되돌렸다. 이를 계기로 조 전 부사장은 항공법 위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았고, 부사장직에서 사퇴했다.
4년 뒤, 조 회장의 차녀인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도 이른바 ‘물컵 갑질’ 의혹으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대한항공 광고대행사 지원에게 욕설과 함께 물컵을 집어던졌다는 것. 같은 해 조 회장의 부인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 역시 운전기사 등 직원들에게 폭행과 폭언을 일삼았던 행적이 폭로됐다.
조 회장도 총 270억원 규모의 횡령 및 배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이처럼 총수 일가의 잇단 비위 행위가 드러나자, 대한항공 직원들조차 ‘조양호 일가 퇴진’을 외치며 시위에 나섰다.
3. 대한항공 살린 ‘조양호 매직’
그러나 조 회장은 대한항공을 전세계적 항공사로 키워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7년 외환위기 때 항공기 27대를 구매하거나 2011년 9·11 테러로 항공산업이 침체기를 맞았을 때 공격적 투자를 단행하는 등 리더십을 발휘했다. 덕분에 대한항공은 창립 당시 8대뿐이던 항공기가 166대로 증가했다. 여객 운항 횟수는 154배 증가했으며, 매출액은 3500배, 자산은 2480배 늘었다.
다만 조 회장이 한진그룹의 계열사 중 하나인 한진해운을 살리진 못했다. 한진해운은 해운업 위기의 여파로 경영난에 시달리다 2조2000억원에 달하는 그룹 차원의 지원금을 받았지만 결국 2017년 파산했다.
4. 최순실이 촉발한 조양호의 몰락?
당시 한진해운이 채권단의 추가지원을 받지 못한 것을 두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실세로 지목된 최순실씨의 눈 밖에 났기 때문이란 풍문이 돌기도 했다. 또 조 회장은 지난 2016년 당시 급작스레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 자리에서 사퇴했는데, 이를 두고 정치권 일각에선 “조 회장이 최순실이 주도한 K스포츠재단에 기금을 내놓지 않아 미운털이 박혔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에 대해 조 회장은 당시 국회 청문회에 출석해 “최순실씨와 만난 적이 없고, 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난 건 임명권자의 뜻으로 생각한다”며 담담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