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으로 숨은 2000명의 ‘정준영’들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19.04.12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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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성 높은 텔레그램에 음란물 공유방 성행
대화방 참여자만 2000여 명…"정준영 사례 남 일 아냐"
불법촬영물 공유 부추기는 것도 교사죄로 처벌 가능

“야짤, 로리 시간 단위로 무한 공유할게요.”

직장인 전민수씨(32·가명)는 자신이 회원으로 있는 한 자동차카페 게시판에 올라온 한 댓글의 URL(인터넷주소)을 눌렀다가 깜짝 놀랐다. URL 옆엔 ‘10분 뒤에 폭파하는 텔레그렘 비밀의 방’이라고 적혀있었는데, 클릭하자 온갖 불법촬영물들이 실시간으로 공유되는 텔레그램 대화방으로 연결됐다. 대화방에는 총 300여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더 좋은 것을 올려 달라’ ‘희귀자료 곧 올리겠다’며 음담패설을 주고받고 있었다.

전씨는 “호기심으로 접속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대화방이 나와서 놀랐다”며 “텔레그램이 이런 식으로 오용되는지 처음 알게 됐는데 그 수위가 생각보다 셌다. 무엇보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불법촬영물을 돌려보고 있다는 사실이 경악스러웠다”고 전했다.

성관계 동영상을 불법적으로 촬영·유포한 혐의로 구속된 가수 정준영이 3월29일 서울 종로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와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성관계 동영상을 불법적으로 촬영·유포한 혐의로 구속된 가수 정준영이 3월29일 서울 종로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와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일상의 ‘정준영들’이 파놓은 채팅방

가수 정준영을 비롯한 유명 연예인의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 속 음란물에 대한 경찰의 수사가 가수 로이킴 소환을 끝으로 마무리 수순에 들어갔다. 경찰은 빅뱅 전 멤버 승리의 성접대 의혹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정준영이 불법 촬영한 성관계 몰카 동영상을 유포한 것을 발견하고 그를 구속했다. 경찰은 정준영이 불법촬영물을 유포한 대화방은 모두 23개, 참여자는 16명으로 파악하고 있다. 로이킴이 추가로 입건되면서 입건자는 총 8명으로 늘었다.

연예인들의 추악한 실상이 드러난 가운데, 일각에선 이 같은 ‘섹스링(sex ring·집단이 불법촬영물 등을 공유하며 놀이를 하듯 저지르는 범죄)’이 특정 집단이 아닌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취재결과 텔레그램과 같은 보안에 특화된 메신저를 중심으로 이 같은 섹스링 대화방만 십 수개 이상 개설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여기에 참여하고 있는 당사자만 최대 수천 명에 이른다.

정준영 사건으로 전국이 들썩이고 있던 지난 4월8일 시사저널과 만난 A씨는 자신이 참여하고 있는 텔레그램 ‘불법촬영물 공유 대화방’을 보여줬다. A씨가 참여하고 있는 텔레그램 대화방은 총 6개. 각 대화방마다 최소 200여 명에서 최대 500여 명에 이르는 참여자들이 실시간으로 음란물을 공유하고 있었다. 6개 대화방의 인원을 모두 합하면 2800여 명. 중복된 인원을 고려하더라도 적지 않은 수의 참여자들이 음란물을 돌려보고 있었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라온 '텔레그램 불법촬영물 대화방' 참여를 독려하는 한 게시글.  ⓒ시사저널 제보
한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라온 '텔레그램 불법촬영물 공유 대화방' 참여를 독려하는 게시글. ⓒ시사저널 제보

A씨가 보여준 한 대화방의 실상은 충격적이었다. 정준영처럼 직접 촬영한 불법촬영물이 공유되지는 않았지만, 해외에서 생산된 아동성범죄 영상 십 수개가 올라와 있었다. 대화방을 최초 개설한 것으로 보여 지는 이가 영상을 올릴 때마다, 대화방 참여자들은 ‘조금 더 센 것’ ‘다른 것’을 요구했고 때로는 ‘감사하다’며 불법촬영물 공유를 독려하기도 했다.

A씨는 “(불법촬영물이 공유되는)텔레그램 방의 초대 URL을 인터넷 게시판이나 댓글에 올려놓으면, 하루도 안 돼 수백 명이 대화방에 참여한다”며 “어차피 참여자들은 서로의 신분을 알 수도 없고 관심도 없다. 단지 더 센 수위의 영상이나 사진들을 받아보며 그냥 즐기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텔레그램은 특히 방에 처음 들어오더라도 다른 게시자들이 이전에 올렸던 영상물을 볼 수 있다. 반면 카카오톡의 경우 자신이 접속하기 전 공유물들은 확인할 수 없지 않나. 그래서 (보안 문제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텔레그램에 유난히 이런 방이 생겨나는 이유”라고 말했다.

A씨는 “가족들이 뉴스를 보면서 정준영이나 논란이 된 가수들을 욕하는데, 순간 부끄럽더라”며 “사실 나만해도 주위에 이런(불법촬영물 공유) 것을 죄책감 없이 하는 사람들이 많다. 범죄라고 느끼지 않았는데 이제는 더 이상 하면 안 될 것 같다”고 전했다. A씨는 이 날 기자 앞에서 6개의 텔레그램 방을 모두 나갔다.

 

텔레그램은 단속의 사각지대?…“처벌 가능해”

이 같은 실태가 드러나면서 정부도 부랴부랴 팔을 걷어붙였다. 여성가족부는 지난 4월1일부터 담당 경찰서 등과 협업해 ‘개방형 단체채팅방’을 통한 불법촬영 영상 유포를 집중 단속하고 있다. 2차 피해를 막자는 취지로 단속은 60일 동안 진행된다. 주요 점검 단속 대상은 공개된 단체채팅방 내 △불법촬영물 유포·공유 △성매매 조장·유인·권유·알선 △음란성 문구 유통 △불법정보 유통 등 사이버공간 내 성범죄와 여성폭력 등이다.

현행법상 불법촬영물을 유포하면 성폭력처벌법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게 된다. 허위사실 유포의 경우 징역 7년 이하 또는 벌금 5000만원 이하의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일각에선 텔레그램에서 음란물을 유포하면 처벌을 피할 수 있다는 속설도 흘러나온다. 텔레그램이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고, 메시지 암호화와 삭제 기능이 탁월해서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불법촬영물이 공유되는 텔레그램 대화방을 캡쳐한 사진이 존재한다면, 음란물 유포의 증거로 활용될 될 수 있다는 게 경찰 측 설명이다.

경찰 관계자는 “텔레그램을 사용해 음란물을 유포한 뒤 대화방을 삭제했더라도, 제3자가 당시 상황을 캡쳐해 놨다면 음란물 유포의 증거물로서 채택될 수 있다“며 “직접 음란물을 올리지 않았더라도 불법촬영물 등을 올리라고 부추기는 행위 역시 교사 또는 방조죄로 처벌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SNS 채팅방 등에서 불법촬영물 공유 행위를 발견한 경우 경찰청 사이버안전국 홈페이지나 모바일 사이버범죄신고 상담시스템에 신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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