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오염국④] “검거가 능사? 마약정책 방향부터 틀렸다”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19.04.15 08:00
  • 호수 153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뷰] 이범진 마약퇴치연구소장의 역설
“처벌만으로 마약 재발 못 막아…재활에 방점 찍어야”

마약은 더 이상 극소수 부유층 자제나 연예인 등 소위 ‘타락한 집단’만이 향유하는 약물이 아니다. 이미 우리 사회 전반에 확산되고 있다. 다만 유명인들이 매스컴에서 조명을 받고 있을 뿐이다. 정부와 검경이 부랴부랴 마약 단속 강화를 천명하고 나섰지만, 대마와 중독성이 강한 향정신성의약품 등을 포함한 마약류 유통 및 사용은 들불처럼 번져가고 있다. 그러자 마약류에 접근하는 당국의 정책 방향 자체가 잘못됐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국내 최고의 마약 전문가로 꼽히는 이범진 마약퇴치연구소장(아주대 약대 학장)은 “검거망을 강화하고 형량만 높여서는 마약 문제를 절대 해결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마약을 단순히 ‘강력범죄’로 치부하고, 마약사범 모두를 ‘죽일 놈’ 취급해서는 마약 문제의 미봉책만 양산하게 될 것이란 게 그의 생각이다. 시사저널은 4월10일 경기도 수원 아주대 약학대학 학장실에서 이 소장을 만나 국내 마약 문제의 진단과 처방을 들어봤다.

ⓒ 뉴시스
ⓒ 뉴시스

 

“마약스쿨 된 교도소…검거로는 한계 있어”

한국 사회가 마약으로 진통을 겪고 있다. 마약청정국은 이미  옛말이 됐다. 한국에 마약이 퍼지게 된 주원인은 무엇인가.

“사실 국내 마약 문제는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란 얘기다. 우리나라 마약사범의 경우 2015년부터 1만 명을 넘어 점차 증가하고 있다. 마약 전과가 있는 마약사범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SNS나 국제교류 등을 통해 마약류 공급자들과 쉽게 연락을 주고받으며 마약류를 소비할 수 있게 된 요인이 크다.”

한때 마약을 일부 범죄집단이나 하층민만이 소비하는 것으로 치부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재벌가나 유명인 등 부와 명예를 지닌 이들까지 마약에 손을 대고 있는 모습인데.

“마약은 부유층이나 빈곤층 가리지 않고 유통된다. 특징이 있다면 빈곤층은 마약을 통해 생활이 망가지고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이 큰 반면, 부유층은 부가 뒷받침되므로 마약 사용을 통한 쾌락을 추구하면서도 다른 대체유희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경제력이 있다 보니 상황에 구애받지 않고 마약에 빠져들 가능성도 크다는 얘기다. 다만 팩트는 마약사범 중 소위 ‘가진 자’들의 비중은 매우 미미하다는 것이다. 언론과 대중은 유명인들의 마약 사실에만 주목하는 경향이 있지만, 현실을 보면 마약사범 대다수가 무직이나 심신미약자 등 사회적 취약계층이다.”

검경은 단속강화로 마약 문제를 끊어내겠다는 방침이다. 마약사범들을 최대한 사회와 격리시키겠다는 것인데.

“수사기관에서 마약 공급선을 차단하고자 강력히 단속 활동을 벌이고 있다. 실제 관계자들을 만나보면 단속 의지도 크다. 또 수사기법이 발달하면서 마약사범 단속 건수도 늘었다. 그러나 이렇게 마약사범을 잡아들이면 문제가 과연 해결될까. 국적을 불문하고 마약사범들을 교도소에 모아 놓으면 ‘나가서 어떻게 마약을 구할 수 있을까’ 혹은 ‘어느 마약이 더 효과가 좋나’ 같은 제2 범죄를 모의한다. 교도소가 일종의 ‘마약스쿨’로 변모하는 것이다.”

교도소가 모든 범죄자를 완전히 교화할 수는 없지 않나. 검거 후 처벌을 강화한다면 적어도 마약범죄에 대한 경종은 울릴 수 있지 않을까. 중국은 마약사범을 사형시키는 극약처방을 펴고 있는데.

“마약은 일반 강력범죄와는 다르다. 마약사범 중 공급·유통책은 분명 엄벌하는 게 맞다. 다만 그중에는 우울증을 비롯한 여러 이유로 중독까지 이르게 된 사람들도 있다. 단순 마약 투약자와 공급자를 같은 범주 안에 묶어서는 마약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앞서 미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단속에 초점을 둔 마약 정책을 펼쳐왔으나 대부분 실패한 것도 이 때문이다. 마약중독자도 우리와 함께 살아가야 할 사람이고, 이들을 중독에서 벗어나게끔 도와줘야 한다. 이 같은 인식전환 없이는 마약 문제가 계속 되풀이될 뿐이다. 마약중독은 약을 끊으면 원래대로 회복이 가능한 질환이다.”

ⓒ 시사저널 임준선
이범진 마약퇴치연구소장 ⓒ 시사저널 임준선

 

“정부, 마약 관련 예산부터 늘려야”

마약사범을 범죄자가 아닌 환자로 봐야 한다는 얘기로 해석된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힘들다고 마약에 손을 대지는 않는다. 자칫 마약사범을 옹호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2016년 유엔마약특별총회 개회사에서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 사무처장은 ‘Put People First’ 즉 ‘사람이 최우선이다’고 역설했다. 세계적으로도 마약 정책의 방향은 바뀌고 있다. 사실 이 같은 인식은 이미 우리나라 법에도 적혀 있다.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제2조2 제1항에 의하면 ‘국민의 마약류 남용 예방 및 마약류 중독자에 대한 치료보호와 사회복귀 문제는 국가(지방자치단체)에 책임이 있음’을 명문화해 놓고 있다. 마약에 중독된 국민을 다시 우리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 복귀시키는 것도 국가의 의무라는 얘기다. 그러나 이를 시행하기 위한 치료·재활 예산이 없거나 극히 적어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마약 문제에 추가 예산이 투입돼야 한다는 것인가. 

“마약 문제가 이렇게 들끓고 있지만 정작 편성된 예산을 보면 형편없다. 마약 관련 모든 예산을 합해 봐야 100억원이 채 안 될 것이다. 금연 관련 예산은 1000억원 넘게 편성되는 상황인데, 그보다 심각한 마약 문제에는 너무 투자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일각에선 마약 문제보다 우리 사회 취약계층 보호 등이 더 우선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수 있는데, 마약사범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유발하는 사회적 비용을 고려해야 한다. 예산이 뒷받침돼야 재활 프로그램 등도 더 활발히 작동될 수 있다. 여기에 정부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정부의 노력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선 마약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한 국민적 공감대를 얻어야 한다. 공론화 과정을 정부가 나서서 진행해야 한다. 또 현재 각 부처와 수사기관에 흩어져 있는 마약 관련 수사 및 연구 인력 등을 한데 모을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마련돼야 한다. 이 같은 문제를 단지 특정 수사기관이나 부처끼리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책임을 전가해서는 곤란하다. 적어도 청와대나 국무총리실에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범국가적 공조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마약오염국’ 특집 연관기사

[마약오염국①] 마약에도 불어닥친 ‘유통혁명’

[마약오염국②] “돈 있는 유학생들, ‘떨’을 물담배 하듯”

[마약오염국③] “연예인·재벌 외에 일반인 마약사범도 많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