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의 비밀 안고 사라진 피해 여성의 청바지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4.15 11:00
  • 호수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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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락인의 사건추적] 2004년 경기도 화성 여대생 살인 사건
범인 것으로 추정되는 정액 묻은 청바지, 수사 과정서 사라져

경기도 화성에는 아직도 연쇄살인 사건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대한민국을 공포로 몰아간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그런데 이곳에서 또다시 여대생이 실종된 후 변사체로 발견됐다. 이 사건 또한 15년째가 됐지만 범인이 누구인지 그 실체가 드러나지 않고 있다. 

화성시 봉담읍에 사는 노아무개씨(여·21)는 경기도 소재 대학 관광학부 2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지난 2004년 10월27일은 학교에서 마지막 중간고사가 있는 날이었다. 노씨는 오전 10시에 중국어 시험을 치르고 오후 3시쯤 집에 들어왔다. 오는 길에 분식집에 들러 떡볶이와 김밥을 사서 동생들과 나눠 먹었다. 

오후 6시 노씨는 시험공부 때문에 한동안 빠트렸던 수영강습을 받기 위해 집을 나섰다. 강습을 받는 태안읍 화성복지관 수영센터는 집에서 3km쯤 떨어져 있었다. 오후 7시 노씨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수영강습이 끝나면 차로 데리러 와 달라”고 했지만 어머니는 “바빠서 못 갈 것 같다”고 말했다. 평소 노씨의 어머니는 딸을 복지관까지 승용차로 데려다주고 끝나면 데려오곤 했다. 

노씨는 초급반 수영 강습을 받았다. 강사의 지도 아래 자유형을 배우는 중이었다. 수영 강습은 오후 7시50분에 끝났다. 노씨는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오후 8시20분쯤 화성복지관을 나섰다. 오후 8시25분 인근 버스정류장에서 경진여객 소속 34번 버스에 탑승한 노씨는 앞에서 세 번째 의자에 앉았다. 버스 안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에는 이런 노씨의 모습이 찍혔다. 

ⓒ 일러스트 오상민
ⓒ 일러스트 오상민

실종 46일 만에 백골 시신으로 발견

노씨는 집에 가면서 남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누나 금방 갈게”라고 말했다. 어머니에게는 ‘집에 들어간다’는 휴대전화 문자를 보냈다. 버스에 탑승한 지 10분 후인 8시35분 노씨는 집에서 2km쯤 떨어진 봉담읍 와우리 공단에서 하차했다. 이게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이후 노씨는 행방불명됐다. 딸이 귀가하지 않자 어머니는 오후 9시쯤 전화를 했으나 노씨의 휴대전화 전원은 꺼져 있었다. 평소 말없이 집에 들어오지 않거나 외박 한 번 않던 딸이었다. 부모는 딸이 연락도 안 되고 귀가하지 않자 오후 11시쯤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 경찰과 가족들은 다음 날 새벽 3시까지 집 주변을 수색했으나 어떤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부모는 딸이 걱정돼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수도 없이 딸에게 전화를 했지만 그때마다 전원이 꺼져 있었다. 실종 2일째인 10월28일 오전 7시30분쯤 밤새 꺼져 있던 노씨의 휴대전화에 신호가 가기 시작했다. 가족들은 “살아 있구나” 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전화를 받은 것은 낯선 중년 남성이었다. 노씨의 아버지는 “내 딸 전화인데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남성은 “신문 배달하는 사람인데 협성대 근처 식당 앞 커피자판기 옆에 놓인 전화기를 주웠다”고 말했다. 이곳은 화성복지관에서 노씨 집 반대 방향으로 4km나 떨어진 지점이었다. 경찰은 휴대전화가 발견된 지역을 중심으로 주변을 샅샅이 수색해 나갔다. 

그런데 연이어 노씨의 소지품들이 발견되기 시작한다. 이날 오전 10시30분 휴대전화 발견 장소에서 노씨 집 방향으로 1.6km 떨어진 도로가에서 보라색 티셔츠와 검은색 후드점퍼가 발견됐다. 이후 200~300m 간격으로 청바지, 브래지어, 양말, 운동화 한 쪽(왼쪽)이 놓여 있었다. 나머지 운동화 한 쪽(오른쪽)은 400m쯤 떨어진 곳에서 발견됐는데 노씨 집에서 불과 700m 거리다. 

운동화가 발견된 근처인 화성시 정남면 보통리 저수지에서는 노씨의 면티, 팬티, 가방, 화장품이 발견됐다. 이어 저수지 근처 도로변에서 수영강습에 쓰인 수영모와 물안경, 수영복과 쇼핑백이 추가로 발견됐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었다. 노씨의 소지품이 발견된 곳은 43번 국도를 향하고 있는 봉담읍 상리 협성대에서 남쪽 방향인 정남면 보통리 방향 도로다. 하나같이 오른쪽 길가에 흩어져 있었다. 차를 타고 가던 범인이 노씨의 소지품들을 하나씩 차창 밖으로 던진 모양새였다. 

노씨의 소지품이 발견되기 시작하자 경찰은 수사본부를 꾸리고 공개수사에 들어갔다. 경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와 경찰서 수사·형사 쪽에 비상을 걸고 대단위 수사 인력을 투입했다. 그러나 범인은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인 상황에서도 노씨의 소지품들을 도로변이나 저수지 주변에 던져 놓았다. 

2004년 12월14일 경기도 화성에서 발견된 여성 유골이 실종 여대생 노아무개씨로 밝혀진 가운데 노씨 실종 지역에 걸린 현수막을 시민들이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 연합뉴스
2004년 12월14일 경기도 화성에서 발견된 여성 유골이 실종 여대생 노아무개씨로 밝혀진 가운데 노씨 실종 지역에 걸린 현수막을 시민들이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 연합뉴스

유력한 증거물 행방 묘연

실종 20일째 되던 날 노씨의 신용카드가 마지막으로 발견됐다. 이렇게 해서 소지품들은 총 14번, 장장 20일에 걸쳐 발견됐다. 이때까지도 노씨의 생사는 확인되지 않았다. 가족들은 살아 있을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용의자를 특정할 만한 단서가 나오지 않자 경찰은 초조해졌다. 지방청 광역수사대까지 동원한 매머드급 수사본부를 꾸렸지만 소리만 요란할 뿐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다. 형사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노씨의 사주를 적은 메모를 들고 내로라하는 무속인과 명리학자들을 찾아갔다. 이 또한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그러던 12월12일 오후 부동산업자 홍아무개씨와 치과의사 김아무개씨는 화성시 정남면 보통리 태봉산에 올랐다. 부동산 거래를 위해 일대를 둘러보고 있던 참이었다. 그때 두 사람의 눈에 이상한 광경이 들어왔다. 들쥐 떼가 무언가를 갉아먹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들쥐들은 도망갔는데 그것은 살점이 일부 남은 채로 뼈가 드러나 있는 사람의 시신이었다. 

두 사람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해 보니 시신은 몸통을 제외하고 머리와 양팔, 양다리가 뼈만 남은 백골 상태였다. 머리에는 35㎝ 정도의 머리카락이 남아 있었다. 실측 결과 키 172㎝ 정도의 여성으로 추정됐다. 실종된 노씨와 비슷했다. 당시 시신은 나체 상태였고, 상당히 부패가 진행돼 지문 채취가 불가능했다. 

경찰은 이 유골이 노씨로 추정된다고 판단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부검을 의뢰했다. 노씨의 치과 진료기록과 대조해 보니 정확히 일치했다. 이로써 노씨는 실종 46일 만에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왔다. 유골이 발견된 곳은 노씨가 실종된 봉담읍 와우리 버스정류장에서 5km 정도, 수영복과 가방 등 유류품이 발견된 저수지에서 1km 정도 거리였다.

시신에서는 노씨의 사망 당시를 추정해 볼 수 있는 단서가 나왔다. 위에서 떡 조각, 양배추 등 채소 조각이 나왔는데, 실종 당일 동생들과 먹었던 떡볶이와 김밥에 들어 있던 채소였다. 음식물이 완전 소화되지 않은 것으로 볼 때 실종 당일 살해된 것으로 추정됐다.

또 시신에는 흉기에 찔렸거나 골절 등의 흔적이 없었다. 국과수는 “경부압박 질식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소견을 냈다. 즉 국과수는 범인이 목을 졸랐거나 코와 입을 막아 질식시켜 살해했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노씨의 버려진 청바지에서 유력한 증거가 검출됐다.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정액이다. 국과수는 정액에서 용의자의 DNA를 추출했다. 이제 이것과 일치하는 DNA만 찾으면 사건은 해결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경찰은 노씨의 주변 인물, 화성 지역 택시기사, 전과자 등의 DNA 샘플을 검출해 국과수에 감정을 의뢰했다. 하지만 일치하는 사람을 찾는 데 실패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노씨 청바지에서 검출한 DNA가 국과수 분석 과정에서 오염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실을 안 국과수도 경찰에 “시료가 오염돼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 경찰이 수천 명의 DNA 샘플을 확보하고도 일치하는 사람을 찾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시료가 오염됐더라도 청바지만 있다면 다시 검출하면 문제 될 것이 없다. 더욱 놀라운 것은 유력 증거물인 청바지의 행방이다. 경찰은 “유족에게 전달했다”고 하고, 유족은 “휴대전화 외에는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며 황당해했다. 

도대체 이 청바지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범인을 잡을 수 있는 핵심 증거물인 청바지의 소재는 아직까지 파악되지 않고 있다. 청바지를 찾지 못하면 사건 해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누가 왜 청바지를 숨기거나 없앤 것일까. 여전히 의문이다. 

범인이 남긴 단서들

1. 범인의 목적은 성폭행이다. 

범인이 노씨를 살해한 이유는 확실하지가 않다. 돈이 목적일 확률은 낮다. 그랬다면 가족에게 몸값을 요구하는 전화를 걸었어야 한다. 하지만 노씨의 집에는 이와 관련해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노씨가 개인적으로 원한을 살 만한 일도 없었다. 

여러 정황을 살펴보면 범인의 목적은 성폭행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시신 발견 당시 부패가 심해 성폭행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청바지에서 범인으로 것으로 보이는 정액이 발견된 점으로 보면 성폭행을 하거나 시도한 뒤 살해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2. 범인은 2명 이상이다. 

노씨의 유류품을 보면 이상하리만치 깨끗하다. 옷에는 단추 하나 떨어진 것이 없다. 신문배달원이 내민 휴대전화에는 흠집 하나 없었다. 시신에는 흉기에 찔렸거나 설골이 부러졌거나 하는 치명상을 유발한 부분도 없었다. 

만약 범인이 혼자였고, 성폭행을 위해 옷을 벗기려고 했다면 상당한 저항이 예상되는데도 이런 정황이 보이지 않았다. 이는 범인이 노씨를 단번에 제압했다는 것인데, 마취제 등 약물을 사용했거나 범인이 최소 두 명 이상일 때만 가능하다. 노씨의 소지품은 도로변 오른쪽 방향에 흩어져 있었다. 범인이 혼자 운전하면서 조수석을 사이에 두고 소지품을 차창 밖으로 던졌다고 보기에는 부자연스럽다. 오히려 반대 방향에서 운전하면서 운전석에서 던지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노씨의 배 양쪽 부위에는 세로 방향으로 긁힌 5~7cm 정도의 상처가 있었다. 상의가 벗겨진 채 땅바닥 위로 끌려가며 생긴 상처다. 국과수는 범인이 노씨를 살해한 후 유기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판단했다. 

시신이 유기된 곳은 야산이지만 승용차를 세운 후 일정 거리를 옮겼다. 노씨는 키가 170cm가 넘는다. 범인 혼자 노씨를 살해한 후 유기하려고 했다면 상당히 힘들게 이동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노씨의 가슴이나 등, 옆구리 등에는 긁힌 상처가 없었다. 이것은 두 명 이상이 시신을 옮겼다고 봐야 한다. 

3. 노씨는 납치보다 ‘호의동승’ 했다. 

노씨는 평소 혼자 버스에서 내릴 때는 이곳에서 택시를 타고 귀가했다. 택시를 탈 때도 화성 지역 택시라는 것을 확인하고 탔을 정도로 신중한 성격이었다. 경찰은 실종 이후 화성 지역 택시기사들을 상대로 탐문을 벌였지만 노씨를 태운 택시는 없었다. 

노씨가 버스에서 내린 와우리 공단 버스정류장 일대는 번화가여서 범인들이 강제로 태우기는 어렵다. 이 때문에 범인들은 노씨에게 호의를 베푸는 척하며 차에 태웠을 가능성이 높다. 노씨의 성격상 밤에 다른 사람의 승용차에 탔다면 아는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4. 소지품을 도로변에 버려 수사 혼선 노렸다.

범인은 왜 도로변에 노씨의 소지품을 흩어 버렸을까. 보통 살인 사건에서는 피해자의 소지품을 감추려는 게 범인의 심리다. 그런데 이 사건은 오히려 반대다. 마치 경찰에게 ‘나 잡아봐라’는 듯이 20일에 걸쳐 피해자의 소지품을 그것도 도로변에 던져 놓았다. 

범인이 이렇게까지 대담하게 행동한 것은 분명 노림수가 있어서다. 여러 가지 해석이 분분하다. 소지품이 버려진 곳은 노씨의 집과 멀지 않은 곳이다. 반면 버스 승차 지점, 실종 지점의 경우 집과는 정반대 방향이다. 의도적으로 수사에 혼선을 주거나 수사 방향을 바꾸기 위한 범인의 행동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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