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블랙리스트인가 체크리스트인가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4.15 17:00
  • 호수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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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선의 시시비비]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 단죄한 문재인 정부의 체크리스 주장이 궁색한 이유

“블랙리스트라는 먹칠을 삼가 달라. 이번 환경부 사례는 합법적인 체크리스트다.”(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

“검찰 수사로 밝혀진 ‘문재인판 블랙리스트’에 대해서 청와대는 ‘체크리스트였다’라는 말장난만 늘어놓고 있다.”(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공공기관 임원들에 대한 문재인 정부 환경부의 사퇴 압박은 블랙리스트인가, 체크리스트인가. 검찰 수사로 불거진 뜨거운 논쟁은 김은경 전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법원이 기각하면서 일단 열기가 식었지만,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완전하게 정리된 것은 아니다. 이 문제는 법적인 측면에서의 판단을 요구하기도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정치적 측면에서의 판단이 따르는 문제이기도 하다.

법원은 영장을 기각하면서 김 전 장관에게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과 문재인 정부의 출범이라는 특수한 사정이 있었다고 설명하고, “공공기관의 장이나 임원들의 임명에 관한 규정과는 달리 대통령 등을 보좌하기 위해 청와대와 관련 부처 공무원들이 임원추천위원회 단계에서 후보자를 협의하거나 내정하는 관행”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블랙리스트가 아닌 체크리스트라는 청와대와 환경부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하지만 김 전 장관에 대한 영장 기각에서 밝힌 법원의 잠정적 의견에도 불구하고,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블랙리스트이고 체크리스트인가에 대한 정답을 찾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다.

(왼쪽)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2017년 12월14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문화계 블랙리스트’ 항소심 16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오른쪽)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4월2일 ‘환경부 블랙리스트 문건 의혹’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송파구 동부지방검찰청에 출석하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연합뉴스
(왼쪽)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2017년 12월14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문화계 블랙리스트’ 항소심 16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오른쪽)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4월2일 ‘환경부 블랙리스트 문건 의혹’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송파구 동부지방검찰청에 출석하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연합뉴스

정치적 논란 피하기 어려워 보여

물론 문재인 정부가 주장하는 체크리스트는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와 상당한 양적·질적 차이를 보여줘왔다. 우선 박 정부의 블랙리스트는 문화·예술·방송인 등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했지만, 문 정부의 체크리스트는 공공기관 임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더구나 박 정부 때는 청와대 정무수석실과 교육문화수석실에서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관계부처로 내려보냈다. 그러나 문 정부에서 그런 리스트를 작성하거나 지시했다는 증거는 확인된 것이 없다. 또한 수적인 면에서도 비할 바는 아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동안 관리된 블랙리스트 숫자는 2만 명을 넘는 것으로 파악되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사퇴 압력으로 논란이 되었던 사람은 현재 한 자리 숫자 정도로 나타난다.

하지만 그에 대한 법적 판단과는 별개로 정치적 논란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체크리스트라고 하지만 표적감사 등 반강제적 압박의 방법이 동원된다면 블랙리스트와 다를 바 없는 것 아니겠는가. 그 대상이 민간인이냐 공공기관 임원이냐를 구분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민주주의의 제도적 절차를 지키느냐도 그 이상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난 2008년 이명박 정권 들어 정연주 KBS 사장을 사퇴시키기 위해 정권 차원의 온갖 압박이 동원된 사실을 우리가 그토록 비판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집권 이후 박근혜 정부에서의 블랙리스트들을 단죄했던 문재인 정부로서는 자신이 거꾸로 블랙리스트의 주인공처럼 얘기되는 상황 자체가 치욕적일 수밖에 없다. 지난 박근혜 정부의 적폐들을 청산하겠다는 출범의 명분이 부정되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에서의 공공기관 인사와 관련된 논란들이 박근혜 정부 때의 블랙리스트와는 다르다는 청와대의 항변은 충분히 수긍된다. 아무려면 국기를 무너뜨린 박근혜 정부의 그것과 같은 반열에서 얘기될 성질의 것이겠는가. 하지만 촛불 시민혁명으로 들어서고 적폐청산을 외쳐온 문재인 정부의 정치적 윤리와 도덕성을 기본조차 갖추지 못한 그런 정부들과 비교하며 자위할 일은 아니다.

국민은 더 이상 박근혜 정부와 비교하며 문재인 정부를 평가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에는 문재인 정부의 윤리적 기준이 있어야 하며, 그것은 적폐청산을 요구했던 국민의 기대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에서의 공공기관 인사는 위법성이 있었느냐 여부와 상관없이 국민 눈높이에서의 요구를 충족하지 못한 사례들을 적지 않게 보여온 것이 사실이다.

‘자발적 화이트리스트’ 문제점도 도출

얼마 전 마약 밀매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아들로 인해 부실 검증 논란에 휩싸였던 유시춘 EBS 이사장의 경우도 대표적인 사례다. 교육이나 방송에 대한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작가 출신의 인사가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문재인 후보를 도왔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자리에 오른 것으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방송들에서 나타나고 있는 ‘자발적 화이트리스트’도 짚어야 할 문제다. 필자 또한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 아래서 블랙리스트의 대상이 되어 방송 활동이 가로막혔던 사연이 있다. 그러하기에 방송 출연에 부적합한 특별한 문제가 없는 사람이라면 정치적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 방송문화를 갈망해 왔다. 그러나 지난 2년 동안 방송들에서는 ‘이명박근혜의 편’들이 사라진 대신, ‘문재인의 편’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던 사람들이 주요 방송들의 핵심 역할들을 대거 차지하고 ‘팬 놈만 계속 패는’ 광경이 어김없이 반복되었다. 문재인 후보를 앞장서서 지지했던 ‘나꼼수’ 멤버들의 지상파 MC 진출도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졌지만, 수용자들의 호불호가 엇갈리는 가운데 대부분 프로그램들이 단명하고 말았다. 방송계의 이런 과정에 권력이 작성한 리스트는 없었다 하더라도, 국민들은 또 다른 화이트리스트로 받아들이게 되어 있다. 이러한 화이트리스트는, 그 과정에 정권이 개입했느냐와 상관없이, 정권교체의 결실을 특정인들의 전유물로 인식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정권을 국민으로부터 멀게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

검찰과 문재인 정부의 법적 승부는 아직 진행 중이다. 검찰은 지난 4월2일 김은경 전 장관을 4차 소환 조사한 데 이어, 4일에는 현 정부 아래서 진행된 공모 과정에서 특혜 의혹을 받아온 국립공원관리공단 권아무개 이사장을 불러 조사함으로써 김 전 장관에 대한 영장 재청구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는 상태다. 검찰은 이어 청와대 신미숙 균형인사비서관 등의 소환을 추진하고 있어 김 전 장관 등에 대한 수사는 조만간 청와대로까지 번질 태세다. 그 결과에는 문재인 정부만이 아닌 국민의 자존심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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