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나라에 치즈 기적 일군 ‘임실 치즈’ 지정환 신부 선종
  • 전북 전주 = 정성환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19.04.14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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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박한 농촌 임실에 ‘치즈씨앗’ 뿌린 푸른 눈의 한국인
산양 2마리로 치즈 생산, 말년에도 나눔의 삶 실천
70~80년대 불의에 맞서 반독재 민주화투쟁에도 앞장

임실 치즈의 개척자로 평가받는 지정환 신부(벨기에 명 디디에 세스테벤스)가 13일 오전 전주의 한 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8세.

벨기에 태생인 고인은 ‘임실 치즈의 아버지’로 불린다. 1967년 지역 농민들의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전북 임실에 우리나라 최초의 치즈공장을 세워 유럽의 치즈 기술을 국내에 전파하는 공을 세웠다. 영부인 김정숙 여사가 마틸드 벨기에 왕비와 지난달 26일 가진 청와대 환담 때 고인을 “한국인들도 임실치즈를 즐기며 지정환 신부를 존경하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전북 임실군은 2016년 11월 24일 임실 치즈의 대부로 불리는 지정환 신부에게 명예 군민증을 수여했다. ⓒ연합뉴스
전북 임실군은 2016년 11월 24일 임실 치즈의 대부로 불리는 지정환 신부에게 명예 군민증을 수여했다. ⓒ연합뉴스

김치 나라에 ‘치즈의 기적’ 일군 池신부가 걸어 온 길 

지 신부는 1931년 12월 5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본명은 디디에 세스테벤스. 세례명이기도 하다. 나중에 지정환이란 한국이름을 지을 때 ‘디디에’에서 ‘지’를 따왔다. ‘환’은 그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도움을 준 김이환 전주교구 부주교의 끝자를 사용했다. 가운데는 발음이 편한 ‘정’을 선택했다. 결과적으로 ‘정의가 환하게 빛난다’는 의미를 갖게 됐다. 

지 신부는 1958년 사제 서품을 받은 뒤 이듬해 12월 전주교구 소속 신부로서 부산항에 도착했다. “전쟁의 땅이 희망을 품게 하자”는 이유였다. 그는 첫 임지로 1961년 전북 부안성당에 부임한 뒤, 농민들과 함께 바다를 막아 여의도보다 두 배 넓은 99만㎡(30만평)의 간척지를 만들었다. 가난한 농민들에게 농지로 나눠줬지만 고리대, 놀음으로 그 땅들이 다 넘어가는 것을 보며 상처를 받았다. 

 

“쓸개 빠진 놈(?)”…부안 간척지 3년간 100㏊ 조성 농민에게 제공

지정환 신부가 마치 한약을 달이듯이 산양유 등을 약탕기에 넣고 정성껏 달이는 모습을 한 촌부가 옆에서 지켜 보고 있다.  ⓒ임실치즈협동조합
지정환 신부가 마치 한약을 달이듯이 산양유 등을 약탕기에 넣고 정성껏 달이는 모습을 한 촌부가 옆에서 지켜 보고 있다. ⓒ임실치즈협동조합

빵과 라면으로 아침저녁을 때우며 몸을 제대로 돌보지 못해 담낭(쓸개)에 문제가 생겨 제거수술을 받았다. 그의 표현대로 ‘쓸개 빠진 놈’이 된 것이다. 1964년 담낭수술을 위해 벨기에로 돌아갔다가 전북 임실성당으로 복귀했다. 두 번째 부임지인 임실에서 가난이 일상인 농민들과 만났다. 신용협동조합 운동에 뛰어들었고, 완주의 한 신부가 선물한 산양 2마리를 키우기 시작했다. 산양유로 치즈를 생산해 농민들의 자활 기반을 마련하자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기대했던 치즈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농가에서 우유를 신선하게 유지하지 못하는 것이 실패의 원인이었다. 모양은 치즈인데 품질이 고르지 않으니 상품 가치도 없었다. 67년 벨기에 부모님으로부터 2000달러를 받아 치즈공장을 지었다. 이번에는 유산균이 필요했다. 산양유에 누룩과 간수 등 온갖 재료를 더해봤지만, 3년 넘게 실패만 했다. 

치즈 제조법을 배우기 위해 3개월 동안 유럽 견학을 다녀왔더니 그새 함께 일하던 12명 중 1명을 빼고 다 그만뒀다. 양들도 다 팔아치우고 없었다. 그가 치즈생산에 실패해 외국으로 도망갔다는 괴소문이 퍼지면서다. 

마침내 69년 포르살뤼·체더·모차렐라 등 다양한 치즈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한국에서 만든 최초의 치즈였다.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와 불법 유통되는 치즈가 전부였던 시절이었다. 농민들이 정성껏 만든 임실치즈는 ‘신선하다’는 입소문을 타면서 서울의  특급호텔인 조선호텔까지 판매망을 확보하며 승승장구했다. 


‘공수신퇴(功遂身退)’…대가없이 주민들에게 치즈공장 물려줘

임실치즈협동조합을 시작한 마을 사람들과 함께한 지정환 신부(가운데). ⓒ임실군
임실치즈 협동조합을 시작한 마을 사람들과 함께한 지정환 신부(가운데). ⓒ임실치즈협동조합

지 신부는 목표했던 치즈 생산을 이루자, 대가 없이 임실치즈공장을 주민 협동조합으로 변경한 뒤 운영권·소유권을 조합에 전부 넘겼다. 그는 당시 공수신퇴(功遂身退)라는 사자성어를 남겼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이다. “내가 내세울 수 있는 건 없어요. 공을 이루었으면 이내 물러나야 합니다.” 

현재 임실치즈가 지역사회에 끼치는 경제효과는 1000억원 이상인 것으로 추정된다. 전국적으로 임실치즈피자 프랜차이즈 업체만 20여개, 임실치즈를 쓰는 브랜드만 70여개다. 

 

유신시위로 체포…박 前대통령, 치즈 개척 공로 듣고 추방명령 취소

1970년대 박정희 독재 정권 시절에는 외국인 사제들과 함께 민주화투쟁에 나서기도 했다. 1974년 박정희 유신체제에 반대한 지학순 원주교구 주교가 내란선동과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구속되자, 그는 전주교구 신부로서 석방 투쟁에 참여했다가 강제추방 당할 위기에 몰렸다. 아이러니하게도 박정희 대통령 덕에 추방 위기에서 벗어났다. 박 전 대통령이 그가 농촌경제 발전에 헌신한 공로를 인정해 출입국관리소에 추방명령 취소를 지시한 것이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때는 시민군들에게 나눠 줄 우유를 트럭에 싣고 혼자 광주로 내려가기도 했다. 

임실 치즈사업이 한창이던 1981년 신경이 이상 증상을 보이는 ‘다발성 신경경화증’으로 다리가 불편해 벨기에로 떠났다. 3년 뒤 치료에 실패한 채 오른쪽 다리가 마비된 장애인의 몸으로 한국에 돌아 온 그는 중증장애인 재활공동체 무지개가족을 설립, 전주와 완주 등 전북의 복지시설을 오가며 장애인 등 소외계층을 돌보는 데 힘썼다. 

 

‘57년 만에’ 한국 국적 취득 진짜 한국인 되기도

임실치즈협동조합이 치즈를 본격 생산하기 시작한 모습. ⓒ임실치즈협동조합
임실치즈 협동조합이 치즈를 본격 생산하기 시작한 당시 모습. 마을 사람들이 점성을 테스트하고 있다. 오른쪽 앉아 있는 사람이 지정환 신부 ⓒ임실치즈협동조합

20여년에 걸쳐 중증 장애인 자활에 헌신한 공로가 인정돼 2002년 호암재단으로부터 사회봉사상을 받았다. 그때 받은 상금 1억원과 임실치즈농협에서 매달 250만원씩 보내온 돈, 지정환임실치즈피자 판매수익금 등 모두 5억원으로 ‘무지개장학재단’을 설립했으며 지금은 기금이 7억원으로 불어났다. 매학기 40명의 장애인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는 등 장애인과 그 가족을 돕고 있다. 

지 신부는 2016년 12월 4일 법무부로부터 국적 증서를 받으면서 법적으로 진짜 한국인이 됐다. 한국에 온지 57년 만이다. 지 신부는 임실 지씨의 시조다. 2004년 사제직에서 은퇴한 지 신부는 50년 된 살구나무가 서 있는 전북 완주군 소양면 해월리에 ‘별아래’라는 집을 지어 무지개가족에서 함께 일했던 사람들과 생활해왔다. 

그의 빈소는 전주시 덕진구 서노송동 천주교 중앙성당에 마련됐다. 천주교 전주교구는 16일 오전 전주 중앙성당에서 장례미사를 진행한다. 장지는 전주시 치명자산 성직자 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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