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아직도 울분에 갇혀 있다
  • 구민주·조해수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9.04.16 08:00
  • 호수 153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습기살균제 사건 8년, 여전히 멀기만 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2011년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터진 지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여전히 이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진실이 드러난 건 말 그대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수준이다. 진상규명이 되지 않으면서 책임자 처벌도 요원한 상황이다. 애경·옥시·SK케미칼뿐만 아니라 LG생활건강·삼성 역시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피해자와 시민단체 등은 국회 국정조사에서 위증을 한 인물들에 대한 처벌이 가능하도록 법률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는 3월14일,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가정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피해자 3명 중 2명이 ‘만성적 울분’ 상태였고, 이 가운데 절반가량은 ‘중증도 이상의 심각한 울분’ 상태를 보였다. 또 성인 피해자의 자살 시도가 일반인보다 4.5배 높은 것으로 나왔다.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 회원들이 가습기살균제 참사 진상규명과 피해대책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 회원들이 가습기살균제 참사 진상규명과 피해대책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내 손으로 가족을 고통에…” 죄책감 시달려

이와 관련해 최예용 특조위 부위원장(가습기살균제사건 진상규명 소위원회 위원장)은 “이번엔 살균제에 노출된 모든 가족 구성원, 그리고 폐질환만이 아닌 살균제가 일으킬 수 있는 거의 모든 형태의 질환에 대해 조사했다. 가습기살균제 문제가 세상에 드러난 게 8년이지, 사실 그 훨씬 전부터 피해는 계속돼 왔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경제적 부담과 정신적 고통까지 전부 파악하는 게 이번 조사의 핵심이었다. 전체 6000명 넘는 피해 신고자 중 100가구만 무작위로 선정해 조사했는데, 올해 다시 200가구를 추가해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2016년 학계에서 조사해 봤는데, 전체 살균제 사용자가 400만 명이었고 그중 50만 명이 건강 피해자, 그중에 또 4만 명이 중증 피해자라고 파악됐다. 그런데 신고한 피해자는 지금 6000명에 불과하다. 그래서 우리는 늘 이 사건을 ‘빙산의 일각’이라고 표현한다”고 덧붙였다. 

피해자가 무수히 많지만 스스로 피해자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도 많고, 구제를 받는 이들도 소수에 불과한 실정이다.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가습기넷) 고발을 대리한 박종언 변호사(법무법인 해내 대표변호사)는 “가습기살균제 판매부터 지금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 보니 관련 자료가 미비하고, 일반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호흡기 질병이 많은 관계로 가습기살균제와의 연관성을 인지하지 못한 피해자들도 다수인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초기 가습기살균제 폐질환의 판정기준이 매우 협소하고, 특이질환 위주로 인정되다 보니 피해자 구제 문제에서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도 판정기준은 매우 엄격하게 설정돼 있고, 피해 신청자들 중 대다수가 가습기살균제 피해 인정을 못 받고 있는 상황이다. 역학조사, 추적·관찰, 판정기준 개선, 광범위한 가습기살균제 피해 인정 등이 필요하다.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판정기준을 설명하고, 피해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가습기살균제는 초기에 아이·노인·환자들에게 많이 사용됐다.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하면 좋다는 말에 그들의 보호자이자 가족들이 직접 가습기살균제를 적극 사용하거나 권유했던 것이다.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가족들은 자신의 손으로 자식·부모 등을 고통에 빠뜨렸다는 죄책감 속에 살아가고 있다. 과거의 상처를 다시 돌이켜 열심히 피해사실을 소명해도, 엄격한 판단기준으로 인해 인과관계를 인정받기 쉽지 않는 현실에서 피해자 및 피해자 가족들은 더 큰 상처를 입고 있는 것이다.

박 변호사는 “가습기살균제와 관련해 피해자분들에게 법률지원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것은, 피해자들에게 다시 한번 아픈 기억을 꺼내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관계를 모르는 제3자로서는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을 수 없다. 가습기살균제의 문제점은 기타 사건과 달리 가족 전체가 피해와 아픔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가해자가 아닌 가습기살균제 사용자 및 권유자가 죄책감에 시달린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그는 “개개인의 아픔을 듣는 것, 그들의 아픔에 100% 공감할 수 없는 제3자라는 사실, 그리고 이 모든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못 된다는 사실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고 말했다.

2018년 11월 서울중앙지검에서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 회원들이 수사 촉구 고발장 접수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뉴시스
2018년 11월 서울중앙지검에서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 회원들이 수사 촉구 고발장 접수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뉴시스

‘위증’ 드러나도 현행법으론 처벌 어려워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은 더 큰 문제다. SK케미칼 부사장이 구속되긴 했지만 여전히 주요 업체에선 여러 의혹에 대해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 부위원장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의 구속영장이 기각되기) 하루 전에 전관예우 변호사가 새롭게 합류했는데, 알고 보니 아주 최근까지 부장판사를 했던 사람이었고 또 영장 발부를 결정하는 판사와 학연으로 엮여 있기도 했다. 이런 걸 법원이 용인하는 것 자체에 대해 피해자들의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최 부위원장은 “LG생활건강도 책임 기업이라 할 수 있다. 1997년부터 6년가량 가습기살균제 110만 개를 팔았고 전체 판매량이 옥시와 애경 다음으로 3위였다. 그런데 이 사건이 알려지기 전까지만 팔고 판매를 중단해 LG 제품을 사용해 피해를 봤다는 사례가 지금 그리 많이 나오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또 하나는 삼성이다. 2005년부터 2011년까지 홈플러스를 삼성이 운영하며 여기에서 30만 개 정도의 제품을 판매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2011년 이 사건 터지기 직전에 삼성이 홈플러스를 매각하면서 지금 드러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피해자와 시민단체에서는 책임자 처벌을 위해 법 개정을 준비하고 있다. 2016년 가습기살균제 국정조사 당시 일부 증인들의 위증이 수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그러나 현행법으로는 처벌이 어려운 상황이다. 현행 ‘국회에서의 증언 감정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국회에서 선서한 증인 또는 감정인이 허위의 진술이나 감정을 한 때에는 본회의 또는 위원회가 고발하도록 하고 있고, 청문회의 경우에는 재적위원 3분의 1 이상의 찬성이 있을 경우에만 고발이 가능하다. 이에 따라 ‘가습기넷’에서는 국정조사 종료 후에도 위증을 처벌할 수 있도록 국회에 청원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박 변호사는 “개정안에는 △특별위원회 활동기한이 종료된 이후에도 위증을 한 자에 대해서 고발을 할 수 있도록 하되 △국회의원 20인의 연서를 고발조건으로 하고 △고발기한을 5년으로 제한하며 △국정조사특별위원회가 종료된 사안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취지의 별도의 부칙 조항 등이 추가됐다”고 설명했다. 

 

※ 연관기사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가해의식’ 갖게 되는 게 더 큰 고통”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