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타 제도, 무엇이 문제고 어떻게 바꿔야 할까
  •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4.18 11:00
  • 호수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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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영의 경제 바로읽기] 예산 낭비 막고 효율적 재정 집행에 유리…변화보단 ‘현상유지’ 부작용도

2019년 4월3일 정부는 제12차 경제활력대책회의 겸 제11차 경제장관회의를 개최했다. 여기서 논의된 세 가지 가운데 한 가지는 ‘예비타당성조사(예타) 제도 개편방안’이었다. 지난 1월29일 ‘2019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 발표를 통해 예타 면제 대상사업을 선정한 이후 제기된 선심성 정책이라는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한 개편이라 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예타 제도를 개편하면 원활하게 각종 사업을 추진할 수 있어 경제에 활력이 돌고, 지방의 발전도 가져올 수 있다고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정부는 왜 스스로의 손을 묶는 예타 제도라는 것을 만들었을까.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월29일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에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대상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월29일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에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대상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사업 결정권을 사업부처 아닌 예산부처에

20년 전 등장한 예타 제도의 핵심은 사업의 결정권을 사업부처가 아닌 예산부처가 쥐도록 하는 데 있었다. 노태우 정부 시절 5대 신도시를 비롯한 인천국제공항, 경부고속철도 등 급박하게 이뤄졌던 대규모 투자계획은 재원확보 방안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음에 따라 혼란을 가중시켰다. 사업 지연은 물론 수없는 계획 및 설계 변경으로 당초 추정한 예산을 훌쩍 넘어서기 일쑤였다. 

이에 1991년 7월 당시 경제기획원(현 기획재정부)은 막대한 재정투자가 소요되는 대형 사업에 대해서는 재원조달에 대한 ‘대형투자사업심사위원회’의 사전 검토 작업을 거쳐 우선순위를 인정받는 경우에만 추진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그러나 1994~98년 대규모 재정사업에 대한 부처별 자체 타당성 조사 결과에 따르면, 거의 모든 사업들이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간주돼 진행됨에 따라 사업비는 치솟고, 완성된 시설들은 수요부족에 허덕이게 됐다. 이에 IMF 경제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 9월 기획예산위원회와 예산청은 다시 500억원 이상의 신규 사업에 대해서는 반드시 예타를 거치도록 했으며, 1999년 처음으로 실시한 예타를 통해 각 부처가 제출한 16개 사업 가운데 8개 사업만 타당성을 인정함으로써 사업의 주도권을 개별 부처가 아닌 예산 당국이 쥐게 됐다. 이때부터 대규모 사업은 투입되는 비용보다 편익이 큼을 증명하지 못하면 사업추진이 매우 어렵게 됐다. 예산부처가 사업부처를 장악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예타 제도가 도입된 1999년 이후 2018년까지 20년에 걸쳐 386조원 규모의 849개 사업에 대한 예타가 실시됐다. 이 가운데 35.3%인 300개 사업이 타당성이 낮은 것으로 판단돼 사업이 이뤄지지 않았다. 예타를 통해 그동안 154조원의 예산을 절감했고 이를 통해 재정효율화에 기여했다는 것이 기획재정부의 설명이다. 사실 사업을 기획하는 각 부처 및 지자체도 과거와 달리 ‘예타를 통과할 수 있을까?’라는 자기검열을 통해 사업추진에 신중을 기하게 됐으며, 정치권에서도 예타를 통과하지 못하면 사업추진이 어렵다는 인식이 보편적으로 확산되면서 맹목적인 대형 사업 추진을 지양하게 됐다는 점이 어쩌면 예타 제도의 가장 큰 기여일지도 모른다. 

예산 낭비를 막고 재정의 효율적 집행을 가능하게 했던 예타 제도는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불만과 비판에 직면하게 됐다. 예타 제도의 골격은 경제성, 정책성, 지역균형발전의 3가지 요소로 유지돼 왔다. 각각의 분석 결과를 토대로 계층화분석(AHP)이라는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경제성 0.9 이상, AHP 0.5 이상 나올 경우 사업을 추진하도록 하고 있다. 3가지 요소 가운데 경제성이 35~50% 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사업추진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소인데, 수요가 적은 지방의 경우 경제성을 맞추기가 어렵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또 지방을 배려하는 지역균형에 있어서도 광역시를 비롯한 주요 도시에 해당하는 36개 지역의 경우 감점을 받는 구조인 관계로 지방 대도시까지 예타에 따른 피해를 호소하게 됐다. 수도권과 대도시의 사업은 지역균형발전에 역행한다는 이유로, 지방은 수요가 없어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예타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경우가 증가하면서 예산부처를 제외한 모두에게 예타는 불편한 대상이 됐다.

예타 제도는 많은 불합리한 점을 가지고 있었다. 교통수요가 집중되는 주말 교통량은 교통량 산정에서 제외되면서 주말마다 정체를 빚는 도로의 확장은 계속 지연됐다. 중간 일부를 확장하는 경우 해당 구간에 대해서만 비용과 편익을 따짐으로써 평택~오송의 병목구간 해소가 늦어지면서 많은 불편을 초래했다. 사업을 통한 환경피해는 반영되지만, 환경적 이득은 반영되지 못함으로써 수도권 대기오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철도사업은 궤도에 오르지 못했다. 신도시 입주민들이 광역교통망 대책 비용으로 수천억원을 이미 납부했지만 이를 포함하지 않고 비용을 산정함으로써 사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광역교통 대책을 믿고 입주한 주민들의 불편은 계속됐다. 

정부는 그동안 이런 문제를 정면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예타 면제’라는 편법으로 우회해 왔다. 처음에는 국가재정법 시행령을 개정해 ‘국가 정책적으로 필요한 사업’에 대해 우회로를 터줬으며, 나중에는 국가재정법을 개정해 예타 면제 요건을 법률에 명시해 예타 면제를 합법화했다. 야당은 항상 정부의 이런 조치에 대해 편법을 통한 선심성 사업이라고 비판을 하다가 정권을 잡으면 반대의 입장에 서곤 했다. ‘내로남불의 대표적 존재가 예타였다’고 할 수 있다.


정치권 내로남불의 대표적 존재

예타 제도의 본질적 맹점은 그 명칭과 시행단계에 있다. 통상 ‘예비’라는 용어는 무엇을 준비하거나, 정식으로 하기 전에 하는 초보적 준비를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예타는 본격적인 타당성 조사에 앞서 가볍게 기본적인 사항을 점검하는 수준에 머물러야 하지만 사업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무소불위의 존재가 됐다. ‘예타 대상 사업’에 포함되는 것조차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었다. 또한 예타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사업의 노선과 비용 등이 산출돼야 하는데, 정작 이러한 내용은 예타를 통과한 이후 기본계획 및 기본설계 과정에서야 구체화될 수 있는 것이다. 

예산의 합리적 이용이라는 목적으로 도입된 예타는 지난 20년간 많은 기여를 했지만 한편으로는 현상유지에 주력하고,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하려는 시도를 가로막음으로써 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지연시켰다고 볼 수도 있다. 만약 지금의 예타 기준을 적용한다면 허허벌판이던 강남에 2호선을 놓을 수 없었으며, 섬 사이를 메워 1억 명이 이용하는 공항을 건설하겠다는 인천국제공항 계획안은 삽조차 뜰 수 없었을 것이다. 정책 결정권자의 판단과 결정으로 사업을 시행했기에 가능했고, 이를 통해 대한민국은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예산의 효율적 집행이라는 명분으로 변화보다는 안정과 현상유지를 선택하도록 만들었던 것이 예타였다. 질식할 것 같은 사회의 교착상태를 깨고 변화와 전진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예타 제도가 변화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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