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의 몰락vs호반의 도전…호남경제권력 교체되나
  • 정성환 호남취재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19.04.17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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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아시아나그룹, 핵심 계열사 아시아나항공 매각으로 재계 60위권 밖 중견기업 추락 위기
급성장한 호반건설, 종이호랑이 전락한 금호와 ‘호남혈투’
금호-호반 대결 바라보는 호남지역의 불편한 심경

“금호가 지고 호반이 뜬다.”

근래 호남 지역경제계에서 많이 회자되고 있는 말이다. 이는 호남 경제권력 지형의 현주소에 대한 압축적 표현으로 읽힌다. 금호아시아나그룹과 호반건설은 호남을 기반으로 성장한 신·구 경제권력을 대표하는 향토기업이다. 최근 금호그룹이 쇠락 추세에 접어들면서 호남 경제권력 지형 변화의 밀도가 한층 높아지고 있다.

이들 두 호남기업의 부침을 보면 독일 역사가 오스발트 슈펭글러의 ‘역사순환론’이 떠오른다. 그는 역사는 생명유기체의 출생과 성장, 성숙과 소멸의 과정과 비슷하게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단계를 거치면서 생성과 성장 노쇠를 되풀이한다고 주장한다.

(왼쪽)금호아시아나 본관 (오른쪽)서울 강남구 역삼동 호반건설 본사 ⓒ시사저널 박정훈·시사저널 포토
(왼쪽)금호아시아나 본관 (오른쪽)서울 강남구 역삼동 호반건설 본사 ⓒ시사저널 박정훈·시사저널 포토

‘지는 별’ 금호…“아 옛날이여”

금호그룹은 1946년 4월 창업주인 고 박인천 창업주가 17만원의 자본금으로 미국산 중고 택시 두 대를 사들여 설립한 ‘광주택시’가 모태다. 이어 1948년 광주여객자동차(현재 금호고속)을 창업하며 역사가 시작됐다. 1988년 아시아나항공을 취항했고 이후 건설, 항공, 육상운송, 레저, IT 사업부문 등 사업군을 거느린 그룹으로 성장했다. 특히 2006년 대우건설과 2008년 대한통운까지 인수하며 당시 그룹 자산 규모 26조원으로 재계 순위가 7위까지 치솟았다. 금호의 ‘봄’이다.

그러나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금호그룹은 4월 15일 핵심 계열사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결정했다. 그룹 전체 자산의 60%를 차지하는 아시아나항공 매각으로 금호그룹은 재계 서열이 25위권에서 60위권 밖으로 밀려나 중견기업으로 추락할 것으로 보인다. 금호그룹 전체 자산 규모 중 아시아나항공(6조8832억원)을 제외하면 4조5644억원으로 줄어든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자산 규모 5조원 이상 기업 60곳을 대상으로 지정하는 ‘공시대상기업집단’에서도 제외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슈펭글러의 ‘역사순환론’을 금호의 부침에 대입시키면 ‘가을’쯤에 접어든 셈이다.

 

지역민들 허탈…“금호그룹 잘 됐으면”

금호고속은 호남의 자존심이었다. 가난 때문에 서울에 간 호남인들에게 금호고속의 로고인 거북은 고향을 이어주는 존재였다. 지금은 금호고속으로 바뀌었지만 ‘우정의 거북이’ 광주고속은 다른 ‘버스’를 이용하면 왠지 미안한 감정이 들 정도로 호남민과 호흡을 같이 해왔다. 굴러다니는 자동차 타이어에 금호 로고가 박혀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일상적 일이 됐다. 지역민들은 금호그룹의 재계 위상이 한 단계 올라갈 때마다 마치 내 집의 곳간이 채워진 듯한 뿌듯함으로 기뻐했다. 거기에는 기업들이 말하는 경제적 논리란 없었다. 그것은 어떤 논리를 뛰어넘는 ‘호남과 금호’의 숙명이었다. 그래서 십수 년 전에 지역성 극복을 내세워 ‘광주고속’을 ‘금호고속’으로 바꿨을 때 지역들은 서운한 감정을 갖고 있으면서도 충분히 이해를 했다. 

아시아나항공 매각 소식에 최고 경영진의 과욕이 빚은 참사라는 비난여론이 없지 않지만 지역 경제계와 지역민들은 허탈해 하면서 안타깝다는 반응이다. 지역경제계 한 인사는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대표기업이 없어진다는 소식에 허탈함을 금할 수 없다”며 “최선의 방법이 그 길 밖에 없는지, 다른 대안을 마련해봤으면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심지어 경제 분야에서 줄곧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온 광주경실련도 최근 성명을 내고 “정부와 산업은행은 금호아시아나가 호남지역의 대표적인 향토기업이란 점을 감안해 적극적이고 전향적인 해결 방안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했다.

 

‘뜨는 별’ 호반…“잘 나갈 때 몸 제대로 낮췄나” 

전통 맹주 금호가 이같이 부침을 거듭하고 있는 틈을 타 승승장구하며 떠오른 신흥 강자가 호반건설이다. 광주지역 중소 건설사로 출발한 호반건설은 창사 25년 만에 호남의 맹주를 노릴 정도로 성장했다. 호반은 2017년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됐다. 이는 금호 대항마로서의 대내외적인 ‘공인 인증’으로 충분했다. 이처럼 호반이 몸집을 키워 금호와 대등적 역학관계를 형성하면서 금호와 호반 간 ‘호남혈투’는 표면화됐다. 광주지역 경제계를 대표하는 광주상공회의소 회장 자리는 지역 경제권력 향배를 가늠하는 리트머스 종이와 같다. 범제조업과 건설업을 대표하는 두 진영은 회장 인선과 관련해 입김이 세게 미치기 때문이다.

2015년, 당시 광주상의 회장선거는 박흥석 현직 회장과 김상열 호반건설 회장 간 2파전 양상이었다. 세간에선 이를 금호와 호반 간 대리전으로 바라봤다. 금호가 박흥석 회장을 지원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결국 이 대결의 승자는 호반 김상열 회장이었다. 호남의 맹주를 자임해왔던 금호의 자존심이 크게 상할 수밖에 없는 결과였다. 이후 금호에 대한 호반의 도전은 더욱 노골적(?)이었다. 워크아웃 졸업 무렵 금호산업 인수전에 뛰어들어 박삼구 회장과 경쟁하고, 금호가 감당 못해 시장에 나온 대우건설 인수전에 뛰어들어 우선협상자로 낙점되기도 했다. 이후 대우건설의 해외사업장 부실이 드러나면서 인수를 철회했지만, 지역민들에게 호반이라는 이름을 선명하게 각인시켜줬다는 점에서 호반의 전략적 승리로도 읽힌다. 

지역 현안사업도 ‘호반 천하’다. 비록 광주도시공사와 실시협약 실무협상에서 레지던스호텔 건립을 둘러싼 이견으로 발을 뺐지만, 1조2000억원 규모의 어등산관광단지 조성 우선 사업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압권은 지난 1월 벌어진 민간공원 특례사업 2단계 사업 대상 중 하나인 중앙공원 2지구의 우선협상자 변경이다. 여기도 주인공은 호반이다. 광주시 공모에 호반건설과 금호산업이 나란히 참여해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최초 선정된 사업자는 금호산업이었다. 하지만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에 대한 광주시 특정감사가 실시된 뒤 결과는 뒤집어졌다. 호반이 부활하고 금호가 탈락한 것이다.

우선 협상자 지위를 잃은 금호산업 내부 분위기는 험악했다. 임직원들이 ‘소송전으로 가도 승산이 있다’고 제언했지만, 박삼구 회장은 “지역 발전과 화합 차원에서 양보하는 것이 맞다”며 법정 소송을 접었다. 대신 참다못한 지역 시민단체가 수사와 감사를 청구해 현재 감사원 감사가 진행 중이다. 

이는 뜨는 권력과 지는 권력의 극명한 대비를 한 눈에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지역 경제단체 한 관계자는 이들 사안이 돈의 문제가 아닌 양 기업 간 자존심 대결이 됐다고 촌평한다. 최근에 만난 광주시 한 고위 간부는 이렇게 말을 보탰다. “왜 하필 금호와 호반이 사사건건 맞붙어서….” 심판도 괴롭다는 하소연이다.

두 기업의 대결을 바라보는 지역사회의 심경 또한 복잡하다. 지역경제계 한 관계자는 “두 기업이 지나친 경쟁을 벌이다 자칫 지역경제에 타격을 입힐까 우려된다”며 “호반 김상열 회장은 평소 잘 나갈 때일수록 몸을 낮추자는 겸손의 경영철학을 강조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최근 지역에서의 행보를 보면 실망스러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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