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르담 대성당 화재…“9·11 테러 때 월드트레이드센터 보는 듯”
  • 최정민 프랑스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4.19 15:00
  • 호수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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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적 재앙” 프랑스 올스톱시킨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재건 방식 두고 갑론을박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이튿날인 4월16일 아침 8시, 파리 하늘에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850년 역사의 대성당 첨탑을 주저앉힌 화마가 겨우 잡힌 지 4시간여 만이었다. 조금 일찍 내렸다면 불길을 잡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남기는 빗방울이었다. 화재가 발생한 4월15일 파리의 날씨는 구름 한 점 없는 19도의 건조한 날씨였다. 불길이 빠르게 번지는 데 한몫했다.

서양 고딕 양식의 절정이자, 프랑스 가톨릭의 중심인 노트르담 성당이 사고로 추정되는 원인불명의 화재로 큰 피해를 입었다. 지붕이 전소됐으며 95m 높이의 첨탑마저 무너져 내렸다. 유럽의 고딕성당 지붕은 방주(배)를 뒤집어 놓은 형태다. 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에서 기인한다. 성당은 노아의 방주와 같은 구원의 장소를 뜻하기 때문이다. 노트르담 성당의 경우 벽과 종탑은 돌로 돼 있지만, 지붕 내부 골격은 참나무로 촘촘히 얽혀 있다. 이번 화재로 전소된 부분이기도 하다. 참나무 골격이 지탱하는 지붕의 구조는 하늘에서 보았을 때 십자가 모양이다. 이번 화재 당시 파리 소방청의 드론이 촬영한 영상에서 성당을 태우는 불길이 십자가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 EPA 연합·AP 연합·UPI 연합
ⓒ EPA 연합·AP 연합·UPI 연합

“꽃에 물 주나” 더딘 진화에 파리 시민들 분통  

화재 이튿날 아침 9시, 노트르담 성당 맞은편 센 강변엔 첼로 선율이 흘렀다. 프랑스의 첼리스트 고티에 카푸송이 자신의 첼로를 들고 추모 연주를 한 것이다. 전날 미국 순회공연에서 돌아와 노트르담 화재 사건과 맞닥뜨린 카푸송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한다. 연주를 마치고 프랑스 라디오 ‘유럽 1’과의 인터뷰에서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었다”고 말하며 “마치 2001년 미국 9·11 당시의 월드트레이드센터를 보는 느낌이었다”고 덧붙였다.  

실제 노트르담의 전소 장면은 발화 직후인 오후 7시경부터 프랑스 각종 보도 전문채널을 통해 생중계됐다. 미국 9·11 사태가 실시간으로 전파를 탔듯 노트르담 화재 현장도 바로 안방으로 전해졌다. 망연자실하게 화재 광경을 지켜보던 시민들과 방송 진행자들은 화재 진압이 더디자 조급함을 감추지 못했다. 좀처럼 불길을 잡지 못하는 진압 과정을 두고 “헬리콥터로 물을 뿌려야 한다”고 트위터 훈수를 날렸던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처럼, BFM TV의 진행자는 생방송 중 “지금 꽃에 물 주고 있는가”라며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다. 실제 불타는 노트르담을 향한 소방차의 물줄기는 단 두 줄기였다.
센 강을 지척에 두고도 불을 끄지 못해 첨탑이 더욱 빠르게 무너져 내리자 시민들도 방송 진행자들도 말을 잇지 못했다. 프랑스의 문화유산 홍보대사이자 역사 전문 방송인인 스테판 베른은 “이것은 국가적 재앙”이라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화재 이튿날, 노트르담 주변은 평소의 배가 넘는 인파가 몰려들어 경찰과 시위 진압을 담당하는 보안기동대가 교통통제와 보행자 보호에 진땀을 빼는 모습이었다. 피해가 집중됐던 성당 후면부를 바라볼 수 있는 노트르담 동쪽의 투르넬 다리에는 전 세계에서 몰려온 중계차량이 줄지어 운집했으며, 역설적이게도 노트르담 주변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노트르담 대성당의 모습을 사진에 담고 있었다.

노트르담 화재는 프랑스 정계의 모든 쟁점 사안을 올스톱시켰다. 사고 당일 진행하기로 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담화는 물론, 이튿날 기자회견을 비롯한 모든 일정이 취소됐다. 인도양에 위치한 프랑스령인 마요트섬을 방문 중이었던 내무부 장관은 급거 귀국했다. 15시간 만에 불길이 완전히 잡히고, 그나마 두 종탑의 건재함에 한숨을 돌린 프랑스 당국은 사건 경위 조사와 복구 대책 마련으로 분주했다. 화재 후 열린 프랑스 각료회의는 모든 현안들을 뒤로한 채 오로지 노트르담 화재에 집중했다.

이번 화재로 노트르담 성당 지붕이 전소됐으며 95m 높이 첨탑도 무너졌다. ⓒ TASS 연합
이번 화재로 노트르담 성당 지붕이 전소됐으며 95m 높이 첨탑도 무너졌다. ⓒ TASS 연합
불타는 노트르담 성당을 지켜보는 시민들의 마음도 함께 무너져 내렸다. ⓒ UPI 연합
불타는 노트르담 성당을 지켜보는 시민들의 마음도 함께 무너져 내렸다. ⓒ UPI 연합

철저한 고증이냐, 효율적 재건이냐 

현재 노트르담 성당의 재건 방식은 두 가지 선택지로 귀결된다. 최대한 철저한 고증을 거쳐 이전과 똑같은 구조로 재건할 것인가와 좀 더 공학적이고 효율적인 재건을 할 것인가로 나뉜다. 두 방법은 일단 재건에 사용될 자재부터가 상반된다. 전자는 참나무 목재를, 후자는 시멘트나 철골을 사용한다. 

아직 재건에 소요될 시간을 예측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시멘트 등을 이용한 효율적 재건은 현재 마크롱이 천명한 ‘5년 내 재건’ 목표와, 안 이달고 파리시장이 주장하고 있는 ‘2024년 파리올림픽 개최 이전 완료’ 계획을 가능케 한다. 정부 및 정치권 인사들 가운데 이러한 방식을 선호하는 목소리가 크다. 신속한 재건 진행을 찬성하는 또 다른 대표적인 인사는 자크 랑 전 문화부 장관이다. 그는 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 시절 파리 10대 건축사업을 이끈 장본인이다. 루브르 박물관 앞 유리 피라미드 조형물과 바스티유 오페라, 신(新)개선문, 현재 그가 재직하고 있는 아랍문화원까지, 파리의 개념비적인 건축물이 모두 그의 재직 시절 이뤄졌다. 

반대로 신속한 공사보다 철저한 고증을 거쳐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대표적인 인물은 문화 사절단이자 프랑스 유명 방송인인 스테판 베른이다. 그는 “보이지 않는 곳까지 이전과 똑같이 재건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성당 내부 참나무 골조까지 원형 그대로 만드는 게 노트르담의 정신을 보존하는 방향이라는 것이다. 참나무 마련이나 재건 인력 채용 등에 대한 걱정은 있지만 최대한 원칙을 고수하며 진행하자는 입장이다. 이미 프랑스 보험사인 그루파마는 자신들이 보유한 참나무 1300그루의 제공 의사를 밝혔다. 그루파마는 노르망디 지역에 1000ha 규모의 사유림을 소유하고 있다. 보수공사에 소요될 인부 역시 각계에서 쏟아진 성금으로 어렵지 않게 모을 전망이다. 

노트르담의 보수공사 방향은 어느 쪽으로 결정되든 논란을 완벽히 피할 순 없어 보인다. 어떻게 결정돼 재건이 이뤄진들, 건물과 함께 타들어간 통탄의 마음을 온전히 달랠 순 없을 것이다. 한국 숭례문 화재 참사에서 경험했듯, 이미 불타 없어진 공간의 역사와 가치가 외양의 재건으로 완전히 살아날 순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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