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원내대표 선거, ‘이해찬 중심 단일대오’ 먹힐까
  • 차윤주 정치전문 프리랜서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4.20 10:00
  • 호수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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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년 대세론’과 ‘이인영 대망론’ 사이, 민주당 원내대표 선거가 촉발하는 친문의 판도 변화

대세론은 꺾였다. 그렇다고 다른 대망론이 그 자리를 차지한 것도 아니다. 그래서 더 달아오르고 있다. 집권여당의 원내사령탑 선거 얘기다. 5월8일 있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선거는 여당의 내년 4월 총선전략은 물론, 향후 ‘친문’으로 대표되는 여권의 권력지형 변화를 가늠할 빅 이벤트다. 강력한 친문 단일대오는 서서히 그 균열의 조짐을 드러내고 있다.

수도권 3선 김태년(경기 성남 수정), 이인영(서울 구로 갑), 노웅래(서울 마포 갑) 의원의 3파전으로 경쟁구도가 확정됐다. 당초 김 의원의 완승으로 김빠진 선거가 될 것이란 초반 판세 전망이 이 의원의 출사표로 무색해졌다. 두 주류의 혈전으로 비주류인 원내대표 3수생 노 의원도 오히려 해볼 만한 선거가 됐다고 벼르고 있다.

2017년 5월18일 문재인 정부의 중국 특사 자격으로 출국하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와 김태년 정책위의장. ⓒ 연합뉴스
2017년 5월18일 문재인 정부의 중국 특사 자격으로 출국하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와 김태년 정책위의장. ⓒ 연합뉴스

 

이해찬 대표에 대한 물음표 확산이 변수

당초 ‘김태년 대세론’은 내년 총선이 친문체제로 치러질 수밖에 없다는 공감대 속에 힘을 얻었다. 당권을 쥔 이해찬 대표의 진두지휘 아래 친문 단일대오로 총선에서 승리하자는 것이다. 그것이 문재인 정부도, 민주당도 사는 길이란 암묵적 합의가 팽배했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세는 여전히 견고하다. 집권 초기 80%를 넘나들 때와 비할 바 아니지만, 현재 유지 중인 40% 중후반대 지지율은 박근혜 정부 취임 첫해 국정평가와 엇비슷하다. 지난해 지방선거에 이어 다가올 총선 역시 문재인 간판으로 치를 수밖에 없다는 계산이 나온다. “아직 (친문) 판을 갈 때가 아니”라는 얘기다.

김 의원은 원내대표 체급인 민주당 3선 의원 중 ‘친문 핵심’ 수식어가 가장 잘 들어맞는 인물이다. 지난해 8월 취임한 이 대표가 김 의원에게 한 번 더 정책위의장을 맡긴 것도 그 때문이다. 정부 출범 당시 국정기획자문위 부위원장을 맡아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도 제 손으로 다듬었다. 이 대표와는 더없이 각별하다. 김 의원은 지난해 원내대표 선거 출마를 노렸지만 이 대표의 중재로 홍영표 원내대표에게 자리를 사실상 양보했다. 이후 지난해 12월 정책위의장직을 내놓으며, 이 대표의 전폭적 지원 아래 결전을 준비해 왔다. 

올해 연말 문재인 정부 임기가 반환점을 돌고 나면 청와대 그늘에서 벗어나려는 원심력이 갈수록 당내에서 커질 것이다. 흩어지려는 힘의 크기와 방향을 제어해야 하는 이 대표의 무기는 총선 공천권으로 대표되는 강한 리더십이다. 이 대표는 이미 당권 레이스에서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길을 깔아놨다. 어느 때보다 강한 권한을 행사할 이 대표와 합심해 총선 승리를 이끌 러닝메이트가 누구일지 답은 나와 있다는 게 당권파들의 얘기다.

대세론에 균열을 일으킨 것은 86그룹(80년대 학번, 60년대생) 맏형 이인영 의원의 뒤늦은 출마 결심 때문이다. 중립 성향의 노웅래 의원과 달리 이 의원은 확실한 지지기반이 있다.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초대 의장’ 출신으로 86그룹과 중진, 이른바 ‘부엉이 모임’ 친문 의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김근태계’ 모임인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 개혁 성향 의원들의 정책연구 모임인 ‘더좋은미래’에 지원군들이 포진해 있다. 최근 당 안팎에선 “이인영이 정치생명을 건 것 같다”는 말이 나온다. 친화력 없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이 의원이 당내 의원들과 적극 스킨십에 나섰다는 얘기가 들린다. 

이 의원과 동일시되는 86그룹은 위기감 아래 단단히 뭉쳐 있다. 존재감 없는 기득권 세력, 낡은 운동권이란 곱지 않은 시선 때문이다. 특히 “지금까지 이인영(86그룹)이 정치력을 보여준 적 있느냐”는 질타가 뼈아프다. 이번 정부에서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정도를 제외하면 86그룹은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이 의원을 지지하는 이들은 “의도적 소외”라고 억울해하지만, 당권파들은 “능력이 없는 것”이라고 냉소한다. 3월 개각 당시 입각 0순위로 꼽혔던 86그룹 스피커 우상호 의원이 결국 당 잔류로 결정 났을 때도 미묘한 파장이 있었다. 다음 총선에서 86그룹이 궤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크다.

4·3 재보선은 이 의원 지지 세력이 움직일 공간을 만들어줬다. 민주당은 기초의원을 포함해 한 석도 얻지 못하면서 심상찮은 PK(부산·울산·경남) 민심을 확인했다. 21대 총선 공천을 주도할 ‘이해찬-김태년’ 투톱체제, ‘친문 패권주의’에 대한 견제심리가 고개를 들고 있다. 친문 투톱으로는 확장력을 기대하기 어렵단 우려에 ‘친문이 다 해먹는다’는 야당의 프레임 공세도 불을 보듯 뻔하다. 무엇보다 이해찬 대표에 대한 의문부호가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내년 총선에서 240석을 휩쓸 것”이라는 등의 말로 괜히 야당을 자극하는 등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터뜨리는 설화에 당내에서도 못마땅해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당권파들의 시각은 다르다. “이해찬-이인영이 나란히 선 그림을 그려보라. 당의 중심은 당 대표다. ‘케미’까지는 아니어도 큰 소리는 안 나야 하는데, 부드럽게 잘 굴러갈 그림이 아니다. 총선을 앞두고 불협화음을 내는 지도부를 원할 현역은 없다.”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 ‘이인영 한번 키워보자’는 공감대가 형성되면 모르겠지만 86그룹엔 임 전 실장이 버티고 있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 시사저널 박은숙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 시사저널 박은숙

 

‘新친문’ 뜨나…친문 분화의 분수령 될 듯

전해철 의원을 비롯한 친문 부엉이들이 이 의원을 지지하면서 이번 선거가 친문 분화의 분수령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전 의원은 원래 본인 출마 욕심이 있었지만 이해찬 대표와 관계 회복이 안 돼 대신 이 의원을 밀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어찌 됐든 이 의원이 원내사령탑으로 2인자가 되면 당권파로 분류되지 않는 친문들이 세를 불릴 계기가 된다. 이른바 ‘신(新)친문’ 정립이다. 

지난 당 대표 선거에서 ‘이해찬-김진표’로 갈라졌던 친문이 한 번 더 갈림길에 선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대통령 임기 후반 당의 구심점이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분화가 본격화할 것이란 신중론도 팽팽하다. 최근 청와대 인사들이 대거 당으로 들어왔다. 청와대가 총선에 뒷짐만 지고 있지는 않을 것이란 신호로 읽힌다. 비문 박영선·진영 의원이 입각한 것도 친문체제 굳히기의 밑그림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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