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 “늦은 사춘기 벗어나게 해준 치유의 시간이었다”
  • 하은정 우먼센스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4.20 12:00
  • 호수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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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막다른 골목의 추억》으로 돌아온 ‘배우’ 소녀시대 수영

‘소녀시대’ 수영이 ‘배우’ 최수영으로 돌아왔다. 최근 영화 《막다른 골목의 추억》으로 성공적인 스크린 데뷔식을 치렀다. 주연배우로 나온 이 작품에서 수영은 예전보다 더 의연해지고 설렌 표정이 역력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수많은 영화 오디션에 도전했다는 수줍은 고백을 들어보니 이번 스크린 데뷔는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4월4일 개봉한 영화 《막다른 골목의 추억》은 애인을 찾아 나고야에 간 한국인 여행객 유미가 우연히 들른 막다른 골목의 카페 엔드포인트에서 카페 점장 니시야마를 만나 치유받는 이야기다. 담담하게 자신의 상처를 극복하는 유미의 시선을 오롯이 따라가는 영화다. 저예산 영화이자 한·일 합작 프로젝트인 이번 영화는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여성 작가, 여성 감독, 여성 캐릭터가 함께했다는 것도 의미가 있다. 

ⓒ 영화사 조아
ⓒ 영화사 조아

세계적인 작가의 작품을 연기했다. 어땠나.   

“사실 제 윗세대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열풍을 제대로 겪은 세대예요. 세계적인 작가님의 작품에 출연한다는 게 너무 영광이기도 하지만 혹여 누가 될까 조심스럽기도 했어요. 너무 감사하게도 작가님께서 선물과 편지를 보내주셨어요. ‘훌륭한 배우’라고 칭찬도 해 주시고. 일본에서 꾸준히 연기해 줬으면 좋겠다고 써줘서 몸 둘 바를 몰랐어요.” 

처음 겪는 영화 작업은 어땠나.

“많은 걸 얻었어요. 영화라는 작업을 왜 사람들이 좋아하는지 알게 됐거든요(웃음). 영화는 철저히 감독의 예술이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팀 예술이기도 해요. 그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서 ‘아름다움’을 만드는 작업이잖아요. 지난해엔 부산국제영화제에도 다녀왔어요. 배우로서 다녀왔기에 기분이 묘했고 행복했어요.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현장에 가보니 분위기에 압도되는 게 있더라고요(웃음). 긴장돼서 입술을 계속 깨물면서 레드카펫을 걸었던 기억이 나요. 전 세계 영화인들과 그 순간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게 좋았어요.”  

예전부터 영화에 대한 갈망이 있었나.

“‘소녀시대’ 때부터 영화 오디션을 수도 없이 봤어요. 한데 오디션 문을 열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렇지만 제가 떨어진 작품 속 캐릭터를 다른 배우가 연기하는 걸 보면, 속상하지만 인정하게 되던걸요. 너무 잘하시니까요(웃음). 제가 가수 출신이라는 이유로 기회를 못 잡았다고는 생각하진 않아요. 도경수씨나 임시완씨를 보면 두 분야에서 아주 잘 해내고 있잖아요. 결국 제 문제인 거죠. 배역과 연기라는 건 결국에는 본인이 뛰어넘어야 되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첫 영화인데 주연이다. 부담도 있었겠다. 

“처음부터 끝까지 유미가 가진 정서를 집요하게 따라가는 작품이에요. 그래서 두려움도 있었어요. 혹여 제 모습이 큰 스크린에서 튀어 보이면 어쩌나 하는…. 옆에 있을 법한 사람이어야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들이 따라갈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유미는 누구나 겪을 법한 아픔을 겪어요. 그리고 낯선 곳에서 굳은살이 박일 때까지 자기 아픔을 치유하죠. 성숙한 이별의 방법을 보여주는 여성 캐릭터의 사례로 비치길 바랐어요. 처음 대본을 봤을 때, 단순히 남녀 간의 이별이 아닌, 성장통에 대한 해답 같아서 좋았어요.”

한·일 합작이다.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

“모두 으싸으싸 하는 분위기!(웃음). 저예산 영화라 저 역시 연기에만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거든요. 같이 짐도 옮기고 같이 고민하고 대화도 많이 나누었죠.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사실 저는 이 영화가 한·일 합작이라는 점도 좋았어요. 어렸을 때 일본에서 먼저 데뷔했고, 일본어가 저의 세컨드 랭귀지이기도 해서 일본에서 연기할 날이 오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하기도 했는데 기회가 빨리 온 거죠. 한국 스태프나 일본 스태프들과 배우 사이에서 통역도 했답니다. 협업 형태가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성장에 관한 영화다. 개인적으로도 성장했을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영화를 찍었을 당시, 제게도 늦은 사춘기가 왔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영화는 제게 무척 특별해요. 그 사춘기를 벗어날 수 있게 치유의 시간이 되어준 작품이거든요. 극 중 유미처럼 묵묵히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가 성장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아요. 소설 속에도 공감되는 문장이 있었어요. ‘흉측한 이야기들이 흉측하게만 느껴지지 않았다’라는 문장인데, 예전엔 흉측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공감이 되지 않았다면 이제는 ‘무슨 사연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공감 능력이 생긴 여성으로 바뀐 거죠. 그 점이 저와 비슷했어요. 동시에 모두가 나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인정하게 됐어요. 과거엔 대중들에게 공감을 받기 위해 늘 해명하는 삶을 살았거든요. 이제는 그냥 ‘나는 나야’라는 시선으로 바뀌게 됐어요.”

30대가 됐다. 숫자에 의미가 있나. 

“지난해에는 많은 고민을 했지만 이젠 담담해요. 막상 30대를 맞이해 보니 바뀌는 게 크게 없더라고요. 결국 제가 그동안 ‘30’이라는 숫자에 동화 같은 프레임을 씌우고 살았던 거죠. 저는 여전히 고군분투 중이고, 인정받고 싶고, 성장 중이랍니다.”

수영에게 소녀시대는.

“우리는 같은 여성이고,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이고, 함께 성장했어요. 그것도 10년 동안요. 그 시간들을 함께 견뎠기에 느끼는 것도 비슷해요. 저는 배우로서 잘돼야 한다는 생각보다 ‘소녀시대’로 다시 모였을 때 멋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생각이 커요. ‘소녀시대’란 타이틀을 제대로 지켜내고 싶거든요.” 

데뷔 12년을 맞이했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스스로에게 어떤 말을 해 주고 싶나.  

“‘네가 연예인이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라고 말해 주고 싶어요. 지금 활동하는 후배들을 보면 어쩜 그렇게 노련할까 감탄하거든요. 어릴 때 저는 내 말이 어떤 영향력을 미치고 또 어떤 말을 해야 사람들이 좋아하는지 몰랐어요. 그래서 그냥 열심히만 했던 것 같아요. 한때는 ‘대중들이 수영에게 원하는 정답이 있는 걸까’ ‘그 정답에서 벗어난 말을 하면 싫어할까’를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어요. 계속 사랑만 받으려고 애썼던 거죠. 대중의 평가를 두려워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어떤가.

“요즘엔 많은 연예인들이 꼭 정해진 정답을 말하진 않잖아요. 스스로에 대한 아이덴티티가 확고하고, 또 그것을 드러냈을 때 대중 또한 유별나게 보지 않고 오히려 ‘멋있다’라고 말해 주는 시선도 강해진 것 같아요. 저 역시 과거엔 대중들의 한마디에 상처 받았다면 요즘은 좀 의연하게 바뀌었답니다. 성장 중이에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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