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미투 당할 염려 없는 사랑?
  • 노혜경 시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4.20 17:00
  • 호수 154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애’와 ‘성폭력’ 간 그 이상한 거리

한창 언론에 ‘#미투’라는 말이 유행할 무렵, 페이스북에 돌아다니던 황당개그 중에 “#미투 때문에 연애를 못 하겠다”는 말이 있었다. 웃자고 하는 얘기지만 이런 얘기를 실제로 하는 사람들을 들여다보면 그냥 웃을 수만은 없는 경우가 생긴다. 

20대 비혼 남자사람이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노력해 봐요, 분발해 봐요, 잘 배우면 좋은 결과 있을 거예요”라고 격려하고 싶다. 그러잖아도 말 걸기 무서운 여자사람에게 어떻게 접근을 해야 성폭력을 저지르지 않을 수가 있나. 단순히 무지해서, 또는 잘못된 관습을 배운 데서 오는 두려움은 제대로 된 학습을 통해서 얼마든지 변화가 가능하다. 선배 남성이나 선배 여성으로부터 물려받은 성 역할 고정관념이 연애에도 그대로 통용되던 호시절은 갔지만, 그 호시절에도 연애 못 하는 남녀사람은 많았다. 배우고 연습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특별히 #미투,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성폭력을 경계하는 페미니즘의 가르침이 연애를 방해하는 것은 아니다. 

연애는 참으로 어려운 인간행위다. 그럼에도 너도나도 연애를 하고 싶어 하는 이유는 연애야말로 자아의 고집 안에 갇힌 인간이 껍질을 깨고 타자를 만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경로라서다. 몰입과 열정이 저절로 따라오는 인간행위가 연애를 빼고 보면 그리 많지 않다. 젊음의 힘을 빌려야 겨우 넘어설 수 있을 만큼 자아의 껍질이 두꺼운 현대인에겐 더욱 그렇다. 
그러나 뜻밖에도, 나이도 먹을 만큼 먹고 가정도 있는 소위 ‘아재’들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땐 정말 난감하다. #미투 당할, 다시 말하면 성폭력으로 고발당할 염려를 포함하는 것이 그분들이 상상하는 연애라는 말 아니겠는가. 나이 들고 결혼했다고 로맨스를 꿈꾸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실제 세상에서 연애라는 것은 책임과 예의가 요구되고 무엇보다 훈련이 필요한 일이다. 스스로 연애할 자격을 갖추는 훈련과 상대에게 기대할 것과 기대해서는 안 되는 것을 구별하는 훈련이 포함된다. 그래서 나이 든 아재들의 로맨스 상상에 등장하는 연애가 이혼을 불사하는 정열이 아니라 자칫 #미투 당할지도 모를 종류라는 고백은 참으로 부끄러운 이야기다. 

ⓒ pixabay
ⓒ pixabay

 

‘보상’이 아닌 ‘동반자’로 여성을 바라봐야

다시 연애 못 하는 남성에게로 돌아가 보면, 뜻밖에도 많은 남성들이 꿈꾸는 연애가 여성들이 보기에는 성매매나 성폭력에 좀 더 가까운 경우가 많다. 여성을 대등한 파트너로 바라보는 인식이 현저히 부족한 것이다. 여성이 남성들의 연애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더 나아가 남성들 역시 연애를 안 해도 세상 사는 데 큰 문제는 없다. 그런데도 자신에게 ‘애인’으로서의 여성이 없다는 사실에 분노하거나 열등감을 느끼는 이들이 적지 않은 이유는 뭘까. 

그것은 근대자본주의 사회의 남성에게는 적절한 연령대가 되면 여성이 주어져야 한다는 환상이 아직도 위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연애로 결혼하여 정상가족을 형성할 수 있는 것이 근대자본주의 사회의 남성노동자의 권리이자 보상이라는 뜻이다. 이 말은 경쟁에서 성공한 남성에겐 보다 많은 보상의 일환으로 잉여의 여성이 주어진다는 것을 뜻할 수도 있다. 이미 혼인한 ‘아재’들의 착각은 여기서 기인하는 게 아닐까? #미투가 까발린 진실은 참 적나라하기도 하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