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이 든 성배’ 민영화의 위험한 그림자
  • 조창완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4.21 11:00
  • 호수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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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과 언론 넘나드는 이광호 레디앙 공동대표의 《착한 민영화는 없다》

공공기관보다는 기업이 소비자에게 잘 대처한다는 이유로 민영화는 상당히 익숙한 논리가 됐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통신, 담배인삼공사, 철도공사 등 많은 공기업들이 이미 민영화 수순을 밟았거나 밟고 있다. 이런 흐름에 반기를 든 책이 최근 출간됐다. 생의 대부분을 노동현장에서 글을 쓰는 일로 살아온, 전태일재단 운영위원이자 언론매체 레디앙의 공동대표인 이광호씨가 쓴 《착한 민영화는 없다》로, 학생층부터 장년층까지 편하게 읽을 수 있게 민영화가 담고 있는 독소를 소개하고 있다. 

그는 왜 민영화 문제를 적극적으로 추적했을까. ‘하나의 유령이 한국을 떠돌고 있다. 민영화라는 유령이. 누가 독이 든 사과를 권하는가’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그에게 민영화는 인간의 삶에 필수적인 공공재를 접수한 기업들의 무자비하고 악랄한 행태와 선량한 시민들의 피해로 압축할 수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의문점은 남는다. 자본주의 사회인데, 어디까지 민영화를 막아야 하는 것일까. 

《착한 민영화는 없다》이광호 지음│내일을 여는 책 펴냄│248쪽│1만5000원
《착한 민영화는 없다》이광호 지음│내일을 여는 책 펴냄│248쪽│1만5000원 ⓒ 조창완 제공

악의적 민영화가 문제

“이 책에서도 말했지만 자본주의 체제에서 90% 이상은 민간기업이다. 이 기업 활동이 생산의 중추이자 혁신의 주체다. 다만 공공재 공급을 민간 사기업에게 담당하게 하는 것은 공익보다 이윤 우선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보고, 그 부분에 대해 비판적 접근을 한 것이다. 대표적으로는 의료, 철도, 상하수도, 땅, 통신 등이 그렇다. 물론 이 역시 논쟁의 여지가 있다. 문제는 악의적 민영화다. 박근혜, 이명박 정부는 의료와 철도 민영화를 위한 정책을 폈으나 ‘촛불’이 이를 저지했다.”

실질적으로 이 책이 다루는 주요한 소재도 공공재다. 의료, 철도, 전력, 상하수도, 토지 등이다. 악질적인 사례지만 민영화된 교도소의 배를 채우기 위해 가벼운 범죄를 저지른 학생에게 3개월 실형을 선고한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여고생 사례가 그런 것이다. 많이 알려졌지만 맹장 수술 수가가 1500만원(한국은 200만원), 제왕절개수술 수가가 1900만원(한국은 180만원)에 달하는 미국 의료 환경도 소개한다. 

“민영화의 가장 나쁜 사례는 미국의 의료제도, 영국의 철도(안전 문제와 높은 요금), 우리나라 통신(한국통신공사에서 KT로) 등이다. 서울에서 부산 정도 거리의 영국 철도 1등석 가격은 최고 47만원에 달한다. 대부분 민영화 과정에서 대규모 노동자 해고가 발생하고 가격도 올라갔다. 문재인 대통령이 통신요금 인하(기본 요금제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으나 당선 후 업계의 반대로 이를 이루지 못한 것은 민영화의 폐해를 되돌리기가 정권에도 힘들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명박 정부 이후 한국에서도 민영화는 큰 화두였다. 공항 등도 민영화 대상이 됐지만 다행히 철회됐다. 다만 다양한 형태의 민영화 문제점이 있는데, 이 가운데는 맥쿼리처럼 투자를 통해 민영화의 형태를 추구하는 이들도 있다. 

“맥쿼리의 지하철 9호선 요금 인상도 그 예다. 이 때문에 서울시와 갈등이 생겼는데, 다행히 부결된 상태다. 지금은 9호선에서는 철수했지만, 법적으로 과도한 이윤을 보장하거나, 세금 특혜, 권력과 유착 의혹 등 수많은 문제점이 따르고 있다. 수많은 국내 SOC(사회간접자본)에 투자하고 있는 맥쿼리의 경우 효율과 가격 인하 효과보다는 정경유착 같은 문제점과 함께 오히려 높은 가격을 책정해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거가대교나 부산~대구 고속도로가 그 예다. 정부가 SOC 개발을 위해 민간 자본을 끌어들이는 것을 무조건 비판적으로 볼 필요는 없지만, 이런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 제도가 있는 글로벌 사회에서 이런 자본 세력을 대적하기는 쉽지 않다. 최근 다양한 문제를 양상하고 있는 제주도 녹지헬스케어 타운의 영리병원 허가 문제가 한 예다. 지난 4월17일 제주시가 제주 녹지국제병원에 대한 조건부 개설허가를 취소했다. 투자자가 소송을 걸 경우 승소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민영화는 정치 문제임을 인식해야”

“영리병원은 국가 차원의 문제다. 보건산업진흥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병원 법인 중 20%만 영리병원이 돼도 국민이 부담하는 병원비가 1.5조원(2.5% 인상) 인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영화 반대론자들은 1000억원대의 손실을 보더라도 여기서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돈 때문에 영리병원을 허가해 주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성형과 피부미용이 중심인 의료관광을 명목으로 국내 의료체계만 흔들어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의료는 상대적으로 좀 편리한 민영화 대상이다. 반면에 철도나 공항 등은 더 큰 인프라이고 대체재가 별로 없는 기본 인프라라는 점에서 한번 민영화되면 그 대안을 찾기 어렵다. 책에서는 제약회사의 독점적 지위를 이용한 사례를 들면서 ‘비탄력적’이라는 단어를 쓴다. 미국 제약회사는 대체약이 없는 말라리아와 에이즈 약을 1만5000원에서 90만원으로 올린 사례도 있다. 이렇게 비탄력적 인프라의 민영화는 치명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방심할 수 없다. 철도도 민영화하기 위해 코레일과 SR로 쪼개놓은 것이고, 의료도 위험하고, 전기도 민영화하려고 발전사를 5개 이상으로 쪼갰다. 민영화 문제는 책에도 썼지만, 인간을 어떻게 볼 것인가(철학), 국가를 어떻게 볼 것인가(정치학), 시장을 어떻게 볼 것인가(경제학)와 관련된 문제다. 한 번에 끝나는 문제도 아니다. 민영화 세력과 공공성 강화 세력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부딪치고 있다. 결국 현명한 시민들이 어떤 정치적 선택을 할 것인가가 중요한 변수다. 잘 알아야 잘 대처할 수 있다. 민영화는 경제, 사회 문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정치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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