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터리 경찰 수사가 살인범 도와…청주 물탱크실 주부 살해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4.22 14:00
  • 호수 154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락인의 사건추적] 청주 물탱크실 주부 살해 사건
단순 가출로 여긴 경찰 초동수사, 한심할 정도로 허술…남편을 범인으로 지목하기도

2002년 6월 대한민국은 한·일월드컵 열기로 뜨거웠다. TV에서는 하루 종일 월드컵 경기를 생방송으로 중계했다. 저녁 9시 뉴스 시간에도 월드컵을 특집으로 편성해 방송했다. 월드컵은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었다. 온 나라의 시선이 한 곳에 쏠려 있을 때가 범죄자들에게는 범행에 나설 더없는 좋은 기회였다. 

ⓒ 일러스트 오상민
ⓒ 일러스트 오상민

6월5일 충북 청주시 흥덕구(현 서원구) 수곡동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주부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날 고등학교 1학년인 송기석군(17)은 7교시를 마친 오후 5시쯤 집에 들어왔다. 그런데 집에 있어야 할 어머니 강정숙씨(43)가 보이지 않았다. 

강씨는 몸이 불편한 남편을 대신해 대리운전으로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다. 이날은 오랜만에 쉬는 날이어서 집에 있었다. 자녀들에게도 “엄마는 오늘 하루 종일 집에 있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런 강씨가 갑자기 사라졌다. 부엌에는 저녁을 준비하다 만 흔적이 있었다. 

송군은 어머니가 밖에 청소하러 갔는가 싶어 거실에 있는 전화기를 들었는데 신호음이 들리지 않았다. 안방에 가서 보니 전화기 선이 뽑혀 있었다. 송군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가만 보니 집 안 분위기도 평소와는 확연히 달랐다. 무더운 초여름 날씨인데도 베란다 문이 꽉 닫혀 있었다. 거실에 있던 소파는 밖으로 튀어나와 있었고, 그 뒤에 있던 붙박이장 문은 열려 있었다. 식탁 의자 하나는 바닥에 넘어진 상태였다. 분명 어머니 외에 다른 누군가가 있던 흔적이었다. 송군과 중학교 3학년인 여동생(16)은 밤새 베란다에 앉아 어머니를 기다렸지만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 날인 6월6일 강씨의 남편 송현섭씨는 자신의 명의로 된 통장 내역을 조회해 봤다. 아내가 실종된 날 카드로 1000만원이 인출된 상태였다. 송씨는 범죄를 예감했다. 평소 100원짜리 하나 허투루 쓰지 않던 아내였다. 이런 아내가 갑자기 거액의 돈을 찾았을 리가 만무했다. 

송씨는 아내가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 보고 경찰에 실종신고를 하러 갔다. 전후 사정을 자세히 말했으나 경찰은 처음부터 단순 가출로 단정했다. 여기에 “요즘 바람난 여자들이 남자와 도망가는 일이 많다. 어디 놀러 갔을 테니 신경 쓰지 말고 며칠만 더 기다려 보라”는 말뿐이었다. 

송씨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직접 아내를 찾아다녔다. 그러다 현금이 인출된 은행에서 뜻밖의 단서를 찾았다. 통장에서 돈을 인출해 간 남성의 모습이 폐쇄회로(CC)TV에 찍혀 있었던 것이다. 송씨는 이 남성의 모습을 출력해 경찰서에 들고 갔다. 이것만 제공하면 곧바로 수사가 시작될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경찰의 반응은 달라진 게 없었다. 오히려 “남자하고 놀러 가려고 돈을 찾을 수도 있지 않느냐”며 강씨를 부정한 여자로 몰아갔다. 

송씨가 “내 아내는 40대 중반이고 사진 속 남자는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인데 무슨 말이냐”고 따졌다. 그랬더니 경찰은 “누구를 심부름시킬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경찰은 강씨가 가출하면서 돈을 인출한 것으로 생각해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이다. 경찰이 수사에 나서지 않자 가족들이 직접 전단지를 돌리며 강씨를 찾아 나섰다. “제발 살아만 있어 달라”는 절박한 심정이었다. 

용의자의 현금 인출 모습이 담긴 CCTV 화면 ⓒ
용의자의 현금 인출 모습이 담긴 CCTV 화면 ⓒ

 

실종 23일 만에 아들이 시신 발견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강씨 집에서는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다. 언젠가부터 집 안에서 뭔가 썩는 냄새가 풍겨오기 시작한 것이다. 옥상으로 가는 계단에는 구더기가 돌아다녔다. 날이 갈수록 냄새는 더욱 심해졌고, 구더기도 늘어났다. 

아들 송군은 냄새의 진원지를 찾아 나섰다. 옥상으로 나 있는 계단을 올라갈수록 악취가 강하게 풍겨왔다. 막상 옥상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니까 냄새는 나지 않았다. 옥상에서 나는 냄새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럼 어디서 나는 것일까. 송군은 의아해하며 옥상 문을 닫고 계단을 내려오려다 옥상 물탱크실이 눈에 띄었다. 그 앞에는 구더기들이 무척 많았다. 

송군은 물탱크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벽과 물탱크 사이에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부패한 시신을 발견했다. 그토록 애타게 찾던 어머니였다. 강씨는 이렇게 실종 23일 만인 6월28일 아들에 의해 시신으로 발견됐다. 

이때가 돼서야 경찰의 수사가 시작됐다. 정확한 사망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시신 부검을 의뢰했다. 하지만 사망원인은 ‘불명’으로 나왔다. 시신의 부패 정도가 심해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수사에 나선 경찰이 유력 용의선상에 올린 것은 다름 아닌 남편 송씨였다. 경찰이 송씨를 범인으로 지목한 이유는 먼저 현관문을 억지로 열려고 한 흔적이 없어 아는 사람의 소행으로 봤기 때문이다. 사건 당일 강씨가 살던 다세대주택에는 여러 사람들이 있었지만 비명소리나 다투는 소리 등을 듣지 못했다는 것도 범인이 강씨와 가까운 사람이라는 추정을 가능케 했다. 이런 정황에 따라 경찰은 남편 송씨가 범인이라고 사실상 단정했다. 수사력도 송씨에게 집중했다. 하지만 송씨에게서 아무런 혐의도 드러나지 않았다. 

경찰 수사는 한심할 정도로 허술했다. 수사의 기본인 확실한 물증과 합리적인 의심이 결여됐다. 편견과 추정에 의해 몰아가다 보니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송씨는 사건 당일 알리바이가 확실했다. 몸이 불편했지만 송씨는 생계에 보탬이 되고자 정수기 판매, 기능성 여성 속옷이나 화장품 판매 같은 일을 했다. 범행이 일어난 시각에 그는 함께 다니는 사업자 일행들과 만나고 있었다.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는데도 경찰은 계속 송씨를 의심했다. 

송씨는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인 1991년 6월 교통사고가 나서 왼쪽 팔을 잃고, 한쪽 다리도 불편한 1급 장애인이다. 이런 송씨가 54kg인 아내의 시신을 한쪽 손만을 사용해 계단 14개를 올라가 물탱크실에 유기했다고 보기에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더욱이 송씨는 아내와의 사이가 각별했다. 그는 사고 이후 약 5년간 병원 생활을 했다. 이때 아내 강씨는 집을 팔고 병원 근처에 방 하나를 얻어 낮에는 남편 곁을 지켰다.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면서 아이들의 양육과 생계를 도맡아서 했다. 

이런 아내를 송씨는 무척이나 고마워하고 아꼈다. 송씨에게 아내는 생명과도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그리고 강씨가 없으면 당장 생계에 위협을 받기 때문에 죽일 이유도 없었다. 

경찰이 송씨를 의심한 것은 비합리적이다. 외부에서 강제로 침입한 흔적이 없다고 해서 꼭 면식범의 소행으로 볼 수는 없다. 집 안으로 들어오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얼마든지 강씨를 속여 현관문을 열게 했을 수 있다. 또 범인이 강씨를 순간적으로 제압했다면 비명소리나 저항을 무력화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 


재수사 움직임 있었으나 지금은 흐지부지

경찰이 초동수사만 제대로 했다면 범인은 얼마든지 잡을 수 있었다. 실종 직후 즉시 수사에 나섰다면 시신도 그만큼 빨리 발견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사망원인을 밝혀낼 수 있었고, 집 안과 시신에 남아 있었을 범인의 지문과 DNA 등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경찰은 편견에 따라 수사에 소극적이었다. 또 알리바이가 확실한 남편을 유력 용의자로 잘못 짚으면서 수사력과 시간을 낭비했다. 경찰이 이렇게 시간을 보내면서 중요한 증거물들이 지워지거나 사라지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보면 범인을 도와준 것은 경찰이나 마찬가지였다.

수사는 여전히 답보 상태다. 사건 발생 9년 만인 2011년 강씨의 딸은 다음 아고라에서 재수사를 요청하는 서명운동을 벌였다. 이후 경찰과 검찰에서 재수사 움직임이 있었으나 지금은 흐지부지된 상태다. 

범인이 남긴 단서들

1. 강씨는 집 안에서 살해당했다.

경찰은 강씨의 시신이 늦게 발견된 것을 들어 외부에서 살해된 후 집 안으로 옮겨졌을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범인이 밖에서 강씨를 살해했다면 굳이 위험천만하게 시신을 다시 집 안으로 들여올 이유가 없다. 그랬다가는 들킬 위험도 상당하다.  

그것보다는 집 안에서 살해한 후 물탱크실에 유기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시신으로 발견될 당시 강씨는 음식을 할 때 쓰던 앞치마를 허리에 두르고 있었다. 실종 당일 부엌에는 음식을 만들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런 것을 볼 때 강씨는 저녁을 준비하다가 살해된 것으로 보인다.

시신이 발견된 곳에는 부패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패액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시신이 부패하면서 쓰러지듯 자리를 옮긴 흔적도 있었다. 처음부터 시신이 그 자리에 있었다는 뜻이다. 물탱크실 입구에서 안을 들여다보면 물탱크와 벽 사이에 끼인 시신이 전혀 보이지 않는 구조였다. 실종 초기 가족들이 물탱크실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고도 시신을 발견하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2. 범행의 목적은 ‘돈’이다. 

강씨는 인터넷 동호회에 가입해 활동했다. 주로 청주 지역 동갑내기들과 채팅으로 수다를 떨었다. 사건 당일 강씨는 오후 3시30분까지 동호회 회원과 채팅을 했다. 아들이 학교에서 끝나고 집에 온 시간은 오후 5시쯤이다. 

1시간30분 사이에 범인이 강씨 집에 침입해 살해하고 시신까지 유기한 셈이다. 강씨의 복장과 저항한 흔적이 없는 것을 보면 성폭행을 의심할 만한 것은 없었다. 

범인은 택배 배달원 등으로 위장한 후 강씨 집에 침입했을 것으로 보인다. 강씨가 현관문을 열자 흉기로 위협해 제압한 후 집 전화로 강씨가 소지하고 있던 신용카드는 물론 마이너스통장까지 샅샅이 잔고를 확인했다. 그런 다음 강씨의 신용카드 비밀번호를 알아낸 후 살해한 것으로 추정된다. 살해 방법은 목 졸림이나 질식사일 확률이 높다. 흉기를 사용했다면 혈흔이 집 안 거실 등에 남아 있어야 하지만 그런 흔적은 없었다. 

3. 범인은 돈을 인출하고 도주할 시간이 필요했다.

범인은 강씨를 살해한 후 상당히 다급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집에 올 시간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카드로 현금을 뽑고 도주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이를 위해서는 시신 발견을 최대한 늦출 필요성이 있었다. 

처음에는 소파 뒤 붙박이장에 유기하려다 여의치 않자 옥상을 생각했을 것이고 계단을 올라가다 물탱크실을 발견, 이곳을 시신 유기 장소로 정한 것으로 보인다. 범인은 또 강씨가 외출한 것처럼 꾸미기 위해 지갑이 들어 있던 가방과 휴대전화를 들고 나왔다. 그리고 지갑에 있던 카드와 휴대전화를 제외한 나머지는 시신 옆에 버렸다. 

범인은 강씨 집에서 빠져나간 후 세 곳을 옮겨 다니며 현금 1000만원을 인출했다. 첫 번째는 사건 당일인 6월5일 오후 5시22분쯤 강씨 집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은행에서 돈을 빼냈다. 그로부터 11분 후인 오후 5시33분 버스터미널 근처에 있는 현금지급기에서 돈을 인출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이틀 후인 6월7일 오전 11시20분 대전에서 인출했다. 시신이 발견되지 않는 동안 충분한 시간을 번 것이다. 

이상한 것은 강씨가 실종된 후 이틀 동안 그의 휴대전화가 청주 시내 이곳저곳을 옮겨 다녔다는 것이다. 범인의 동선과는 달랐기 때문에 이 사건은 공범이 있을 수도 있다. 

4. CCTV에 드러난 범인의 인상착의

범인은 현금을 인출하면서 자신의 인상착의를 남겼다. 모자를 눌러 쓰면서 얼굴이 확실하게 찍히지는 않았지만 주의 깊게 살펴보면 알아볼 수 있는 형태다. 연령대는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 사이다. 키는 170cm 정도며, 운동으로 다져진 듯한 다부진 체격의 소유자다. 둥근형 얼굴에 코가 뭉툭한 것이 특징이다. 현금 인출 당시 짧은 스포츠머리에 안경을 쓰고 있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