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착제 붙은 페트병 ‘우수’ 등급…거꾸로 가는 환경부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9.04.23 09:00
  • 호수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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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잿물로 녹여 떼는 접착식 사용 권고…비접착식 사용하는 일본 등 선진국과 반대

한 해 국내에서 사용되는 페트병 수는 약 500억 개. 1초에만 1590여 개의 병이 쓰이고 버려진다. 그냥 버려지면 수백 년 썩지 않는 ‘환경오염의 주범’이 되지만 깨끗이 재활용되면 그 자체로 돈이 돼, 페트병은 ‘두 얼굴’의 플라스틱으로도 불린다.

그런데 지난 몇 년간, 환경부가 페트병의 재활용률을 떨어뜨리는 ‘이상한’ 규정을 고수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환경부가 인체나 환경에 좋지 않은 접착제가 발린 라벨을 그렇지 않은 라벨보다 사실상 더 우수한 등급으로 규정해 생산을 권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일본·독일 등 ‘재활용 선진국’들의 정책과 역행하는 것이며, 페트병 재활용 처리도 더욱 까다롭게 하고 있다는 게 비판의 요지다. 무엇보다 끓는 양잿물을 이용해 접착제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페트병을 변질시켜 재활용 가치를 떨어뜨린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런데도 환경부가 기존 정책을 계속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 시사저널 이종현
ⓒ 시사저널 이종현

“환경부 규정, 되레 환경오염 일으키는 상황”

국내에 판매되는 페트병의 라벨은 크게 두 가지 형태를 띤다. 접착제가 붙어 있는 ‘접착식 라벨’, 그리고 접착제 없이 절취선대로 뜯으면 병과 바로 분리되는 ‘비접착식 라벨’이다. 시중에는 접착식과 비접착식이 대략 6대4 비율로 판매되고 있다. 환경부는 2013년경부터 접착식 라벨을 1등급(재활용 용이), 비접착식 라벨을 2등급(재활용 어려움)으로 분류했다. 그 기준은 라벨이 물에 뜨는지 여부다. 비접착식 라벨의 경우 재질 자체가 무거워 페트병 조각들과 함께 물에 가라앉는 반면, 접착식 라벨은 가벼워 물에 뜨기 때문에 쉽게 분리해 건져낼 수 있다는 것이다. 환경부는 접착제가 ‘수분리성(물에 녹는 성질)’이기 때문에 라벨이 붙은 병을 물에 띄우기만 해도 병과 라벨이 분리되고 접착제도 제거된다고 밝혀왔다.

그러나 실제 페트병 재활용 과정을 담당하는 현장 상황은 이와 달랐다. 전국 페트병 재활용처리업체는 22곳이다. 이곳들에선 매일 페트병에 남은 접착제 자국을 제거하기 위해 수산화나트륨이 섞인 ‘양잿물’을 펄펄 끓인다. 환경부에서 물에 녹는다고 주장해 온 접착제가 사실 90도 가까운 온도의 양잿물에서만 완전히 녹아 없어지기 때문이다. 시사저널 취재 결과, 이들 22곳이 양잿물을 끓이는 데 드는 가스비와 폐수처리비만 해도 한 해 수억원에 달했다. 그로 인한 2차적인 환경오염도 불가피하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양잿물 끓이는 데 사용되는 가스가 미세먼지로도 배출될 것이며, 폐수의 양 또한 상당히 많을 것”이라며 “환경부 규정이 되레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라벨 부착에 사용되는 접착제로는 독일 헨켈사의 제품이 독점에 가깝게 사용되고 있다. 이 제품은 85~90도의 물에서 분리되는데, 일본·독일 등 선진국에선 잘 사용하지 않거나 아예 사용을 금지한 제품이다. 높은 온도에서 접착제를 녹이는 과정에서 페트병도 변질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녹이기 힘들고 값도 싸지 않은 제품을 수년간 사용하고 있는 데 대해 ‘특정 업체 밀어주기’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비접착식 라벨 사용이 선진국 흐름인데도 환경부가 계속 접착식 라벨을 권고하는 것 또한 헨켈사와 유착 관계가 있기 때문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 환경부는 접착제에 대한 지적이 계속되자 최근에야 주요 공문에 ‘수분리성’ 표현을 ‘열알칼리성(일정 온도에서 녹는 성질)’으로 정정했다. 그러나 문제의 헨켈사 제품 사용은 고수하고 있다.

새 개선안 냈지만 여전히 접착식 라벨 권고

여러 쟁점들이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환경부는 여전히 접착식 라벨을 우선시하는 태도를 지키고 있다. 지난 4월16일 환경부는 2013년 정한 페트병 라벨 등급에 대한 새로운 개선안을 공개했다(그림1 참고). 개선안에 따르면, 등급은 크게 최우수·우수·보통·어려움으로 나뉜다. 물에 뜨면서 비접착식 라벨을 최우수 등급으로 규정했다. 그동안 가장 권고했던 접착식 라벨은 우수 등급에 포함시켰다. 또한 기존에 물에 가라앉는 비접착식 라벨을 ‘재활용 어려움’으로 정했던 것과 달리 이번엔 ‘보통’ 등급에 포함시켰다. 기존의 접착제 사용에 대한 비판 여론을 일부 반영했다는 게 환경부의 주장이다. 

그러나 하나하나 따져보면, 결국 이번 개선안 역시 접착식 라벨을 권고하던 기존안과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환경부가 최우수 등급으로 정한 ‘물에 뜨는 비접착식 라벨’은 현재 국내에 개발돼 있지 않은 재질이다. 전 세계에서도 독일만 보유하고 있으며 우리 시중에 나오기까지 최소 10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즉 국내에 존재하지도 않는 재질을 최우수로 정해 놓고, ‘비접착식’ 라벨도 권장하는 듯한 모양새를 취한 것이다. 결국 우리 유통 사정에 적용했을 때, 여전히 접착식(우수)이 비접착식(보통)보다 더 권고되고 있는 셈이다. 

환경부가 이렇듯 더 낮은 등급으로 규정한 비접착식 라벨은 정말 재활용이 어려울까. 일본 등 주요 선진국에서 현재 강하게 권고하고 있으며, 접착제에 의한 환경오염 우려도 적은 이 라벨에 대해 왜 우리 환경부만 부정적인 걸까. 이에 대해 환경부는 “재활용처리업체들이 실제 재활용 과정에서 비접착식 라벨 분리에 어려움을 느낀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4월17일 환경부 관계자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우리나라 국민들이 라벨과 페트병을 분리해 버리는 비율은 10% 정도다. 비접착식 라벨의 경우 조각내 물에 띄웠을 때 병 조각과 함께 가라앉고 섞여, 제대로 분류가 안 된다”고 답했다. 

실제 공정을 담당하는 재활용처리업체 중 일부에서도 환경부와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다. 비접착식 라벨 때문에 재활용 공정 절차가 더 길어지고, 끝내 폐기물로 버려지는 페트병 조각들도 많다고 토로한다. 그러나 또 다른 업체들과 다수 환경단체 관계자들은 이 같은 논리가 “말도 안 된다”며 손사래를 친다. 실제 대부분의 재활용처리업체에 이미 구비돼 있는 ‘풍력선별기(강한 바람으로 병과 라벨을 분리해 내는 장치)’만으로 비접착식 라벨 대부분이 병과 깔끔히 분리된다는 것이다. 이 주장에 따르면 굳이 양잿물을 끓여 추가로 병을 세척할 필요도 없으며 공정 절차는 더욱 단순화된다. 페트병 조각 상당량이 마지막에 폐기물로 버려지는 것 또한 접착제가 남은 접착식 라벨 탓이라고도 주장한다. 

환경부 측은 이러한 지적에 “풍력선별기 설비 비용이 만만치 않으며, 실제 풍력으로 라벨이 분리되는 비율도 높지 않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환경부의 입장을 반박하는 이들은 “비접착식 라벨이 대부분인 일본에선 풍력만으로 90% 이상 깔끔하게 분리된다는 명확한 근거가 있다”며 “일본은 우리보다 공정이 매우 단순하며 재활용된 페트병 조각도 훨씬 고품질”이라고 강하게 반박하고 있다. 이들은 4월7일 300인 이상의 서명을 담아 감사원에 환경부에 대한 감사 청구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환경부-중간조직-재활용업체 카르텔 의심”

환경부에 감사를 청구한 이들은 환경부와 접착제 제조사인 헨켈의 유착은 물론, 환경부와 일부 재활용처리업체, 그리고 그 중간에서 재활용 처리비용을 받아 업체에 분배하는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와 ‘한국포장재재활용사업공제조합’ 간의 카르텔 의혹까지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위 두 조직은 OB맥주·롯데칠성음료 등 의무생산자(페트병 생산업체)로부터 환경분담금(EPR)을 받아 매년 전국 22곳 재활용처리업체에 재활용 처리비를 제공하는 ‘창구’ 역할을 맡고 있다(그림2 참고). 

위 두 조직에 들어오는 예산은 한 해 약 2000억원 이상이다. 두 조직 구성원 중에는 환경부 퇴직 공무원들이 다수 포진돼 있다. 이들 조직에 의혹을 품고 있는 측에선 두 조직에서 업체들에 재활용 처리비용을 나눠주는 과정에 소위 ‘눈먼 돈’이 많다고 주장한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관계자는 “두 조직이 환경부와 사실상 ‘한통속’이니 관리·감독이 소홀할 수밖에 없고, 이곳으로부터 지원비를 받는 재활용처리업체들도 환경부의 지침에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환경부에 대한 감사 청구에 동참한 한 페트병 제조업체 관계자는 “비접착식 라벨 비중이 늘어나 풍력선별기로도 재활용 처리가 대부분 가능하게 되면, 재활용처리업체 역할을 각 지역 선별장에서도 일부 수행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매년 업체가 지원받는 수십억, 수백억원의 재활용 처리비용도 지금보다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재활용처리업체들은) 오히려 재활용 공정이 단순화되는 걸 반갑지 않게 여길 것”이라고 의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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