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도 나눠 쓰는 시대…공유경제, 오피스를 삼키다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19.04.24 13:00
  • 호수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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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오피스’는 어떻게 성장했나

#1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1인 창업을 준비하는 A씨. 첫 번째 고민은 ‘사무실’이었다. 창업이 어느 정도 규모가 될지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이니만큼 어떤 사무실을 구해야 할지 판단을 내리지 못했던 것이다. 집기나 사무기기를 얼마나 구비해야 하는지도 애매한 상황. 투자자를 만나서 내미는 명함에 집 주소를 적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A씨가 선택한 곳은 ‘공유오피스’였다. 일단 독립적인 사무실을 얻지 않고, 자유석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계약했다. 업무상 필요한 프린터나 복사기도 사용할 수 있고, 방음 기능을 갖춘 공간을 이용해 업무적 통화를 할 수도 있게 됐다. 사업 추진이 잘되는 대로 4인실이나 8인실 공간으로 옮길 계획이다.

#2 모바일 원어민 회화 앱 서비스를 제공하는 튜터링은 첫 입주 사무실로 공유오피스를 선택했다. 1년 사이 인원이 2배 이상 늘어나자 39인실로 공간을 옮겼다. 인력 운용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공간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라고 판단했다. 공유오피스를 이용하는 또 다른 회사, 카셰어링 업체 네이비는 최근 국내 성장에 힘입어 해외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공유오피스 위워크에서 제공하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국내와 주거나 교통 환경이 비슷한 홍콩 시장 진출에 대한 협의를 진행하는 중이다.

4월17일 오후 3시. 일반 회사에서는 한창 업무에 집중할 시간이지만, 서울 중구 을지로에 위치한 공유오피스 위워크의 모습은 사뭇 달랐다. 소파에 앉아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도 있고, 미팅룸에서 맥주 한잔을 하며 회의를 하고 있는 스타트업, 자리를 옮겨가며 노트북을 이용해 작업을 하고 있는 창업 유망주도 있었다. 라운지 한쪽에 위치한 키친에서는 커피와 맥주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고, 업무 중간에 게임룸을 이용하면서 기분을 전환한다. 비어 있는 회의실은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예약 후 사용할 수 있다. 한 층,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있지만 라운지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소속은 모두 다르다. 이제는 사무실까지 공유하는 시대다. ‘공유오피스’는 어떻게 생겨났으며, 무엇이 다를까.

서울 강남 시작으로 종로·여의도로 영역 확대

공유오피스는 말 그대로 사무실을 공유하는 개념이다. 빌딩의 전체나 일부를 장기 임차해 공간을 나눈 뒤, 이를 개인이나 업체에 재임대해 업무를 지원해 주는 공유경제의 한 모델이다. 기존 오피스 개념이 빌딩 전체나 한 층을 한 회사가 사용하는 것이라면, 공유오피스는 공간을 여러 개로 쪼갰다. 1인 기업, 벤처기업, 기업 TF 등 필요한 규모별로 인력을 수용할 수 있는 다양한 공간을 1개월부터 수십 년까지, 필요한 시간만큼 사용할 수 있다. 

위워크의 경우 1인이 월 25만원에 자유롭게 공간을 사용할 수 있다. 팀 수용이 가능한 ‘프라이빗 오피스’는 48만원부터 이용이 가능하다. 사무실 규모와 설계에 따라 임대료는 달라진다. 사무공간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회의실, 비품, 전화, 우편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커피머신이나 게임룸 등 부가시설도 갖춰져 있기 때문에 입주자들은 노트북과 필요한 물품만 챙겨 가면 된다. 서로 함께 사용하는 공간에서 커뮤니티도 만들어진다. 이제 공유오피스는 1인 기업뿐 아니라 스타트업의 초기 사무실, 해외로 확장을 꾀하는 기업들의 거점지로도 활용되고 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생소했던 공유오피스가 공유경제의 대표적 사업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2015년 토종기업인 패스트파이브가 스타트를 끊었고, 2016년 글로벌 공유오피스 기업인 위워크가 등장하면서 시장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르호봇, 스파크플러스 등도 뒤를 이었다. 코람코자산신탁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를 기준으로 국내에서 공유오피스를 운영 중인 업체는 57곳이다. 이들이 운영하는 공유오피스는 192개, 총 11만9000평 규모다. 2017년보다 39개 업체, 99개 지점, 7만5000평이 늘었다. 주로 서울 강남구에 포진해 있던 공유오피스는 최근 종로와 광화문, 여의도 등으로도 영역을 넓히고 있다. KT경제경영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공유오피스 시장 규모는 2017년 기준 600억원 수준이었지만 앞으로 연간 63% 고성장하며 2022년까지 7700억원 수준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4월17일 공유오피스의 대표주자이자 글로벌 플랫폼 위워크 을지로 지점 모습. 8층 라운지에서 입주사 직원들이 자유롭게 업무를 보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4월17일 공유오피스의 대표주자이자 글로벌 플랫폼 위워크 을지로 지점 모습. 8층 라운지에서 입주사 직원들이 자유롭게 업무를 보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공유경제·벤처기업 증가로 활성화된 시장  

이지스자산운용이 발간한 ‘서울 오피스 시장에서 공유오피스는 정착이 가능한가’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서울 내 서비스 중심 오피스의 임대 면적 중 공유오피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90%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1월말 기준 서울시내 36개 공유오피스 브랜드는 약 25만3900㎡의 오피스 면적을 사용 중이며, 입주사 비중을 살펴보면 벤처 및 스타트업 45%, 대기업 15%, 중소기업 25%, 외국계 기업이 15%를 차지했다.

공유오피스가 급성장한 배경으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도래와 공유경제 활성화가 우선적으로 꼽힌다. 공유경제라는 가치를 기반으로 승차 공유 서비스, 숙박 공유 서비스가 생겨났고, 이 개념이 ‘사무실’에도 적용됐다. 스타트업이나 유튜버, 1인 기업 등 과거에 없던 다양한 창업 형태가 등장하면서 공유오피스의 신규 임차 수요로 유입됐고, 단기 수요도 늘어났다. 공유오피스 입주자를 대상으로 한 현황조사에 따르면, 공유오피스 입주 기간이 1년 미만인 스타트업이 63.1%에 달하고, 공유오피스 입주사 중 10인 미만 사업장이 70.5%에 이른다.

특히 서울의 경우 청년 및 핀테크 등의 창업지원 정책 확대에 따라 벤처 및 스타트업 특성에 적합한 공유오피스 수요가 증가한 것으로 진단되고 있다. 서동한 KB경영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애플리케이션 개발, 빅데이터 활용 등 주로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소규모 자본 출자를 통한 프로젝트성 창업이 활성화되면서 기존과 다른 새로운 오피스 수요가 창출됐다”고 분석했다. 

어느 정도 성장한 스타트업이 공유오피스로 회사를 옮기기도 한다. 배달대행 서비스 ‘부릉’을 운영하는 메쉬코리아도 전체 직원 200여 명이 사용할 신사옥으로 공유오피스의 한 지점을 통째로 임차했다. 회사 성장 속도에 맞춰 사옥을 매입하거나 임차하는 것보다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온라인 영어회화 강의 서비스인 야나두도 100여 명의 직원이 이용할 사무실로 공유오피스 스파크플러스를 선택했다.

밀레니얼 세대의 업무 스타일에 부합

“기존의 업무 환경이 젊은 세대의 일하는 방식과 가치관을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을 공유오피스가 충족시켜주고 있다.” 공유오피스 제공 업체를 창업한 한 대표의 말이다. 공유오피스를 이용하는 사람들 중에는 20~30대가 많다. 디지털 기술이 본격적으로 발전하는 시대에 태어나고 자라 IT기술을 활용하는 일에 능숙하며,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어 온·오프라인 경계가 없는 생활을 하는 밀레니얼 세대는 ‘소유’보다는 ‘경험’ ‘공유’하는 가치를 중요하게 여긴다. 카페에서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는 데 익숙하기 때문에, 자유로운 공간에서 자신만의 역량을 발휘하는 것이 즐겁다.

공유오피스는 이런 점을 노렸다. 업무 중 새로운 자극을 받을 수 있는 놀이 공간이나 휴식 공간을 두고,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일하며 의견을 교환할 수 있게 만들었다. 밀레니얼 세대들은 동료와 마주 보고 커뮤니케이션에 최적화된 환경에 익숙하지만, 그러면서도 자신의 일을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움직일 수 있기를 바라는 욕구가 강하다. 한자리를 고수하기보다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변화할 수 있는 장소를 추구한다. 실제로 공유오피스에서는 다양한 캐주얼 업무 환경을 찾아볼 수 있었다. 서울 시내 뷰가 좋은 소파에 앉아 업무를 하기도 하고, 마치 ‘바’가 연상되는 곳에 앉아 음료를 즐기면서 일한다. 해먹을 업무 공간 바로 옆에 비치해 언제든 누워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큰 기업들이 공유오피스를 활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밀레니얼 세대들이 추구하는 ‘워라밸(work&life balance)’을 기업들이 중시하게 되면서 마이크로소프트나 삼성, 스타벅스, 페이스북 같은 업체들도 공유오피스 위워크를 이용하고 있다. 네트워크와 경험을 중시하는 밀레니얼 세대를 공략해, 공유오피스 공간을 통한 세미나와 이벤트도 수시로 진행한다.

부동산 공실률 줄이는 데에도 긍정적 역할

부동산 경기 활성화 측면에서도 공유오피스는 공실률이라는 고질적인 문제를 줄이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2016년 공유오피스는 서울 오피스 시장에서 전체 신규공급 면적의 3.5% 수준에 불과했지만, 2018년 8월 기준 29.4%로 크게 늘었다. 공유경제에 대한 인식이 제고되면서, 장기임차인을 확보하려는 임대인의 니즈와 공유오피스의 니즈가 부합한 것이다. 

KB경영연구소의 ‘2019 KB 부동산 보고서’는 “공유오피스가 건물 내 적정비율로 입점 시 건물의 자산 가치에도 긍정적 영향을 주는 것으로 인식되면서 당분간 공유오피스에 대한 임대인의 선호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젊은 층들이 공유오피스에 몰려들면서 건물 안팎으로 상권이 확대되고 건물의 가치도 높아지고 있다”며 “공유오피스 사업 초반에는 업체가 임대할 빌딩을 직접 찾아야 했지만, 지금은 반대로 건물을 공유오피스로 활용하지 않겠냐는 제안이 먼저 오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진격하는 공유오피스…국내 대기업도 출사표 던진다

대기업도 공유오피스 사업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1인 창업 증가 등 시장 변화 요인에 주목한 것도 있지만, 넓은 건물 면적을 공유오피스로 꾸며 여러 업체에 임대하면 공실률을 낮추기 쉽다는 효율성도 원인으로 작용했다. 창업 활성화 기조에 맞춰,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사회공헌 이미지도 강조할 수 있다. 시장에서는 대기업의 진출이 공유오피스 시장의 판도를 뒤엎을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그동안 상위 3개사의 공급 면적이 81%(지난해 3분기 기준)에 달할 정도로 선두 업체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은 자본력을 활용해 공유오피스에 입주하는 스타트업 창업을 지원하거나 그룹 계열사와 협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등 기존 공유오피스와 차별화된 전략을 세우는 중이다. 스타트업과의 협업으로 그룹 전체의 시너지 효과도 노리고 있다. 

가장 공격적으로 사업 확장을 예고한 곳은 롯데그룹이다. 롯데그룹은 최근 서울 강남과 롯데월드타워에 ‘워크플랙스’를 오픈했다. 롯데월드타워에 최근 오픈한 ‘워크플랙스 롯데월드타워’는 데스크 직원 3명을 상주시켜 전화 응대, 예약, 우편물 관리 등 입주 멤버들의 모든 보조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2030년까지 공유오피스 지점을 50곳까지 늘리는 것이 목표다. 

지난해 사업을 시작한 LG그룹 계열사 LG서브원은 서울 양재역 빌딩에 대형 강당과 테마별 회의실 등을 갖춘 ‘플래그원’을 열고 LG 계열사만 이용할 수 있는 복지 혜택을 입주사로 확대해 차별화를 뒀다. 한화그룹 계열사인 한화생명은 여의도 63스퀘어에 ‘드림플러스63 핀테크 센터’, 서초사옥에 ‘드림플러스 강남’을 오픈했다. 여의도 63스퀘어에는 핀테크 관련 스타트업만 입주할 수 있도록 해 사업 제휴와 투자 등 협업이 가능하게 했다. 

현대카드는 2017년부터 서울 강남역 인근에 ‘스튜디오 블랙’을 운영하고 있다. 스튜디오블랙의 사업 목표가 ‘수익 창출’이 아닌 ‘스타트업 대상 네트워킹 강화’니만큼, 핀테크 스타트업들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핀베타’라는 협업 공간도 만들어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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