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국민의 눈높이
  • 김재태 편집위원 (jaitaikim@gmail.com)
  • 승인 2019.04.29 09:00
  • 호수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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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갈 일이 없어 잘 모르겠으나 예전에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면 특이한 광경이 눈길을 끌곤 했었다. 식사를 하기 위해 자리를 잡고 앉으면 직원이 다가와 몸을 바짝 낮췄다. 그는 한쪽 무릎을 거의 꿇은 채 주문을 받았다. 처음엔 무척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졌지만 몇 번 더 가다 보니 익숙해졌는데, 직원들은 그것이 자기네 업소의 손님 접대 매뉴얼이라고 했다. 누군가를 올려다보기보다 내려다볼 때 사람들의 마음은 더 편해지기 마련이다. 그런 인간 심리를 패밀리 레스토랑들은 꿰고 있었다.

말 많고 탈 많았던 장관 및 헌법재판관 인사청문회의 여운이 컸던 탓일까. 요즘 들어 자주 귀에 맴도는 말이 있다. ‘국민의 눈높이’ 혹은 ‘국민 정서’가 그것이다. 국민의 눈높이뿐만 아니라 ‘송구스럽다’라는 말도 우리는 국회 인사청문회장이나 정치권의 많은 공간에서 수없이 들어왔다. 송구스러운 일들을 이미 저질러놓은 사람들이 치부가 공개적으로 드러나고 지적을 받으면 그때서야 머리를 숙이는 모습은 이제 전혀 낯설지 않다. 그 낯설지 않음으로 인해 지켜보는 사람들만 더 낯 뜨거워질 뿐이다.

그들이 곤혹스러운 질문을 받고 해명을 늘어놓을 때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드는 ‘국민의 눈높이’란 과연 무엇일까. 그런 상황에 내몰릴지 몰라서 그 자리에 나와 선 것도 아닐 텐데 왜 꼭 한바탕 혼이 난 다음에야 ‘국민의 눈높이’란 말을 꺼내고 그 뒤에 숨으려 하는 것일까. 또 그들이 말하는 ‘국민’이란 결국 자신들에게 호의를 가질 것이라고 믿는 일부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닐까. 더 결정적으로 그들은 ‘국민의 눈높이’가 지닌 함의를 제대로 이해하고나 있는 것일까. 의문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국민은 다수로 이루어진 집단이고, 그만큼 다양한 생각들로 채워져 있는 만큼 국민의 눈높이를 한마디로 규정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패밀리 레스토랑의 고객 눈높이 맞추기처럼 일정한 매뉴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점만 분명할 뿐이다. 그런데도 그 말이 가지는 깊이와는 다르게 여전히 어딘가에서는 참으로 간단히, 혹은 함부로 발설된다. 

국민의 눈높이에 대한 인식은 공부하고 연습한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갖춰지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눈높이를 진정한 마음의 높이로 이해하고 오랫동안 국민들을 올려다봐왔던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다. 국민의 힘을 두려워하지 않고 국민을 존중할 줄 모르는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다. 그것은 곧 그 고귀한 말들이 누군가의 입장을 변명하는 데 결코 쓰일 수도 없고 쓰여서도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니 제발 ‘국민의 눈높이’가 국민에게 맞춰 다가가겠다는 사전 약속의 말이 아닌 사후 수습용으로 쓰이는 일을 다시는 보지 않기 바란다. 

4월9일 광주광역시 자원봉사센터 회원들이 최근 산불이 발생한 강릉시 옥계면 남양리 야산에서 불탄 나무들을 제거하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4월9일 광주광역시 자원봉사센터 회원들이 최근 산불이 발생한 강릉시 옥계면 남양리 야산에서 불탄 나무들을 제거하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번 강원도에서 산불이 크게 난 후 정치권에 말도 안 되는 말들이 고삐 풀린 말처럼 마구 뛰어다닐 때 일부 국민은 조용히 자원봉사에 나서고 성금을 준비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따뜻하게 움직이는 그런 마음들이 바로 국민의 눈높이이고 국민 정서다. 그들은 어쩌면 은연중에 이런 말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니들이 진짜 국민 눈높이를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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