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수험생들 업고 돈방석 앉은 ‘올빼미 방석’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9.04.29 15:00
  • 호수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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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코퍼레이션, 방석 하나로 연 1450억 매출…이타심이 기업 경영 최우선

일본 수험생 사이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쿠션이 있어 화제다. ‘올빼미 방석(쿠션)’이라고 불리는 이 제품은 해마다 다양한 형태로 출시되고 있다. 일본에서 올빼미는 행운을 가져다주는 길조다. 이 방석에 앉아 공부하면 복이 온다는 소문이 돌면서 제품은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가고 있다. 특히 원하는 대학의 합격을 꿈꾸는 일본 수험생들 사이에 필수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화제의 제품은 쿠션 제조기업 가지(加地) 코퍼레이션의 ‘올빼미 방석’이다.

제조업의 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다. 걱정하는 이들은 대부분 원가경쟁력을 따진다. 그러나 임금만으로 제품의 경쟁력을 평가해선 곤란하다. 그런 방식이라면 임금이 싼 곳을 찾아 세계 어디라도 가야 한다.  

가지 코퍼레이션은 한국 제조기업들의 이러한 통념을 명쾌하게 깨준다. 가격경쟁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떤 제품을 만드느냐는 것이다. 이 회사에서 만드는 제품은 방석(쿠션) 하나다. 이것 하나로 연간 1억3000만 달러(약 1450억원)의 매출을 올린다. 일본 특유의 모노즈쿠리(物作り·혼신의 힘을 쏟아 최고 제품 만들기) 정신은 소비재 기업인 이 회사도 줄기차게 주장하는 바다.

이 회사가 다른 제조회사와 다른 점은 시대 변화에 따라 기업 체질을 빠르게 변신시켰다는 점이다. 1969년 아식스 신발 제조공장에서 출발한 회사는 두 차례 큰 모멘텀을 겪었다. 첫 번째 변곡점은 1990년 스포츠 신발 봉제업에서 의료용 쿠션 제조로의 변신이다. 당시 일본 기업은 치솟는 임금에 시름하고 있었다. 여느 기업이었으면 싼 임금을 찾아 동남아,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했겠지만, 가지 코퍼레이션은 의료기기 전문기업으로의 변신이라는 업종 전환을 시도했다. 그게 1990년 일이다.

4월19일 서울 JW메리어트호텔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오가와 가나메 가지 코퍼레이션 사장이 특수 소재 ‘엑스젤’의 충격 흡수력을 설명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4월19일 서울 JW메리어트호텔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오가와 가나메 가지 코퍼레이션 사장이 특수 소재 ‘엑스젤’의 충격 흡수력을 설명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액체·고체 장점 결합한 특수 소재 개발

변신을 결정한 이유는 특수 소재 ‘엑스젤’(EXGEL) 개발에 따른 자신감 때문이다. 당초 이 물질은 ‘깔창’이라고 불리는 신발 ‘인솔’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오가와 구니오(小川國男) 회장의 아들인 오가와 가나메(小川要) 가지 코퍼레이션 사장은 “제조공정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긴 힘들지만, 화학제품을 혼합하는 과정에서 액체와 고체의 장점을 가진 ‘엑스젤’이 탄생했다”고 설명했다. 엑스젤 제조공정은 회사의 최고 영업비밀이다. 제조공정이 외부로 알려질 것을 우려해 특허 출원도 하지 않았다.

구니오 회장은 기존에 만들던 신발 인솔을 경쟁이 치열한 ‘레드오션’으로 봤다. 그런 면에서 엑스젤 개발은 타이밍이 주효했다. 이게 성공 포인트다. 1990년대 접어들어 일본은 고령화 사회로 들어가는 속도가 빨랐다. 관절 질환으로 휠체어나 침대에서 생활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구니오 회장이 주목한 시장은 바로 ‘고령 사회’다. 특수 인솔은 의료기기 분야에서는 한 번도 쓰이지 않았던 신소재다. 이른바 블루오션 시장이었다.

두 번째 모멘텀은 가나메 사장이 입사하면서다. 명문 교토대를 나와 세계적인 타이어 회사 브리지스톤에서 마케팅·총무·영업부서 고위직으로 근무하던 가나메 사장은 가업을 이어야 한다는 부친의 요구에 못 이겨 1998년 회사로 들어왔다.

가지 코퍼레이션이 오늘날 쿠션 제조에서 세계적인 분야로 발돋움한 것은 두 번째 모멘텀이다. 첫 번째 모멘텀이 가져다준 성공에 안주하고 있었다면, 가지 코퍼레이션은 그저 그런 의료기기 전문업체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회사에 들어온 가나메 사장은 의료기기 제조 B2B(기업 대 기업 거래) 기업에서 일반 쿠션 전문 B2C(기업 대 개인 거래) 기업으로의 변신을 시도했다.

2대에 걸쳐 가지 코퍼레이션이 추구한 기업 가치는 ‘사회공헌’이다. 기업이 가진 독창기술을 사회를 위해 쓴다면 돈은 저절로 따라온다는 것을 가지 코퍼레이션은 몸소 실천했다. 가나메 사장은 “우리는 제품을 넘어 더 본질적인 가치(Essential value of product)에서 기업 철학을 찾았기에 동종 제품에 비해 값이 비싼데도 소비자들이 꾸준히 찾고 있다”고 인기 비결을 설명했다.

특수소재 ‘엑스젤’로 만든 가지 코퍼레이션의 ‘올빼미 방석’
특수소재 ‘엑스젤’로 만든 가지 코퍼레이션의 ‘올빼미 방석’

엑스젤은 사람의 피부처럼 촉감이 좋다. 일반 스펀지폼처럼 부드러운 것은 아니다. 스펀지폼은 부드럽지만 압력을 완벽하게 흡수하지 못한다. 반면 엑스젤은 액체와 고체의 중간 성질이어서 100% 충격 흡수가 가능하다. 충격과 증력, 이동이 모두 인체 피부와 비슷하다. 그만큼 중력이 분산된다. 

가지 코퍼레이션은 엑스젤을 활용해 현재 100여 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이 회사처럼 단일 품목으로 일본 내 매장을 갖고 있는 브랜드는 없다. 의료기에서 쿠션 등 소비재로의 변신에 대해 회사 내에서는 여러 사람이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당장 아버지인 구니오 회장부터 반대했다. 엑스젤의 제품 슬로건은 ‘좌석 연구소(Seating Lab)’다. ‘앉아 있는 즐거움’이 이 회사가 추구하는 목표다. 

B2C 기업으로의 변신 후 처음 내놓은 올빼미 쿠션은 가나메 사장 체제를 더욱 굳건하게 했다. 그는 “기존 쿠션들이 천편일률적인 디자인이었던 반면, 올빼미 모양의 쿠션은 양쪽 엉덩이의 충격을 그대로 흡수하면서 디자인도 소비자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말했다. 

가방에 넣고 다니는 휴대용 쿠션도 인기다. 일본 내 장시간 앉아 있어야 하는 직장인이나 허리디스크 환자들에게 엑스젤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일본 자동차 메이커 도요타자동차가 일본에서 생산되는 승용차,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에 엑스젤이 장작된 쿠션을 사용하고 있는 것도 장시간 운전자를 배려해서다. 가나메 사장은 “모든 의자가 기능성일 수 없기 때문에 우리의 휴대용 쿠션은 출퇴근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고 말했다. 엑스젤을 국내 판매하는 한국메사 관계자는 “장기간 앉아서 일해야 하는 일선 창구 직원들을 위해 시중은행들이 제품 구매를 검토하고 있으며, 콜센터를 운영하는 회사들의 구매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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