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트랙 전쟁터 곳곳에 박힌 논쟁거리들(上)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9.05.03 13:29
  • 호수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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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트트랙 사태’ 후 남은 궁금증 10문10답…이번 사태의 최대 수혜자는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인가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사태’를 거친 국회는 ‘폐허’가 됐다. 닷새에 걸친 격한 몸싸움 끝에, 4월29일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은 공직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 등을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날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와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에서 두드린 의사봉은 국회 갈등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자유한국당은 곧장 장외투쟁에 돌입했고, 바른미래당 분열은 더욱 골이 깊어졌다. 국회가 마비돼 ‘동물국회’를 지나 다시 ‘식물국회’가 될 거란 말도 나온다. 여야 간 고발전이 향후 총선에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도 미지수다. 전례 없는 이번 난타전이 남긴 10가지 논쟁거리들을 짚어본다. 

■1. 내년 총선부터 이번 선거법 개정안 적용이 가능할까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법안들은 ‘패스트(fast)’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최종 본회의 표결까지 최장 330일이 소요된다. 4월29일 패스트트랙 상정을 기준으로 소관 상임위인 정개특위와 사개특위(180일)·법제사법위원회(90일)·본회의(60일) 논의까지 거치고 나면 2020년 3월23일, 즉 4월15일로 예정된 21대 총선이 채 한 달도 안 남은 시점이 된다. 이 때문에 내년 총선에 이 선거법을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패스트트랙을 지정한 여야 4당은 이 논의 기간을 어떻게든 줄여보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여상규 한국당 의원이 위원장으로 있는 법사위에서의 90일만 꽉 채우고 다른 기간을 최대한 줄여, 180일 이내 본회의 표결이 가능토록 하는 게 이들의 목표다. 그러나 절차마다 한국당의 반대가 클 것이며, 나머지 4당의 구조도 지금과 달라질 수 있어 중간중간 논의가 가로막힐 전망이다.

무엇보다 큰 우려는 바뀐 선거법이 적용될 경우, 국민적 이해와 설득이 충분치 못한 채 선거가 치러질 수 있다는 것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이번 선거법 개정안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법 적용만 서두르는 건 유권자에 대한 국회의 불친절과 오만이라고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호남 지역 더불어민주당 한 당직자는 “지난 총선에서도 선거 바로 직전까지 지역구 획정 논의가 이뤄진 바 있었다. 바람직하다는 건 아니지만, 3월말 법이 적용돼 총선을 치르더라도 큰 혼란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시사저널 박은숙
ⓒ 시사저널 박은숙

■2. 패스트트랙 상정 법안들, 이 내용 그대로 본회의까지 가나

여야 4당이 이번 패스트트랙 처리에 단합된 모습을 보였다고 해서 이들이 곧 법안 내용에 온전한 합의를 이룬 것은 아니다. 특히 공수처법의 경우, 이미 두 가지 안(백혜련안·권은희안)이 함께 상정된 이상, 단일안을 도출해 내는 과정에서 현재 내용이 상당 부분 바뀔 게 자명하다. 선거법은 4당 의원들의 지역구 사정과 정계개편 후 거취에 따라 입장이 바뀔 가능성이 크다.

한국당 또한 끝내 논의 테이블로 복귀할 거란 관측이 많다. 투쟁에만 주력할 경우 자신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룰이 그대로 본회의에 상정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역시 한국당을 끝까지 배제하는 데 부담을 느낄 수 있다. 민주당 한 중진의원은 “계속 한국당을 빼고 가다간 독선적인 여당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며 “‘수용 가능한 선’에서 협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당이 논의에 참여할 경우 공수처법·선거법 모두 내용 수정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패스트트랙 안건이 이후 수정되거나 다른 안건과 병합되더라도 효력은 그대로다.


■3. 공수처 두 가지 안(백혜련안·권은희안)은 무엇이 다른가

패스트트랙이 처리된 4월29일 오전,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여야 4당이 합의한 공수처안(백혜련안)과 함께 바른미래당 권은희 의원이 대표발의한 공수처안도 패스트트랙에 태우자는 깜짝 제안을 내놨다. 두 안의 차이점은 적지 않다. 우선 정확한 법안 명칭부터가 다르다. 백혜련안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안’, 권은희안은 ‘고위공직자부패수사처법안’이다. 수사 대상 범죄에서도 백혜련안은 ‘고위공직자 범죄’로 규정했으며, 권은희안은 ‘부패 범죄’에 초점을 맞추고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등을 포함시켰다. 

가장 쟁점이 될 차이는 ‘기소심의위원회’ 유무다. 권은희안은 무작위로 20세 이상 국민 7~9명으로 구성한 기소심의위를 설치해 공수처의 기소권 행사에 대한 심의와 의결을 하도록 정했다. 백혜련 의원 등 권은희안에 반대하는 의원들은 기소심의위가 공수처의 기소권 행사를 제한할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공수처장 임명 절차도 상이하다. 백혜련안은 대통령 지명 후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한다고 규정했지만, 권은희안은 인사청문회를 거친 후 국회 동의를 받게 했다. 야당의 권한이 커질 수 있는 국회 동의 절차에 대해 여당은 껄끄러운 기색을 내비치고 있다. 합의를 거쳐 단일안으로 만든 후 본회의에 올리는 게 최선이지만, 그러지 못할 경우 두 안 모두 본회의 표결에 부칠 가능성도 있다. 민주당과 바른미래당은 두 안의 근본적인 방향이 같아 합의안 도출에 어려움이 없을 거라면서도, 핵심 사항에 대해선 결코 타협할 수 없다며 선을 긋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 시사저널 박은숙

■4. 한국당이 외친 ‘헌법 수호’, 어떤 헌법 조항을 말하나

패스트트랙 충돌 과정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연신 ‘독재 타도, 헌법 수호’를 외쳤다. 정부와 여야 4당을 헌법 파괴 세력으로 규정하고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패스트트랙 절차와 내용 모두 ‘반(反)민주’적이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국당은 “국민 주권을 발현하는 선거법을 일방적으로 바꾼 것부터 헌법이 명시한 민주주의를 뒤집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한국당이 꾸준히 반대해 온 공수처안 역시 헌법을 위반한 ‘독재’의 수단으로 규정했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공수처는 대통령이 사법·입법을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이라며 ‘독재의 칼’이라고 비유했다.

오신환·권은희 의원이 사개특위 위원직에서 사보임된 것도 한국당은 ‘국회의원은 국가의 이익을 위해 양심에 따라 직무를 한다’는 헌법46조 2항을 어긴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국회 점거 모두 헌법상 정당한 저항권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헌법학자들은 한국당의 저항권이 특정 정치세력에 의해 행사됐고, 적법하게 진행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진단한다. 

ⓒ 시사저널 박은숙
ⓒ 시사저널 박은숙

■5. 이번 사태의 최대 수혜자는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인가

고성을 지르며 국회 맨바닥에 드러누운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그의 이전 이미지로 볼 때 꽤 낯선 모습이었다. 이번 사태를 거치며, 원내대표 출마 때부터 그의 투쟁력에 의문을 품었던 지지자와 동료들에게 ‘투사’ 이미지를 제대로 각인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용철 부산대 교수는 “(나 원내대표는) 상중이던 황교안 대표를 대신해 사실상 이번 패스트트랙 사태 선봉에 섰는데, 결과를 떠나 보수진영 지지자들에게 제대로 점수를 땄다”며 그를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수혜자’라고 평가했다. 

다만 기존의 불통 이미지는 더욱 굳어졌다는 분석도 있다. 국회 일각에선 이번 정국에서 여야 4당이 더욱 단합할 수 있게 된 계기는 다름 아닌 나 원내대표 덕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그간 다른 여야 원내대표들에게 좀체 협상의 여지를 주지 않은 탓에 나 원내대표에 대한 불만이 쌓여 있었다는 것이다. 국회 한 관계자는 “김성태 전 원내대표의 경우 겉으로는 큰소리쳐도 뒤로는 비교적 다른 당과 대화와 협상을 해 왔다”며 “나 원내대표는 다른 당으로 하여금 아예 한국당을 협상 상대로 볼 수 없도록 만든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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